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편중 보훈 인프라 재배치 필요”…원주시, 호국보훈공원 조성 국비 지원 요구
보훈 인프라 수도권 편중을 둘러싼 문제 제기와 지방 보훈 거점 구축 요구가 맞붙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가 호국·보훈 공원 조성을 내세우며 국비 지원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국가보훈부의 정책 기조와 지역의 역사 정체성이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가 정치권 안팎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원주시는 2일 원주 호국보훈공원 조성을 위한 국비 지원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전날 원주시 통합보훈회관에서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과 원주 지역 보훈 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시와 보훈 단체들은 이 자리에서 지역 보훈 현안과 국가 보훈정책 방향을 공유하며, 원주 호국보훈공원 조성 사업을 정부 차원의 정책 과제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간담회에서 원주시와 관내 보훈 단체장들은 호국보훈공원 조성 필요성과 함께 국비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수도권·서부권, 특히 서울과 대전, 세종, 천안 등지에 보훈 시설이 집중된 상황을 지적하며, 국가 보훈 인프라의 지역 균형 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원주 지역사회는 균형 있는 보훈 정책을 강조해 온 권오을 장관의 보훈 철학과 맞닿아 이번 건의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
원주는 을미의병, 을사의병, 정미의병 등 이른바 3대 의병 봉기가 모두 전개된 항일 의병 운동의 중심지다. 특히 민긍호 의병장으로 상징되는 항일 독립 전투의 발원지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6·25전쟁 당시 중부 전선을 안정시키는 계기가 된 원주지구 전투전적지가 위치해 있고, 제1군수지원사령부, 제36보병사단, 공군 제8전투비행단 등이 집결한 군사 안보 거점지역이기도 하다.
항일 독립 투쟁의 역사, 6·25전쟁 승전 서사, 현대 군사 안보 인프라가 한 도시에 집약된 사례는 전국적으로 드물다. 원주시는 이러한 특성을 근거로, 원주가 과거와 현재의 호국·보훈 이야기가 한 체계 안에서 이어지는 전국 유일의 호국·보훈 도시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주시는 최근 원주 호국보훈공원 조성사업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약 1년간 진행된 용역을 통해 시는 항일 운동, 6·25전쟁, 현대 안보 서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재구성해 시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보훈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발성 추모 공간이 아니라, 교육·휴식·체험이 결합된 상시 이용 공간으로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호국보훈공원은 역사, 치유, 희망 등 세 축을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공원 중심부에는 평화교육기념관을 배치해 원주의 호국·보훈 서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핵심 거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시민과 학생들이 독립운동과 전쟁, 그리고 오늘날의 안보 과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구성하겠다는 구상도 제시됐다.
또 원주시민의 숲은 명판 설치, 수목 기증 등 시민과 기업의 기부를 연계한 참여형 모델로 운영될 예정이다. 개인과 단체의 기여를 기록하고, 이를 공원의 주요 동선과 결합해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보훈 문화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원주시는 기억과 기념 중심의 시설 집적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이 공원을 이용하고 머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는 생활 밀착형 보훈 모델을 제시했다.
원주시는 최종보고회 결과를 토대로 투자 심사, 설계 공모, 전시 기획 등 후속 절차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총사업비는 186억원으로 추산됐으며, 2030년 개관을 목표로 일정을 잡았다. 국비 확보 규모와 시기, 지방비 분담 방식 등이 향후 정치·행정 협의 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원강수 원주시장은 원주의 역사성과 교통 여건을 들어 국가 보훈 거점도시로서의 적합성을 강조했다. 그는 원주의 호국·보훈 자산을 특정 세대나 지역의 기억에 머물지 않는 국가적 가치로 규정하며, "원주의 호국·보훈 자산은 특정 세대나 지역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일상에서 체감해야 할 국가적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춘 원주는 수도권·서부권의 보훈 수요를 분산·수용하고, 체험 기반의 보훈 정신 함양이라는 국가 보훈 정책을 현장에서 실증할 수 있는 최적의 도시"라고 강조했다.
국가보훈부는 아직 구체적인 지원 규모나 방식에 대해 명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권오을 장관이 균형 있는 보훈 정책을 강조해온 만큼, 향후 정부 예산 편성과 중장기 보훈 인프라 계획 과정에서 원주 프로젝트 반영 여부가 주목된다. 국회에서도 지역 간 보훈 시설 격차를 둘러싼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원주 사례가 지방 보훈 거점 모델로 확산될지 여부에 대한 검토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원주시는 향후 투자 심사와 예산 협의를 거쳐 중앙정부와 국회 설득 작업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정치권은 보훈 인프라 재편과 지역균형발전을 둘러싼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지방 보훈 거점 육성 관련 예산과 정책을 두고 보다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