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를 품은 시장의 밤”…부안 설숭어 축제에서 바다와 일상이 만나는 순간
요즘 여행 일정을 짤 때, 사람들은 관광지만이 아니라 그 지역만의 축제를 먼저 검색하곤 한다. 예전엔 수산물 축제가 관광객 유치를 위한 행사쯤 여겨졌지만, 지금은 제철 음식과 로컬의 삶을 한꺼번에 느끼는 일상이 됐다. 사소해 보이는 주말 일정 속에서, 여행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2월 초,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부안상설시장 야외주차장은 설숭어의 은빛으로 채워진다. 부안 앞바다에서 건너온 설숭어가 좌판 위에 줄지어 오를 때, 넓은 주차장 한편에선 구수한 숭어 굽는 냄새가 퍼지고 다른 한편에선 아이 손을 잡은 가족과 연인이 체험 프로그램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설렘을 나눈다. 익숙한 시장 주차장이지만, 그날만큼은 어촌 마을을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부안 설숭어 축제는 이제 부안군을 대표하는 수산물 축제로 자리 잡았다. 설숭어가 제철을 맞는 시기에 맞춰 열리는 축제는 설숭어 특유의 풍미와 품질을 알리는 동시에, 부안 어업인의 삶을 응원하는 무대가 된다. 회와 구이, 탕과 찜 등 설숭어로 선보이는 다양한 요리 앞에서 관광객들은 맛을 음미하며, 이 생선을 이곳까지 데려온 바다와 사람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현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건 메인 공연이다. 숭어낚시 여성듀오 비타가 경쾌한 무대로 첫 분위기를 띄우고, 부안 출신 가수 한태웅이 고향 무대에 올라 친근한 정서를 전한다. 이어 메인공연의 주인공 진성이 무대에 오르면 시장 야외주차장은 금세 작은 콘서트장이 된다. 관람객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자를 맞춰 발을 굴리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서서히 흐려지는 순간을 온몸으로 느낀다.
축제의 매력은 무대 밖 체험 프로그램에서 한층 더 드러난다. 숭어잡기 체험장에 들어서는 아이들은 처음엔 차가운 물살에 움찔하지만, 커다란 숭어를 품에 안는 순간 웃음과 환호를 터뜨린다. 어른들도 바지단을 걷어붙이고 물속으로 들어가면서 잠시 나이를 잊는다. 손으로 생선을 잡는 이 짧은 경험이 바다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일깨운다.
숭어구출대작전 프로그램은 놀이와 학습의 사이를 찬찬히 메운다. 게임처럼 진행되는 과정 속에 수산자원 보호와 바다 생태에 대한 메시지가 녹아 있다. 참가자들은 미션을 수행하며 물고기 한 마리의 생명이 어촌 경제와 생태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교육용 설명보다 몸으로 겪는 체험이 오래 남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축제 현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숭금벨 프로그램은 관객 참여가 핵심이다. 진행자의 재치 있는 멘트와 함께 숭어와 부안, 지역 바다에 얽힌 퀴즈와 미션이 이어지면, 관람객은 손을 번쩍 들고 답을 외치며 한껏 몰입한다. 정답이 맞을 때마다 터지는 웃음과 박수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이름 대신 얼굴을 기억하게 된다. 전통시장 공간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광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비자 참여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숭어경매이벤트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든다. 경매사 목소리가 시장에 울려 퍼지면 참가자들의 손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설숭어를 둘러싼 정보와 이야기들이 얹히면서 흥정의 재미가 더해진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이는 모습은 한 편의 작은 드라마처럼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수산물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업과 계절의 리듬이 담긴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흐름은 부안상설시장이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를 다시 비추기도 한다. 평소 지역민의 장보기 공간이자 생계를 책임지던 시장과 야외주차장은 축제 기간 동안 문화 교류의 장으로 확장된다. 상인들은 설숭어 축제를 계기로 더 많은 손님을 맞고, 관광객은 시장 골목을 거닐며 부안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마주한다. 좌판마다 다른 억양의 목소리, 씀씀한 바다 냄새와 갓 지진 전 통닭 냄새가 뒤섞인 공기, 현금을 주고받으며 오가는 짧은 농담들은 도시의 대형마트에선 쉽게 찾기 힘든 정서를 전한다.
부안군과 부안상설시장상인회가 함께 준비한 축제는 지역 수산물 소비 촉진과 관광 활성화라는 두 가지 바람을 품는다. 축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가 지역민에게 또 다른 동력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여행객, 설숭어의 제철 맛을 찾아온 미식가, 공연 무대를 따라다니는 음악 애호가까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안을 기억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축제의 성과가 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로컬 수산물 축제를 “먹는 여행에서 머무는 여행으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한 지역의 음식을 맛보고, 그 음식이 자라난 바다와 시장을 함께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여행자는 잠시 그곳의 주민이 된다.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 경매와 시장 산책은 겉으로는 볼거리와 놀거리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이 스스로의 삶을 소개하는 서사가 깔려 있다.
부안 설숭어 축제는 2025년 12월 5일부터 6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부안상설시장 야외주차장에서 열린다. 짧은 이틀 동안, 방문객은 시장의 소박한 풍경 사이로 바다를 품은 설숭어를 마주하고, 몸을 움직이는 체험과 귀를 채우는 음악,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온기를 함께 느끼게 된다. 작은 지역 축제로 시작된 이 시간들이, 바다와 마을, 사람을 천천히 이어주는 기억으로 오래 머물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작고 사소한 선택처럼 보이는 한 번의 축제 방문이지만, 우리 삶의 속도와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