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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스마트진료 병원으로”…고대안산, 암중증 거점화로 지역의료 재편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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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중증질환 치료 패러다임이 생활권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수도권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에 1년 가까이 대기하며 ‘원정 진료’를 받는 구조를 줄이고, 거점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필수의료를 책임지는 방향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은 2030년까지 암·로봇수술 신관 건립과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진료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가동하며 경기 서남권 중증질환 거점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수도권 병상 쏠림과 지역 의료 공백을 동시에 완화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의 마스터플랜 핵심은 암과 중증질환 진료 역량을 서울 대형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되, 이를 환자 생활권 안에서 제공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병원은 개원 후 40여 년 동안 입원 병동과 연구 인프라는 확충해 왔지만, 외래 공간은 과별 분절 구조가 유지돼 다학제·정밀의료 중심의 최신 진료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내부 평가를 받아왔다. 복합질환 증가와 고령화로 여러 진료과의 협업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환자가 스스로 어느 과를 찾아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는 진료 지연과 의료 접근성 저하로 이어져 왔다.

새로 계획된 외래 중심 신관은 이러한 한계를 뒤집는 통합형 진료 플랫폼을 지향한다. 환자가 진료과를 찾아다니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질환 중심으로 구성된 다학제 팀이 환자에게 찾아가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암·중증질환 전용 진료구역, 고난도 수술과 연계된 회복·재활 공간, 정신건강과 영양 상담 등 포괄적 관리가 한 건물 안에서 이뤄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병원 측은 단순한 건물 신축이 아니라 중장기 경쟁력을 재설계하는 ‘구조 개편 프로젝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 인프라 측면에서는 고난도 방사선치료와 로봇수술 역량을 앞세운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이미 트루빔 STx, 바이탈빔 등 고정밀 방사선치료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여러 세대의 로봇수술 플랫폼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 내년 2월, 경기도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도입 예정인 차세대 수술로봇 다빈치5가 더해진다. 다빈치5는 포스 피드백 기능을 통해 집도의가 수술 중 조직의 탄성과 저항을 실제 손으로 느끼는 것에 가깝게 구현해, 미세한 힘 조절이 중요한 장기·혈관 주변 수술의 안전성과 정밀도를 높이는 장비로 평가된다.

 

로봇수술은 절개 범위를 줄이고 출혈을 최소화해 회복 속도를 높이면서도, 실제 수술 난이도는 높아지는 중증·고위험 환자 수술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고령 환자나 심혈관·대사질환을 동반한 환자의 경우,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합병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정밀한 기계 팔과 3차원 고해상도 영상, 섬세한 조작을 돕는 소프트웨어가 치료 결과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병원은 다빈치5 도입으로 경기 서남권에서도 간암, 대장암, 비뇨기계 암 등 고난도 수술을 서울 이동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암 치료 과정 전체를 생활권에서 책임지는 ‘풀 패키지 관리’ 전략도 병원의 차별화 요소다. 고려대 안산병원 암센터는 2014년 개소 이후 진단부터 수술, 방사선·항암·표적치료, 재활, 정신건강 관리까지 한 흐름 안에서 제공하는 원스톱 통합진료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유방내분비외과, 혈액종양내과, 비뇨의학과,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환자 단위로 팀을 꾸려 치료 계획을 세우고 추적 검사와 재활을 병행하는 구조다. 장기간 반복 내원이 필요한 방사선치료 특성상, 거주지 인근에서 고정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환자의 실질적 치료 지속률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려대 안산병원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축은 AI 기반 스마트 진료 환경 구축이다. 스마트병원 개념의 핵심은 단순한 전산화가 아니라 환자 흐름과 병원 자원의 움직임을 데이터로 통합해, 진료실과 검사실, 병상과 수술실, 인력과 장비 배치를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데 있다. 현재 상당수 대형병원에서 환자 대기시간은 길지만 실제 진료·검사실은 시간대별로 유휴 상태가 발생하는 등 구조적 비효율이 나타난다. 병원 측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환자 도착 시간, 검사 소요 시간, 응급환자 유입 패턴 등을 예측하고, 이에 맞춰 우선순위와 동선을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을 신관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검체 이송 로봇, 통합 모니터링 센터, 병원 전체 자원을 한 화면에서 관리하는 디지털 대시보드 등이 도입된다. 이러한 물리·디지털 시스템은 건축 설계와 분리해서 도입할 경우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관 설계 단계에서부터 로봇 이동 동선, 데이터 수집 지점, 응급·중증 구역과 일반 외래 구역 간 연결성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긴급 환자는 더 빠르게, 안정적 상태의 환자는 표준 프로토콜에 따라 효율적으로 진료를 받는 ‘우선순위 기반 의료 운영’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중증질환 거점화를 향한 전략은 지역 의료 전달체계 개편과 맞물린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중증·필수의료에 집중하고, 만성질환·경증 질환 관리는 지역 병의원에 회송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회송체계와 협력병원 네트워크를 고도화해, 상급종합병원이 모든 환자를 흡수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중증환자와 필수의료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제6기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중요한 지표인 전문진료 질병군 비율, 경증 환자 회송률, 소아 응급환자 대응력 강화와도 직결된다.

 

경기 남부권에서는 이미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둘러싼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과 중앙대광명병원 등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추진 중이며, 배곧서울대병원도 개원을 앞두고 있어 중증환자 유치와 필수의료 인력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 안산병원은 중환자실 병상 확대, 수술실 추가 확보, 간호교육 전담인력 확충 등을 통해 공공성과 중증응급의료 지표를 개선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 강화에 대비한 선제적 인프라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러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려면 상당한 재정 투입과 지속성이 필요하다. 최근 전공의 복귀로 진료 운영이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병원 운영 전반은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인건비와 장비 투자, 건축비 상승 등 외부 변수는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정부의 중증·필수의료 지원 정책, 수가 체계 개편,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따른 인센티브 구조가 향후 계획 이행 속도와 범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문의들은 수도권 병상 쏠림과 지역 환자의 서울 원정 진료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일 병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특정 권역 거점병원의 중증역량 강화는 필수적 전제 조건이라고 본다. 생활권 내에서 고난도 암수술과 장기적인 항암·방사선치료, 재활과 정신건강 관리까지 포괄하는 정밀의료 체계가 구축될 경우 환자의 치료 이탈을 줄이고, 의료진 교육·연구 기능도 지역에 안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안산병원의 마스터플랜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경기 서남권 의료 지도는 상당한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대형병원과의 경쟁을 넘어 권역 내 병원 간 협력과 역할 분담이 어떻게 재정립될지, 그리고 AI 기반 스마트병원 모델이 실제 진료 효율과 환자 경험 개선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관건이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프로젝트가 중증·필수의료 중심의 지역 의료 생태계를 뿌리내리게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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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안산병원#암센터#다빈치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