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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비만치료제 부상”…글로벌 신약투자 확대에 주목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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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약 개발 투자가 확대되면서 제약·바이오 업종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이 자국 내 약가 부담을 유럽과 기타 지역으로 분산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조정하면서, 각국이 자국 신약 파이프라인 확충과 바이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투자를 늘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벤처 바이오텍을 뒷받침하는 국가 펀딩과 비만 치료제 등 유망 치료제 분야의 성장성이 맞물리면서, 제약·바이오 섹터가 중장기 성장 스토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여노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5일 보고서에서 미국 약가 규제가 글로벌 신약 투자 지형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이 고가 신약에 대한 재정 부담을 유럽과 글로벌 시장으로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각 국가가 자체 신약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여지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주요국이 혁신 신약을 자국에서 발굴하고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강화할 경우, 초기 연구개발 단계에 있는 바이오텍에 대한 자금 유입도 증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가·지역별 합작 펀드가 바이오텍의 장기 자금 조달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고위험 고수익 특성을 지닌 초기 단계 바이오 기업의 투자 매력도가 이전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 연구원은 공공·민간이 함께 조성하는 바이오 펀드가 임상 단계별로 후속 투자까지 끌고 가는 구조가 정착되면, 신약 개발 성공사례가 늘어나고 산업 전반의 밸류에이션 재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유럽에서는 유럽투자은행이 바이오텍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유럽투자은행은 안젤리니 그룹과 함께 7500만 유로를 매칭해 총 1억5000만 유로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고, 향후 6년간 유럽 내 바이오텍 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공적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분담해 초기·중기 단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기존 민간 벤처캐피털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장기 임상 개발 리스크를 흡수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공공 펀딩이 유럽 바이오 생태계의 기술 자립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도 바이오·제약 분야의 전략 산업화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연방위원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생명공학과 제약 분야에서 혁신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 유지, 산업 경쟁력 회복 차원에서 향후 5년간 1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초연구 지원뿐 아니라 생산시설 현대화, 바이오 제조공정 자동화, 임상·허가 인프라 개선에 이르는 전 주기에 걸친 투자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 같은 국가 주도 펀딩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유럽이 앞다퉈 바이오 투자 확대에 나서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도 규제 샌드박스, 세제 혜택, 국가 펀드 조성 등 정책적 수단을 통해 자국 바이오텍을 지원하는 움직임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경쟁국 대비 임상 인프라와 생산기술, 인허가 속도 등에서 강점을 확보하는 국가가 글로벌 바이오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여 연구원은 비만 치료제 시장의 구조적 성장성도 제약·바이오 업종의 투자 포인트로 제시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최근 지침에서 비만 치료용 약물로 GLP1 계열 약물을 공식 권고하고, 각국이 GLP1 비만 치료제에 대한 국민 접근성을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GLP1은 당 조절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을 모방해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로, 당뇨병 치료를 넘어 비만 치료 영역으로 적응증이 확장되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권고는 비만을 생활습관 문제가 아닌 만성질환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료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 보험제도와 가이드라인에 GLP1 비만 치료제가 포함되면, 실제 투약 환자 수 증가와 장기 처방 확대가 맞물려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질 여지도 있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GLP1 비만 치료제가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대사 증후군 개선과 연계된 임상 데이터들을 축적하면서,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전반적인 대사질환 관리 솔루션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비만 치료제 시장 확대는 국내외 제약사와 바이오텍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빅파마와의 라이선스 인·아웃, 바이오시밀러 및 개량신약 개발, 주사제에서 경구제·패치 제형으로의 제형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와 연계한 복합 치료 프로그램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펩타이드 합성 기술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GLP1 후발주자 시장을 공략할 여지가 있고, 병원·플랫폼 기업과 협력해 비만 관리 통합 솔루션을 구축하는 전략도 모색할 수 있다.

 

다만 글로벌 신약 투자 확대와 비만 치료제 붐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 곧바로 성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은 임상 설계와 데이터 표준, 인허가 예측 가능성에서 앞서 있는 반면, 국내는 임상 인력과 환자 풀, 규제 명확성 면에서 여전히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빅파마와 비교할 때 파이프라인 규모와 글로벌 마케팅 역량에서도 격차가 크다.

 

시장에서는 각국 정부의 투자가 실제로 얼마나 신속하게 집행되고, 어떤 분야에 우선 배분되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 관련 규제 정비와 임상·허가 인프라 고도화, 기술성 평가 기준 개선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민간·공공 펀드가 초기 바이오텍의 임상 후속 투자까지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금융 생태계 조성이 요구된다.

 

여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글로벌 자본과 정책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만큼, 중장기 관점에서 제약·바이오 업종의 구조적 성장 스토리를 점검할 시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신약 파이프라인 경쟁력, 글로벌 임상 및 인허가 경험, 빅파마와의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 중심으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글로벌 신약 투자 확대와 GLP1 비만 치료제 시장 성장세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실적 개선과 가치 재평가로 연결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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