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역의사 10년 의무근무·비대면 진료 법제화"…국회 복지위, 의료제도 개편 법안 처리

이예림 기자
입력

의료 인력 부족과 복지 제도 개편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보건복지 분야 핵심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다시 부각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역의사제 도입과 비대면 진료 제도화, 국민연금 노령연금 감액 기준 완화 법안을 잇따라 의결했지만, 아동수당 지역 차등 지급안은 여야 대립 속에 발이 묶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0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지역의사 양성 법안과 의료법 개정안,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이날 의결된 법안들은 연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지역의사 양성 법안은 의과대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해, 의사 면허 취득 후 해당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방 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지역 내에서 장기간 근무할 의사를 미리 선발하고, 공공의료기관 근무를 조건으로 의사 양성을 지원하는 구조다.  

 

같은 회의에서 통과된 의료법 개정안은 그동안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돼 온 비대면 진료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0년 시작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허용돼 왔고, 이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속에서 허용 범위가 점차 넓어졌다.  

 

개정안은 비대면 진료 대상을 의료기관 소재지에 거주하는 초진 환자까지로 확대했다. 다만 진료 수행 기관은 희귀질환자 진료 등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으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는 구조가 갖춰질 전망이다.  

 

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고, 특정 의료기관을 추천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도 새로 담겼다. 이를 통해 플랫폼 업체의 과도한 영업 경쟁과 의료기관 쏠림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관심을 모았던 공공 비대면 진료 플랫폼 도입 문제는 최종적으로 의무 조항이 아닌 임의 규정으로 정리됐다. 개정안에는 정부가 공공 플랫폼을 구축·운영할 수 있다는 수준의 문구만 들어갔다. 이에 대해 의료 공공성 강화를 주장해 온 일각에서는 공공 플랫폼을 의무적으로 구축하더라도 민간 영리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임의 규정으로는 민간 플랫폼 중심의 원격의료 구조가 고착돼 과잉 진료와 의료비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날 복지위는 소득이 있는 고령층의 노령연금 감액 기준을 완화한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현행 제도에서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근로 등으로 소득을 얻어 월 309만원(2025년 기준)을 초과하면 연금이 줄어들지만, 개정안은 이 기준을 월 200만원 상향 조정했다. 제도가 시행되면 올해 기준으로 월 소득 509만원까지는 노령연금을 감액 없이 받을 수 있게 된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던 요인을 완화하고, 일하는 노인 계층의 소득 안정을 돕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여야는 여당이 추진한 아동수당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개정안은 현재 전 지역에 일괄 10만원으로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비수도권 지역에 한해 최대 12만원까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당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양육 여건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지역 맞춤형 지원이라고 설명하지만, 야당은 수당을 거주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회의에서 "이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예산 관련 부분을 의결했다"며 "법안도 이왕이면 이달 안에 처리되도록 노력해달라"고 여야 협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야당 측은 아동수당이 소득과 거주지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동일하게 지급돼야 한다며, 보편 복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복지위 회의에서는 공공의과대학 설립 문제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여당은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공공의대 관련해서는 현재 정부의 수정안을 마련 중"이라며 "신속하게 수정안을 마련해 국회의 법안 심의 과정에 제출하도록 속도를 내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공공의대는 지역의사제와 맞물려 지방 의료 인력 확충의 핵심 수단으로 거론돼 왔지만, 의료계 반발과 재정 부담 논란 등으로 장기간 표류해 왔다.  

 

이날 복지위를 통과한 지역의사 양성 법안, 의료법 개정안,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표결을 남겨두고 있다. 국회 안팎에서는 여야가 큰 틀에서 필요성에 공감한 만큼 연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아동수당법 개정안과 공공의대 설립 법안 등 남은 쟁점들을 두고 여야가 복지 철학과 재정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팽팽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어, 정치권의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는 연말 예산 심사와 맞물려 복지 분야 법안들을 놓고 추가 논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예림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국회보건복지위원회#지역의사제#비대면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