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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막지 못했지만 찬성 안했다"…한덕수, 내란 방조 재판서 국민에 사과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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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핵심에서 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정면 충돌했다. 내란 방조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법정에서 거듭 무죄를 호소하며 국민에게 사과한 가운데,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내란 방조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둘러싼 법리 다툼도 거세졌다.

 

한 전 총리는 11월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위증 등 혐의에 대한 최후 진술을 했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찬성하거나 가담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전 총리는 최후 진술에서 "비록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지만, 비상계엄에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며 "이것이 오늘 역사적인 법정에서 제가 드릴 가장 정직한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이 겪은 고통과 혼란을 가슴 깊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총리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면서도 계엄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한 전 총리는 "대한민국은 제게 많은 기회를 줬고, 전력을 다하는 게 그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길 끝에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날 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하겠다고 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땅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 순간 기억은 맥락도 없고 분명하지 않다"고 회상했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방침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지만 저지에는 실패했다는 취지의 주장도 반복했다. 한 전 총리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국무위원들과 다 함께 대통령의 결정을 돌리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란한 기억을 복기할수록 제가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절망만 사무친다"며 "그동안 저를 믿어주신 국민들과 어려운 순간을 함께 한 가족·동료·공직자에게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어려워 황망한 심정"이라고 자책했다.

 

앞서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특검이 적용한 혐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맞섰다. 공소장 변경 과정에서 내란 방조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함께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들은 당초 검찰이 형법상 내란죄 유형 가운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공범 개념인 방조를 적용했다가, 여기에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추가한 점을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내란 방조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는 범죄 구성요건과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내란죄가 중대 범죄로 분류돼 구성요건이 세분화돼 있는 만큼, 여기에 일반적 공범 개념인 방조를 포괄적으로 덧씌우는 식의 적용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변호인 측은 "방조는 간접·보조적 행위를, 중요임무 종사는 적극·능동적 행위를 전제로 한다"며 "둘 다 가능하다는 식의 공소장 변경은 피고인의 실질적 방어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각 혐의 요건을 둘러싼 법리 공방도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내란 방조죄 성립을 위해서는 내란 행위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방조의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와 관련해서는 모의 참여나 지휘 등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내란 모의와 실행의 핵심 논의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이에서 사실상 이뤄졌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한 전 총리는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않고 방조한 혐의로 지난 8월 29일 재판에 넘겨졌다.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한 뒤 폐기한 혐의,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계엄 선포문 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사실과 다른 증언을 했다는 위증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특검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한 전 총리가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오히려 범행에 가담했다고 규정했다. 특검은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임에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내란 우두머리인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는 헌법상 견제 장치로서 국무총리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대 책임으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내년 1월 21일 선고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의 유무죄와 형량에 따라 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책임 공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정치권은 선고 이후 국회 차원의 추가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며, 정부는 계엄 선포 요건과 권한 통제 장치를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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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윤석열#비상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