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해성 신경유도관 전기자극…삼성서울병원, 안면신경 자가이식 대체 시도
안면신경 손상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자가 신경 이식 없이도 손상된 안면신경을 재생시키는 기술을 동물실험에서 입증했다. 수술 후 흉터나 감각 저하 같은 합병증이 적은 새로운 재생 플랫폼이어서, 향후 안면신경마비뿐 아니라 팔과 다리 등 말초신경 손상 전반의 치료 전략을 바꿀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 기술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는 시점을 신경재생 치료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조영상 이비인후과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정영미 박사 공동 연구팀이 쥐 동물 모델에서 생분해성 소재로 만든 신경 유도관을 이식하고, 여기에 전기 자극을 병행해 손상된 안면신경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실험 결과 자가 신경 이식과 유사한 수준의 활발한 신경 재생이 관찰되면서, 기존 표준치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안면신경마비는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안면신경이 바이러스 감염, 종양, 외상, 수술 합병증 등으로 손상돼 한쪽 얼굴이 처지거나 움직이지 않는 질환이다. 눈을 완전히 감지 못하거나 입이 한쪽으로만 벌어지는 기능 장애가 발생해 식사, 발음, 눈 보호 등 일상 기능에 광범위한 불편을 초래한다. 장기간 지속될 경우 표정 상실과 비대칭으로 인해 우울증, 대인기피 등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현재까지는 손상 부위가 크거나 자연 회복이 어려운 경우, 몸의 다른 부위에서 건강한 신경을 떼어와 이식하는 자가 신경 이식이 대표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돼 왔다. 다리의 비복신경 등 감각신경을 공여 부위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여 부위에 흉터가 남거나 감각 저하가 발생하는 등 새로운 후유증이 생길 수 있어, 수술 결정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줄이기 위해 생분해성 소재를 이용한 신경 유도관을 치료 전략에 도입했다. 신경 유도관은 손상된 신경의 양 끝단을 관 형태의 구조물로 연결해, 손상 부위를 가로질러 새로운 신경 축삭이 자라 들어가도록 길을 안내하는 장치다. 관 내부는 신경 재생에 유리한 미세환경을 유지하고, 외부의 기계적 충격이나 섬유화 조직 침입으로부터 재생 중인 신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신경 유도관의 핵심은 체내에서 서서히 분해되는 생분해성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비분해성 소재를 사용할 경우, 신경이 어느 정도 재생된 뒤에는 이물질 제거를 위한 추가 수술이 필요하다. 반면 생분해성 소재는 일정 기간 동안 구조적 지지와 보호 기능을 수행한 뒤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분해돼, 재수술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설계를 통해 환자의 신체적, 경제적 부담을 동시에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여기에 전기 자극 기술을 결합한 점도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전기 자극은 신경 세포막에 미세한 전류를 가해, 성장인자 분비와 축삭 연장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신경 유도관 주변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조건을 설정해, 신경 세포가 손상 부위를 가로질러 더 빠르게 성장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자가 신경 이식과 비교했을 때 신경 재생 정도와 기능 회복 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크지 않은 수준의 성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안면신경과 같은 말초신경은 중추신경에 비해 재생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손상 간격이 길거나 주변 조직 손상이 심한 경우 재생이 불완전해지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기존에는 공여 신경을 떼어와서 물리적으로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수술 시간 증가와 공여 부위 합병증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연구팀의 생분해성 신경 유도관과 전기 자극 결합 방식은 이런 구조적 한계를 줄이면서, 기능 회복 속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성과는 학술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조 교수는 지난 9월 스페인에서 열린 제15회 세계안면신경학회에서 이 연구 결과를 구두 발표해 최우수 연제상을 수상했다. 세계안면신경학회는 4년마다 개최되며, 안면신경 질환과 재건 수술, 재활 분야에서 권위 있는 국제 학회로 평가된다. 안면신경 분야 글로벌 연구진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국 연구진의 신경 재생 플랫폼이 기술적 우수성과 임상적 잠재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셈이다.
