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맞추려 조건 간과 안 돼"…브런슨, 이재명 임기내 전작권 전환에 신중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둘러싼 속도전과 신중론이 다시 맞부딪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제시한 가운데, 한미연합군 수장을 맡고 있는 제이비어 브런슨 사령관은 조건 충족을 우선해야 한다며 속도 조절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은 12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공동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정부가 내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일정과 관련해 "일정을 맞추기 위해 조건을 희석하거나 간과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건에 기초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내 전작권 전환 구상에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달성하려 하고, 우리는 조건 충족을 마쳐야 하는 목표 시점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목표 시점을 분명히 두되, 군사적·작전적 조건에 따라 일정 조정 가능성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성격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브런슨 사령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건과 조건이 바뀌기 때문에 과거에 설정한 조건들이 현재에도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며 "이 조건들은 우리의 준비태세와 직결되는 부분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 임기인 2030년까지 전작권 전환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황에서, 연합방위를 주도할 한국군의 군사능력과 지휘체계가 실제로 그 수준에 도달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전작권 전환이 한미 연합방위 태세 약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점도 부각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결국 전작권 전환을 통해 우리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작권 주도권이 한국군으로 넘어가더라도 억제력과 대응능력은 오히려 강화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병력 문제와 관련해선 현 규모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구상에서 제기된 감축설을 상기시키며 "주한미군을 최저 2만8천500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법적으로 명문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라 저희는 2만8천500명을 최저치로 두고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주한미군 병력을 2만8천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2026 회계연도 미국 국방수권법안이 10일 현지시간 기준 미 연방 하원을 통과한 상황과 맞물려 주목을 받는다. 법률로 명시된 최저 병력선에 기초해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거듭 낸 셈이다.
다만 병력 구조의 질적 조정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우리의 병력구조가 적절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지상영역에 집중돼 있는데, 사이버전과 전자전, 우주전, 공중전, 해상전에 대해 약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병력 총규모는 유지하되, 미래전 양상에 맞춰 사이버·우주·전자전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풀이된다.
이날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내 전작권 전환 목표를 못 박은 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나온 첫 고위급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목표와 한미가 합의한 조건 기반 전환 원칙 사이에서, 속도와 안정성의 긴장 관계가 다시 부각되는 모양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그간 공통된 입장으로 전작권 전환은 "조건에 기초해 추진한다"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 정치권에선 전환 속도와 범위를 둘러싸고 입장 차가 컸다. 여당은 한미 공조와 억제력 강화를 전제로 한 신중한 전환을 강조해 왔고, 제1야당을 포함한 야권은 한국군 주도권 강화를 위해 보다 과감한 일정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브런슨 사령관 발언을 두고 양면적 평가가 나온다. 한쪽에선 조건 기반 원칙을 재확인한 발언으로 보고, 전작권 전환 시기 자체를 문제 삼았다기보다 준비태세 강화에 무게를 둔 메시지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반면 일부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내 달성 구상에 대해 사실상 속도 조절론을 부각한 것이라며, 향후 한미 간 협의에서 일정 조정 논의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 병력 유지, 미래전력 구조 개편은 한미 동맹과 한반도 안보 구도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국방부와 대통령실은 한미 협의 채널을 통해 조건 기반 전환 원칙을 유지하되, 한국군 주도 연합방위 능력 강화 방안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도 국방위원회와 예산 심사 과정 등을 통해 전작권 전환 준비와 관련된 군 구조 개편, 예산 확보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