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더 위협적 심부전"…초고령사회 한국, 노년 의료위기 경고장
심장이 전신으로 혈액을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는 심부전이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빠르게 늘면서 만성 심장질환이 한국 의료체계의 새로운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혈관 수축과 감염 증가 등으로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기 쉬워, 70대 이상 노년층의 집중 관리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는 심혈관질환 관리가 고령사회 의료비 구조와 디지털 헬스케어 수요를 동시에 바꿀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심부전학회가 발표한 심부전 팩트시트 2025에 따르면 국내 심부전 유병률은 2002년 0.77퍼센트에서 2023년 3.41퍼센트로 약 4.4배 증가했다. 고령층에서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50대 2.5퍼센트, 60대 6.3퍼센트, 70대 12.9퍼센트로 연령이 오를수록 위험이 급격히 커지고, 80세 이상에서는 26.5퍼센트에 달해 4명 중 1명이 심부전을 앓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심부전 환자 중 50대 이상이 48.2퍼센트를 차지해, 심부전이 사실상 노년기 대표 만성질환으로 자리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심부전은 관상동맥질환, 심근경색 후유증, 장기간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 판막질환, 심근증, 부정맥 등 여러 심장질환이 누적되면서 심장의 수축력이 떨어지고 구조가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심장은 하루 평균 10만 번 박동하며 혈액을 전신에 공급하는데, 이 펌프 기능이 떨어지면 몸 전체에 산소와 영양분 전달이 부족해지고 노폐물 배출에도 문제가 생긴다. 특히 좌심실 기능 저하가 두드러지는 수축기 심부전과, 수축력은 비교적 보존됐지만 이완이 잘 되지 않는 이완기 심부전 등 여러 형태가 있어 정밀한 진단과 맞춤형 치료 전략이 요구된다.
겨울철 심부전 악화 위험이 높다는 점은 계절별 병원 내원 패턴에서도 확인된다.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말초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상승하고 심장은 더 강한 압력으로 혈액을 내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와 심근 부담이 증가해 이미 심장 기능이 약화된 환자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된다. 여기에 활동량 감소로 인한 혈액순환 저하, 난방으로 인한 탈수, 실내외 온도 차, 염분 섭취 불균형이 겹치면 심부전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 겨울철에 늘어나는 감기와 폐렴 같은 호흡기 감염도 심장의 부담을 키워 입원이나 사망 위험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초기 증상이 노화와 혼동되기 쉽다는 점도 조기 진단을 어렵게 만든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누우면 호흡이 불편해 상체를 세워야 잠을 자거나, 다리와 발이 붓고 체중이 짧은 기간에 갑자기 느는 패턴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피로감, 식욕 감소, 복부 팽만, 밤중 잦은 배뇨, 기억력 저하 등 비특이적 증상이 동반되면서 노인의 일반적 노화 현상으로 오해되기 쉽다. 황희정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가벼운 호흡곤란이나 부종도 심장 기능 저하를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며, 흉부 엑스선과 심장초음파 검사를 통해 비교적 간편하게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치료의 핵심은 손상된 심장의 부담을 줄이고 펌프 기능을 최대한 보조하는 것이다. 현재 표준치료는 약물요법이 중심을 이룬다. 과다한 체액을 줄여 호흡곤란과 부종을 조절하는 이뇨제, 신경호르몬 활성도를 조절해 생존율을 높이는 ARNI 복합제와 ACE억제제, 심박수를 안정시키는 베타차단제, 체액과 염분 축적을 줄이는 알도스테론 수용체 차단제, 그리고 당뇨병 치료제에서 출발했지만 심부전에서 사망과 입원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된 SGLT2억제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약제 조합은 최근 10여 년간 심부전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약물치료만으로 증상 조절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기기와 수술을 활용한 고난도 치료가 옵션이 된다. 좌우 심실의 박동을 맞춰 펌프 효율을 높이는 심장재동기화치료용 기기, 치명적 부정맥 발생 시 전기 충격으로 심장을 살리는 삽입형 제세동기 같은 이식형 기기가 대표적이다. 질환이 말기에 이른 환자에게는 체외 장치를 포함한 인공심장과 심장이식 수술 같은 고위험 고난도 치료가 고려된다. 학계에서는 고령화와 함께 이런 고가 심장 기기와 수술 수요가 늘면서, 병원 재정과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심부전은 일회성 치료로 사라지는 질환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관리가 전제된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 심장 기능이 호전됐다고 판단해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재발 또는 급격한 악화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료진은 꾸준한 약물 복용과 정기적인 외래 진료, 염분 섭취 제한과 체중 관리, 금연과 적절한 운동 등 생활습관 변화가 병행돼야 예후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하루 체중이 갑자기 2킬로그램 안팎 증가하는 패턴은 체액 과다가 진행 중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년층 심부전 환자의 겨울철 관리는 단순한 방한을 넘어선 포괄적 건강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외출 시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도록 여러 겹의 옷을 착용하고, 집 안에서는 온도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짠 음식과 국물 섭취를 줄여 체액 과다를 막고, 의료진과 상의해 적절한 수분 섭취량을 정해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체중을 측정해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고, 독감과 폐렴 백신 접종을 통해 호흡기 감염을 예방하는 전략 역시 필수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복용 중인 약제 변경이나 건강기능식품 추가 복용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한 뒤 결정해야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과 심부전 환자 급증이 겹치면서, 병원 중심 치료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경고도 제기한다. 가정에서 혈압과 체중,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병원과 실시간 연계하는 원격 모니터링과, 인공지능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해 의료진에게 알리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모니터링이 재입원률을 줄이고, 약물 조절을 세밀하게 할 수 있게 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돼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플랫폼과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보험 수가와 데이터 활용 기준 등 제도적 장벽이 상용화 속도를 좌우할 변수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심부전이 고령층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표 질환인 동시에,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폐렴과 감염 등과 결합된 반복 입원이 늘어나면 병상 회전율과 의료 인력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심부전이 단순한 심장질환이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 체계와 디지털 헬스케어, 장기요양 시스템을 아우르는 고령사회 인프라 전환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결국 기술과 치료제 발전 못지않게, 일상 생활 속 예방과 조기 진단, 연속적인 관리 체계가 구축되는지가 새로운 성장과 지속 가능한 의료를 가르는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