안면신경 손상 치료는 미용적 측면과 기능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영역이다. 표정근의 섬세한 움직임과 좌우 대칭을 최대한 복원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얼마나 잘 자라느냐뿐 아니라 성장 방향성과 연결 정확도가 중요하다. 관 형태의 유도 구조물은 신경 섬유가 비뚤어지거나 엉키는 것을 줄이고, 표적 근육으로 향하는 길을 정렬해주는 효과가 기대된다. 전기 자극은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가 보다 적극적으로 성장하도록 신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말초신경 재생용 신경 가이드 관 내지 튜브 형태 제품이 일부 상용화돼 있다. 다만 대부분이 손가락 신경이나 비교적 짧은 간격의 말초신경 손상을 대상으로 하고, 비분해성 혹은 제한적 분해 특성을 갖는 소재가 많다. 기능 회복 속도나 정도 면에서도 자가 신경 이식과의 격차가 존재해, 임상의들이 실제 수술에서 선택하는 데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특히 얼굴처럼 기능과 미용이 동시에 중요하고, 신경 경로가 복잡한 부위에 적용하기에는 기술적 장벽이 높았다.
이번 연구는 안면신경이라는 고난도 부위에서 생분해성 유도관과 전기 자극 결합 방식이 자가 이식에 근접한 재생 수준을 보였다는 점에서, 기존 상용 기술 대비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동물실험 단계에서 도출된 결과이기 때문에, 사람의 안면신경 구조와 길이, 주변 조직 환경 차이를 고려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향후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 재생 속도, 표정근 기능 회복, 감각 이상 여부 등을 얼마나 정량적으로 입증하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는 의료기기와 재생의학 분야 규제 체계를 어떻게 적용할지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생분해성 신경 유도관 자체는 체내 삽입형 의료기기로 분류되며, 전기 자극 장치는 별도의 의료기기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두 기술을 결합한 통합 플랫폼으로 상용화하려면, 안전성과 유효성 자료를 단계적으로 축적해 규제당국에 제시해야 한다. 특히 전기 자극 강도와 시간, 빈도 등의 조건이 신경 재생뿐 아니라 통증, 염증 반응 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이터 측면에서는 동물 모델에서 확보한 조직학적 분석과 행동학적 평가 결과에 더해, 향후 임상 단계에서 표정 분석, 근전도 검사, 영상 기반 신경 추적 등 정밀 데이터가 축적될 전망이다. 의료 인공지능과 결합할 경우, 환자별 손상 양상과 회복 속도를 예측하고 최적의 전기 자극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정밀 재활 전략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밀의료가 유전체 분석에서 시작해 치료기기와 재활 프로토콜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신경 재생 분야도 데이터 기반 개인맞춤형 접근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내외에서는 말초신경 재생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세포치료제나 조직공학을 활용해 신경 재생을 촉진하는 연구가 활발하며, 일부는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중국과 일본도 생체모사 재료와 3차원 바이오프린팅을 활용한 신경 재생 지지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누가 먼저 안전성과 재현성이 높은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 다양한 신경 손상 영역에 확장 적용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가 특정 부위의 수술 기법을 넘어, 말초신경 손상 전반에 적용 가능한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기술을 안면신경뿐 아니라 팔, 다리 등 사지의 말초신경 손상 치료로 확장해,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같은 외상 환자들의 기능 회복에도 적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생분해성 유도관의 크기와 구조, 전기 자극 조건을 부위별로 최적화하면, 다양한 길이와 직경을 가진 신경에 맞춘 맞춤형 제품군 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면신경마비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 선택지의 다양화가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올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자가 신경 이식과 보존적 치료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면, 향후에는 공여 부위 손상 부담을 줄인 재생 플랫폼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실제 임상 도입까지는 추가적인 대동물 실험, 1상 안전성 평가, 2상 이상에서의 유효성 검증 등 단계가 남아 있어, 상용화 시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장기 과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가 차세대 신경 재생 치료 플랫폼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생분해성 신경 유도관과 전기 자극을 결합한 기술을 통해 안면신경뿐 아니라 말초신경 손상 치료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 현장에 안착해 신경 재생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