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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라면도 과학으로"…식약처, 불닭 리콜 뒤집어 수출규제 대응 강화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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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라면에 대한 과학 기반 위해성 평가가 K푸드 수출 규제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중심이 된 정부 협상팀은 2024년 덴마크 정부가 전격 발표한 불닭볶음면 시리즈 회수 조치에 맞서 한 달 만에 상당 부분 철회를 끌어냈다. 과학 데이터와 위험평가 모델을 앞세운 이른바 식품 규제외교 전략이 주효하면서, 향후 한국 식품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사 분쟁의 선례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K푸드 수출 경쟁에서 규제 대응 역량을 가르는 분기점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덴마크 수의식품청이 2024년 6월 11일 한국산 불닭볶음면 일부 제품에 대해 캡사이신 함량이 높아 소비자에게 급성 중독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회수 조치를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이 조치는 유럽 시장 전반으로 규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국내 식품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이슈로 번졌다.

식약처는 사태 초기부터 이메일 등 공식 채널을 통해 덴마크 수의식품청과 직접 접촉하며 본격적인 과학 협상을 시작했다. 덴마크 당국에 회수 판단의 근거가 된 평가보고서와 세부 기준, 위해성 판단 과정에서 활용된 섭취 시나리오 등을 모두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동시에 사전 협의 없이 한국산 제품을 규제 대상으로 특정한 데 대해 유감을 전달하며 과학적 정보 교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 측은 1차 평가 보고서와 관련 기준을 비교적 신속히 공유했다.

 

본격적인 대면 협상은 2024년 7월 4일 진행됐다. 식품안전정책국장을 단장으로 한 식약처 실무진이 직접 덴마크를 방문했고, 주덴마크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동행했다. 한국 대표단은 덴마크 수의식품청 담당자들과 만나 시험 분석 결과, 조리 후 섭취 패턴을 반영한 캡사이신 노출량 모델, 기존 위험기준 설정 방식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심층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실제 조리 과정을 반영하지 않은 채 원제품 기준의 수치만으로 급성 위해성을 산정하는 기존 접근이 합리적인지, 과학적 정합성을 짚는 데 집중했다.

 

식약처는 국내 시험 기관에서 분석한 데이터와 불닭볶음면 조리 후 섭취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캡사이신 노출량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덴마크 측에 전달했다. 이 데이터에는 한 번에 섭취하는 면의 양, 조리 시 물량과 소스 사용량, 남기는 양 등을 변수로 둔 실제 소비 패턴 분석이 포함됐다. 덴마크 당국은 이 자료를 토대로 국립식품연구소인 DTU에 제품 재평가를 의뢰했다.

 

DTU는 식약처와 덴마크 측 시험 기관에서 각각 생산한 분석 결과를 함께 검토했다. 그 결과 조리 후 실제 섭취되는 총 캡사이신 함량이 기존에 적용했던 위험 기준치보다 낮거나 유사한 수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가장 매운 단계인 불닭볶음면 3X 스파이시의 경우, 조리 후 기준에서도 일부 민감 소비자에게는 불편 증상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했다. 매운맛 성분이 특정 집단에 급성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되, 이를 전체 제품군의 회수 사유로 일반화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셈이다.

 

재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덴마크 수의식품청은 입장을 조정했다. 한국 대표단 방문 이후 약 일주일 뒤인 2024년 7월 12일, 식약처로 공문을 보내 불닭볶음면 2X 스파이시와 불닭볶음탕면 2개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를 철회하고 덴마크 내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통보했다. 최초에 회수 대상으로 묶였던 3개 제품 중 2개가 한 달 만에 시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다만 민감 소비자 대상 위해 우려가 남은 3X 스파이시에 대해서는 회수 조치를 유지한다는 판단을 병기했다.

 

식약처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독일 연방위해평가원 BfR과의 협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덴마크 방문 직전 BfR과 심층 질의응답을 진행해 독일 측의 과학적 평가 기조와 기준 체계를 상세히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덴마크 DTU의 초기 평가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비교 자료를 정리했다. 한 국가의 단독 해석이 아니라 유럽 내 다른 과학평가기관과의 공통된 시각을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식약처는 그간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구축해 온 식품 위해성 평가 분야 협력 네트워크가 실제 분쟁 상황에서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수출 규제 대응을 넘어, 과학적 위해 평가 모델을 공유하고 데이터를 상호 검증하는 국제 협력 구조가 규제 갈등을 조정하는 기술 외교 인프라로 기능한 셈이다.

 

이번 사례는 K푸드가 고위험 성분을 포함하지 않은 전통 식품을 넘어 강한 자극과 기능성을 앞세운 제품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위해성 평가 기준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던졌다. 매운맛처럼 국가별 식문화와 내성이 크게 다른 요소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치를 두고도 규제 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은 어린이와 청소년 등 민감 집단 보호를 중시하는 기조가 강해, 향후에도 캡사이신뿐 아니라 카페인, 당류, 첨가물 등을 둘러싼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가 백서 형태로 매운맛 라면 해외 수출규제 대응 사례를 정리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향후 유사한 수출 규제가 발생할 때 초기부터 과학 데이터와 섭취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해외 평가기관과 공동 검증을 진행할 수 있는 표준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소비자군의 섭취 패턴과 위해성 임계값을 반영해 레시피와 라벨링 전략을 설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식품 안전 전문가들은 이번 덴마크 사례가 K푸드 수출 구조가 양적 성장 단계에서 규제와 위해성 관리까지 포함하는 질적 성장 단계로 넘어가는 신호라고 본다. 과학적 위해성 평가 모델을 둘러싼 국제 협력과 외교적 소통이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해야만, 돌발적인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계는 한국의 식품 규제외교가 앞으로 실제 시장에서 어느 수준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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