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약자원으로 해녀 질환 짚는다…식약처, 제주 전시로 전통지식 재조명
생약자원을 활용한 전통 치유 지식이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혹한의 바다에서 물질을 이어온 제주해녀들이 스스로 축적해 온 생약 활용법은 근골격계 질환, 저체온증, 감압병 등 직업성 질환 관리의 실마리로 평가된다. 규제기관 산하 연구기관이 이를 전시의 형태로 공개하면서, 향후 유전체 분석과 빅데이터 기반으로 재해석하는 바이오 융합 연구의 전초 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해녀 문화가 가진 전통 의약지식이 산업화 가능한 생약 후보군으로 확장될지 업계 관심이 쏠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소속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국립생약자원관 제주센터는 전시관 생약누리에서 생약자원 해녀를 치료하다 기획전시를 내년 8월 31일까지 연다고 밝혔다. 국가 규제기관이 전통지식과 생약자원을 공식적으로 조명하는 장으로, 생약 관련 인허가와 표준화 정책에도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약주권을 내세운 정부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약누리는 국립생약자원관 제주센터에 조성된 상설 전시공간으로, 국내 자생 생약자원의 표본과 효능, 품질관리 체계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식약처는 해당 전시관을 통해 생약의 기원 식물과 약리 기전, 안전성 정보를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제공하고, 동시에 연구자와 산업계에 표준화된 자료를 축적하는 생체 데이터 허브로 키우고 있다. 특히 제주센터는 도서·해양 생태계 특성을 반영해 해조류와 희귀 자생식물 등 차세대 바이오소재가 될 수 있는 자원을 수집·분석하는 임무도 담당한다.
이번 전시는 제주해녀문화와 그에 얽힌 생약 사용 경험을 구체적 유물과 표본을 통해 보여준다. 해녀들이 채취하는 대표 해산물 표본과 물질 작업 시 착용하는 고무옷 등 해녀박물관 소장 유물 26점이 전시된다. 여기에 두통 완화를 위해 사용했다고 알려진 순비기나무, 관절 건강을 위해 이용됐다는 까마귀쪽나무 등 생약표본 7점이 함께 배치돼, 전통 경험 기반의 사용법이 현대 생약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시사한다. 해녀들이 물질 전후에 체온을 회복하고 휴식을 취하던 불턱 공간도 재현해 관람객이 작업 환경과 질환 발생 맥락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제주해녀들이 겪는 직업성 질환이 현대 산업재해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반복적인 잠수와 수압 변화로 인한 감압병, 장기간 저온 노출에서 비롯된 저체온증, 허리와 관절에 집중되는 근골격계 질환 등은 해양 작업자를 비롯해 냉동·저온 물류 종사자, 잠수 작업자에게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제주해녀들이 특정 생약자원을 활용해 증상을 완화해 온 경험은 이러한 직업군 전반에 적용 가능한 한약·건강기능식품 개발 소재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기존 민간요법 수준에 머물던 해녀 생약 활용 지식을 데이터화하고, 과학적 검증 단계로 연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립생약자원관은 각 생약자원의 기원 식물, 유효 성분, 독성 정보, 기존 임상 근거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향후 제주해녀 전통지식을 이 데이터와 연계하면, 약효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선별해 세포·동물실험과 임상시험으로 이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AI 기반 약효 예측 모델과 유전체 데이터가 결합되면, 특정 생약 성분이 어떤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에게 더 효과적인지까지 파악하는 정밀의료 연구로 확장될 수 있는 구조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이미 식물·해양 유래 물질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신약 후보로 발굴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토착민의 전통 의약지식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고속 스크리닝과 머신러닝을 통해 유효 성분을 찾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 한방과 전통의학을 디지털화해 보험급여 체계와 연동하고, 일부 물질은 글로벌 임상시험 단계까지 진입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통지식의 체계적 수집과 지적재산권 확보가 늦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 제주해녀 관련 전시는 생약자원과 전통지식을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상징적 시도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정책 측면에서는 전통지식을 활용한 생약 연구가 지식재산권과 생물다양성 협약, 나고야의정서 등 국제 규범과 연결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해녀 공동체가 세대에 걸쳐 축적한 생약 활용법이 향후 상업화될 경우, 이익 공유 구조와 권리 귀속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식약처 산하 기관이 초기 단계부터 공공전시와 교육을 통해 해당 지식을 공개하고, 지역사회와 협업하는 방식은 윤리적 갈등을 줄이는 한편, 공정한 이익 공유 모델을 설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식약처는 이번 기획전이 제주해녀문화의 가치와 생약자원의 다양한 활용 사례를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에도 여러 주제를 통해 생약자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획전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전시와 데이터 축적 작업이 실제로 표준화된 생약 원료, 기능성 소재, 디지털 치료제와 연계된 복합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기술과 전통지식, 산업과 제도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생약자원 활용이 진화할지가 한국 바이오 생약 산업의 다음 성장을 가르는 변수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