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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정치 여론도 읽는다”…보수 진영 분열, 데이터 정치 실험대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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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여론 분석과 소셜미디어 데이터 정치가 한국 보수 정당의 내홍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고 있다. 보수 원로 언론인 조갑제가 SNS 발언과 여론조사 수치를 엮어 국민의힘의 분당을 공개 촉구한 사건은, 정당 내부 갈등이 더 이상 오프라인 계파 정치가 아니라 온라인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여론 구조 속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지지율과 감성 분석 결과가 전략 수립의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데이터 정치의 양날의 검 효과가 본격화된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20일 SNS를 통해 국민의힘이 한동훈 계와 윤어게인 파로 갈라졌다고 진단하며, 이 구도가 정리되지 않으면 당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내 상황을 두고 이대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며 제정신 파와 제정신 아닌 파로 분리돼야 살 길이 열린다고 표현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이 12·3 비상계엄 저지에 나선 이른바 한동훈 세력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지지를 옹호하는 강성 윤어게인 진영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

조 대표는 여론조사 데이터를 근거로 당 위기를 설명했다. 그가 인용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평가는 대장동 항소 포기에 따른 여론 악화로 1주일 사이 4%포인트 하락했지만,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시에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 수치를 국민이 국민의힘을 마이너스로 본 신호라고 규정하며, 여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당의 위기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분석 업계에서는 이처럼 특정 이슈와 지지율 변동을 자동 연계 분석하는 AI 기반 여론 분석 도구가 이미 정당 전략 수립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본다.

 

조 대표의 발언 구조는 전형적인 데이터 기반 정치 프레이밍을 따른다. 그는 지지율 수치와 이슈 타임라인을 결합해 원인과 책임 집단을 특정하고, 내부 계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특히 한동훈 전 대표를 삼국지 조자룡에 비유하며 대장동 항소 포기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검사와 장관 시절 론스타 분쟁 승소를 이끌어 보수 체면을 세웠다고 평가한 대목은, 온라인에서 수집된 지지층 여론과 상징 코드를 정치 서사로 재조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반면 당권파와 윤어게인 세력에 대해서는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는 국민의힘 당권파를 윤어게인 세력으로 규정하며 정작 경계하는 대상이 이재명 정부가 아니라 한동훈 세력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윤어게인 강성파가 불법 계엄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며 공화국의 적과 다르지 않다고까지 표현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런 서술 방식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가 확산되며 양극화된 의견 군집을 만들어내는 알고리즘 구조와 맞물리면서, 온건층보다 극단 성향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분석한다.

 

조 대표는 한동훈 전 대표가 백의종군하듯 당을 돕고 있는데, 당권파가 되레 당원 게시판과 징계를 거론하며 내부 전우와 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왜적과 싸우는 이순신을 고문했던 선조 측근에 비유한 대목 역시 역사적 상징과 온라인 밈 소비 패턴을 결합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온라인 정치 커뮤니티와 영상 플랫폼에서는 특정 인물과 계파에 대한 밈·짤이 빠르게 생산되고, AI 추천 알고리즘이 이 콘텐츠를 반복 노출하며 감정적 반응을 강화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조 대표는 장 대표가 윤어게인 세력에 구애한 행보를 극우 음모론 세력과의 연대 시도로 규정하며, 정권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는 태도는 공화국의 적과 손잡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황 전 총리에 대해서도 그들과 손잡는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공적이라는 자인에 가깝다고 비난하며, 이재명 정부가 한동훈은 두려워하지만 국민의힘은 우습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 데이터 분석 업계에서는 이러한 서사가 디지털 플랫폼 상에서 지지층 분화와 재편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IT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전통 정당 정치가 데이터·AI 환경으로 완전히 옮겨간 후 나타나는 부작용을 드러낸다. 여론조사 수치, SNS 반응, 온라인 뉴스 댓글이 즉시 정치인 메시지에 반영되고, 이를 다시 AI 추천 알고리즘이 증폭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계파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근거로 자신들만의 현실 인식을 구축하고, 같은 데이터를 두고도 상반된 해석을 내놓으며 분열을 심화시키는 양상도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기반 정치 캠페인 관리 플랫폼이 유권자 세분화, 맞춤형 메시지 전송, 반응 실시간 모니터링까지 통합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영역에서의 데이터 기술 활용이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알고리즘 설계와 데이터 해석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윤리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정 계파에 유리하도록 데이터 샘플을 선택하거나, 극단적 서사를 증폭하는 방식으로 AI 추천 모델을 운용할 경우 정당 내부 민주주의와 공적 토론 구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치권이 IT 기술을 전략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분열을 완화하고 정책 중심 논의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향후 한국 디지털 정치의 경쟁력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정치 영역에서도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투명한 운용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신뢰 회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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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국민의힘#한동훈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