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활비 삭감 사과하라" vs "원안 유지해야"…대통령실 예산 놓고 여야 격돌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여야가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정면 충돌하면서 대통령실 예산과 통일부 예산 심사가 줄줄이 보류됐고, 정국 긴장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2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는 대통령실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했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해 관련 심사를 보류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시절이던 작년 예산 심사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특수활동비를 삭감한 것을 거듭 문제 삼으며 사과를 요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투명성 개선 의지를 이유로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원안 유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야당일 때 특활비를 과감하게 깎았다, 그런데 막상 정권을 잡아보니까 필요하더라, 최소한 이런 유감 표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압박했다. 여당이 야당 시절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같은 당 조정훈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무부 특수활동비를 증빙이 필요한 특별업무경비로 전환한 사례를 거론하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무부 특활비를 증빙이 필요한 특별업무경비로 돌려서 의결하지 않았느냐"며 "대통령실도 이 금액 중 일부를 특경비로 전환할 의사가 없느냐"고 질의했다. 대통령실 예산도 용도와 집행 근거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맞서 예결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현 정부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실이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한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라며 "이재명 정부는 기존 정부에서 매우 불투명했던 특활비를 앞으로 개선해 나갈 의지를 보이고 있기에 이번에는 원안을 유지해서 편성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활비 축소보다는 투명성 강화 기조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대통령실 특수활동비의 성격을 타 부처와 똑같이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실의 기밀성이나 정무적 민감도를 고려할 때 타 부처와 단순 비교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실 차원에서 관련 입장 표명도 있었으니, 집중해서 합의하는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노 의원이 언급한 대통령실 입장 표명은 지난 7월 상황을 가리킨다. 당시 국민의힘이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예산 등이 포함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항의하자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저희의 입장이 바뀌게 된 것에 대해 국민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예산 편성 방향 변경에 대한 유감 표명이 있었던 만큼, 이를 계기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여야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특수활동비의 필요성과 과거 삭감에 대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예산 심사는 이날 결론 없이 보류됐다.
대통령실 국정 홍보 예산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홍보 예산 심사 과정에서 대통령실 역할을 두고 이견이 커지며 역시 보류됐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국가 부채를 늘리면서까지 예산을 편성하는 만큼 대통령실은 예산을 아끼는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무회의 등 정부의 정상 업무에 대해 대통령실이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대통령실 홍보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상황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는 인수위 없이 출범해서 정책을 실행해야 하기에 여론 수렴을 늘려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한 정책 홍보와 소통을 위해서는 대통령실 홍보 예산이 필요하다는 반박이다.
여야 공방은 통일부 예산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통일 교육과 대북 지원 사업 예산을 두고 상반된 시각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은 학교 통일 교육 사업의 방향을 문제 삼았다. 그는 "'두 국가'를 지향하는 현 정부 통일부가 왜곡된 남북 통일관을 주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예산 삭감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 통일부의 정책 기조가 학생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보고 예산 축소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통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래 세대가 통일 인식이 낮기 때문에 오히려 이 예산이 중요한 것"이라며 "꼭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 투자 축소는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예결위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도 여당의 전방위 삭감 요구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사업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아니라 너무 무분별하게 삭감이나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 심사가 정책 평가보다 정치적 공방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에 가깝다.
이날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홍보 예산, 통일부 통일 교육·대북 지원 예산 등이 잇따라 보류되면서, 여야의 본격적인 협상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는 향후 추가 회의에서 쟁점 예산에 대해 다시 논의할 계획이며, 여야가 어느 지점에서 접점을 찾을지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 처리 속도와 정국 주도권 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