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혈관 재개통 뒤 저혈압 관리 논란…세브란스, 새 지침 이끌어 환자 안전 부각

송다인 기자
입력

급성 뇌경색 혈관 재개통술 이후 혈압을 지나치게 낮추는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세브란스병원 남효석 신경과 교수 연구팀의 임상 결과가 미국심장학회와 대한뇌졸중학회의 진료 지침 개정에 직접 반영되면서, 그동안 경험적으로 이뤄지던 ‘저혈압 중심’ 관리가 과학적 근거에 따른 재조정을 맞고 있다. 업계에서는 혈관 재개통술 후 관리 전략이 바뀌는 것이 뇌졸중 치료 성적과 환자 안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성 뇌경색은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뇌로 가는 혈류와 산소 공급이 급격히 줄어드는 질환이다. 이를 방치하면 광범위한 뇌 손상으로 이어져 편마비, 언어장애 같은 후유증을 남기거나 생명을 위협한다. 이 때문에 막힌 혈관을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뚫는 혈관 재개통 치료가 핵심이다. 혈전이 크거나 많아 약물만으로 해결이 어렵다면 대퇴동맥 등 큰 혈관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해 막힌 뇌혈관까지 올라간 뒤 혈전을 직접 제거하는 동맥 혈관 재개통술이 활용된다.

혈관 재개통이 성공하면 손상된 뇌 조직으로 혈류가 급격히 회복되는 반면, 혈관벽과 혈액 뇌 장벽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과도한 혈류와 압력이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진료 지침은 수년간 재개통술 후 수축기 혈압을 일정 수준 이하에서 관리하도록 권고해 왔다. 미국과 유럽 권고안은 그 기준을 수축기 180 미만으로 제시해 왔고, 국내 임상 현장에서도 이를 기본 틀로 삼아왔다.

 

문제는 후향 분석 연구들에서 180보다 더 낮은 목표 혈압이 뇌출혈을 줄이고 장기 기능 회복을 돕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잇따랐다는 점이다. 상당수 의료진은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현장에서 수축기 140 안팎까지 낮추는 공격적 혈압 조절을 시도해 왔다. 다만 이들 연구는 무작위배정이 아닌 관찰 연구가 대부분이라 인과관계를 단정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남효석 교수팀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2023년 동맥 혈관 재개통술을 받은 급성 뇌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목표 혈압 수준을 무작위로 배정해 비교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기존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축기 180 미만을 유지했고, 다른 그룹은 이를 훨씬 낮춘 140 미만으로 관리했다. 그 결과 140 미만 군에서 기능 회복 불량 등 예후가 나빠질 위험이 1점84배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학회지 JAMA에 게재되며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연구는 단순 상관관계가 아닌 무작위배정 방식으로 저혈압 목표가 실제로 예후 악화를 유발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급성기 뇌경색 환자에서 이미 허혈 손상을 받은 뇌 조직은 경계 부위의 혈류에 더 의존하는데, 수축기 140 미만으로 혈압을 강하게 낮추면 이 경계 부위의 관류 압력이 떨어져 추가적인 뇌경색이 확장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제시된다. 즉 뇌출혈 예방을 위해 혈압을 너무 낮추다 오히려 뇌 허혈을 악화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임상 근거를 토대로 미국심장학회와 대한뇌졸중학회는 2025년 개정되는 급성 뇌경색 진료 지침에 동맥 혈관 재개통술 후 수축기 혈압을 140 미만으로 관리하는 것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새로 포함했다. 두 학회는 이 권고에 대해 각각 레벨 A, 레벨 Ia라는 최고 수준의 근거 등급을 부여했다. 다수의 고품질 연구 결과와 무작위 임상시험이 뒷받침될 때 부여되는 등급으로, 세계 각국의 임상 현장에서 곧바로 기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개정으로 재개통술 후 혈압 관리의 목표 범위는 수축기 140에서 180 사이로 재정립되는 흐름이 예상된다. 뇌출혈을 우려해 140 이하로 낮추던 기존 관행은 조정되고, 허혈 부위에 충분한 혈류를 유지하면서도 혈관 손상을 최소화하는 균형 잡힌 관리 전략이 중시될 전망이다. 실제로 국내외 뇌졸중 센터들은 프로토콜 개편과 함께 혈압 조절 약제 종류, 용량, 투여 속도까지 세밀하게 재점검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차원에서 뇌졸중 치료는 혈관 재개통술 도입 이후 두 번째 변곡점을 맞고 있다. 첫 번째가 뇌혈관 안으로 들어가 직접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 기술과 장비 발전이었다면, 두 번째는 재개통 이후 뇌를 어떻게 보호하고 기능을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집중 관리 전략이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뇌졸중 센터들은 혈압뿐 아니라 체온, 혈당, 호흡 상태 등 급성기 전반의 생리학적 지표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집중 뇌 보호 관리’ 개념을 도입하는 추세다. 이번 혈압 지침 개정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관리 변수의 기준이 바뀐 사례에 속한다.

 

국내 의료계에서는 이번 변화가 뇌졸중 치료 질 관리 지표와 보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뇌졸중 인증 병원이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재개통술 후 혈압 관리 성적을 평가받는 만큼, 새로운 목표 범위에 맞춘 프로토콜 구현과 교육이 병원 경영과 직결될 수 있어서다. 반대로 과도한 저혈압 유도에 따른 잠재적 부작용이 줄어들면 전체적인 의료 비용과 재활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다만 환자마다 동맥경화 정도, 심장 기능, 동반 질환이 크게 다른 만큼 일괄적으로 한 수치를 적용하기보다 개별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혈압이 오래 지속된 환자에서 급격한 혈압 강하는 뇌뿐 아니라 신장, 심장에도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기본 틀로 하되,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의 기저 혈압 수준과 영상 소견, 동반 질환을 종합해 세부 목표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효석 교수는 동맥 혈관 재개통술 후 과도한 저혈압 유지가 위험하다는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곧바로 전 세계 진료 지침 개정으로 이어졌다며, 성공적인 재개통 치료 뒤 수축기 혈압 140 미만 유지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목표 수치 범위를 140에서 180 사이로 설정해, 뇌출혈과 추가 허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지침 개정이 실제 임상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해 환자 예후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남효석#세브란스병원#급성뇌경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