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로 쏜다” 컨텍, 제주 광지상국 실증로 위성통신 전환 노린다
레이저 기반 광통신이 위성통신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주파수 대역이 포화 상태에 근접하면서, 대용량 데이터 전송을 요구하는 지구관측·저궤도 위성 사업자들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는 흐름이다. 국내 우주통신 기업 컨텍이 제주 한림읍에 조성 중인 민간 위성국 집적단지 아시안스페이스파크에 광통신 지상국을 구축하며, 실제 상용 위성망 전환을 겨냥한 선제 실증에 착수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가 차세대 위성통신 경쟁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컨텍은 제주 한림읍 상대리 일대에 조성 중인 아시안스페이스파크에 국내 첫 민간 광통신지상국을 구축해 내년 1분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전파 방식 지상국과 달리 레이저를 활용해 위성 데이터 송수신을 수행하는 광통신지상국은, 위성 주파수 대역 포화와 대용량 데이터 전송 한계를 넘기 위한 차세대 인프라로 꼽힌다.

이재원 컨텍 우주사업총괄부사장은 제주 아시안스페이스파크에서 “지금 위성 주파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꽉 찬 상황이라 민간이 새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대안으로 광통신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위성통신용 전파는 국제기구를 통해 대역과 궤도 슬롯이 할당되는데, 각국과 글로벌 사업자들의 진입이 급증하면서 신규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컨텍이 구축하는 광통신지상국은 위성에 탑재된 광통신 모듈과 레이저 신호를 주고받는 구조다. 광통신 모듈은 레이저 빔을 사용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장치로, 동일 시간당 전송량을 크게 늘릴 수 있고 전파 간섭 위험이 적다. 다만 현재 상업위성 가운데서는 관련 모듈 탑재 사례가 많지 않아, 글로벌 사업자들도 본격 상용화 이전의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컨텍은 이 공백을 선점 기회로 보고 있다. 해당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마이크로파·무선 주파수 방식 대비 대역 제약이 적어, 초고해상도 위성영상이나 대량 센서 데이터를 지연 없이 내려받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회사는 이미 호주 퍼스에 첫 광통신지상국을 구축해 시험 운용 중이며, 제주가 두 번째 거점이 된다.
보안 측면에서도 광통신지상국은 차별성을 가진다. 컨텍은 양자 키 분배와 양자 암호화 통신 기술을 적용해 위성과 지상국 간 통신 구간을 보호한다는 계획이다. 광자 단위로 암호 키를 주고받는 양자 키 분배 기술은 도청이나 중간자 공격이 시도될 경우 신호 교란이 즉시 감지되는 구조여서, 군·정부·금융 데이터 전송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고보안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부사장은 “아직 전 세계적 성공사례는 없지만 국제 학회와 컨퍼런스에서 여러 나라가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다”며 “전파 대신 광통신을 요구하는 실수요가 생기면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실증과 구축을 먼저 해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일부 위성사업자가 레이저 링크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나, 상업 서비스용 광통신지상국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제주를 거점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전파환경과 지리적 이점이 있다. 이 부사장은 “제주도는 전파환경이 깨끗하고 장애물이 없어 컨텍의 아시아권 핵심 지상국 허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파 간섭원이 상대적으로 적고, 주변에 고층 구조물이 드문 지역 특성이 위성 신호 수신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컨텍은 약 200억원을 투자해 한림읍 상대리 일대 20만 제곱미터 부지에 6기의 안테나 설치 기반시설과 방문자센터, 전력·통신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이미 핀란드 지구관측 위성기업 ICEYE와 프랑스 지상국 서비스 업체 KSAT 등 글로벌 위성 운영사가 제주 아시안스페이스파크를 통해 데이터를 수신 중이다.
민간 상업지상국이라는 점도 경쟁 포인트다. 국가 지상국이 7점3미터급 대형 안테나를 표준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컨텍은 4미터급 안테나를 기본 단위로 삼는다. 이 부사장은 “국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호를 놓치지 않는 걸 우선하지만 민간은 비용 효율을 중시한다”며 “안테나 크기만으로도 설치 간격과 운영비가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소형 안테나를 다수 분산 배치함으로써, 설치와 유지비용을 낮추면서도 위성 추적 커버리지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컨텍은 제주 아시안스페이스파크를 단순한 지상국 집적지가 아닌 아시아권 위성 데이터 허브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 부사장은 “제주가 동쪽은 태평양, 서쪽은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며 위성 데이터 공백이 크게 생기는 구간을 메울 수 있는 최적의 위치”라며 “생각보다 금방 해외 고객들이 들어왔고 지금도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저궤도 위성이 북태평양과 동아시아 상공을 통과할 때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떨어뜨리는 중계 거점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도 강조하고 있다. 컨텍은 아시안스페이스파크 방문자센터를 내년부터 중·고등학생에게 무료로 개방해 우주통신 인프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 부사장은 “제주에서 우주산업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방에 위치한 우주 관련 산업단지가 교육과 관광 수요를 동시에 끌어들이는 사례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국내에서는 아직 광통신 기반 위성지상국에 대한 명시적 규제 틀이 정교하게 마련되지 않았지만, 전파 대신 빛을 사용하는 만큼 국제 우주통신 규제와 보안 규정 적용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과 유럽은 관련 표준과 시험 규격을 준비 중이며, 일본도 정부 주도로 광위성통신 실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위성통신 트래픽이 영상·클라우드 서비스·국가 인프라 데이터 중심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만큼, 광통신지상국과 같은 차세대 인프라의 조기 실증이 향후 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본다. 산업계는 제주에서 시작되는 컨텍의 광지상국 프로젝트가 실제 상업 서비스로 이어질지, 그리고 글로벌 위성 네트워크 판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