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여론조사 여러 번 해서 지명도 올리자"…특검, 오세훈에 정치브로커 선거전략 공모 의혹 제기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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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을 둘러싸고 민중기 특별검사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면 충돌했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른바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가 먼저 여론조사를 제안했고, 오 시장이 이를 수용해 후원자를 통한 비용 대납까지 공모했다는 것이 특검의 시각이다. 오 시장 측은 명 씨의 주장 외에는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법정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10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본경선 승리에 확신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명태균 씨와 접촉해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오 시장이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받고, 비용 역시 오랜 후원자에게 대신 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소장에 적힌 당시 상황은 오 시장에게 불리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오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뒤 9년 넘게 중앙 정치권에서 비켜서 있었고, 2021년 보궐선거 국면에서도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의원과 함께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당내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에게 뒤지는 결과가 나왔고, 경선 룰에 따라 여성 후보자에게 가점이 적용된 점을 감안하면 오 시장의 본경선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는 것이 특검 판단이다.

 

이보다 앞선 2021년 1월 20일, 오 시장은 강철원 당시 서울시장 선거캠프 비서실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함께 서울 광진구의 한 식당에서 명태균 씨,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을 만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 씨는 이 자리에서 오 시장에게 "여론조사를 여러 번 해서 지명도를 올리고 유리한 여론조사를 해서 선거의 전략으로 쓰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오 시장은 이튿날인 1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박영선 전 의원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자신이 나경원 의원보다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면서 "국민의힘에서 오직 오세훈만이 이깁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1월 22일 공개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같은 가상 대결 구도에서 오 시장이 나 의원에게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이 시점부터 오 시장 측이 보다 공격적인 여론조사 전략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오 시장은 1월 22일 명태균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궐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의뢰했고, 강철원 당시 비서실장에게도 "명 씨와 상의해 여론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같은 무렵 오 시장이 자신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온 사업가 김한정 씨에게 여론조사 비용 지원도 요청했다고 판단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태균 씨는 2021년 1월 22일부터 2월 28일까지 공표용 여론조사 3회, 비공표용 여론조사 7회 등 총 10차례의 조사를 진행했다. 사업가 김한정 씨는 같은 해 2월 1일부터 3월 26일까지 5차례에 걸쳐 총 3천300만 원을 명 씨 측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은 이 자금이 오 시장 측의 요청에 따른 여론조사비 대납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오 시장 측은 "명태균 씨 주장 외에는 증거나 정황 확보에 진척이 없다"며 특검 공소사실의 토대 자체를 문제 삼았다. 또 "미공표 여론조사는 모두 조작됐다"고 강조하며, 애초에 선거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오 시장 측은 명 씨의 여론조사 실무 능력과 조사의 신뢰성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캠프 관계자는 "여러 번 여론조사를 해서 분위기를 바꾼다는 건 명 씨가 활동한 소도시에서나 가능할 뿐, 서울에선 불가능한 얘기"라며 "명 씨가 샘플을 부풀려 가짜 여론조사를 만든 게 드러났는데, 쓸모없는 여론조사를 거래했다는 설정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 시장 측은 문제가 된 미공표 조사가 실질적으로 선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명 씨가 만든 조사는 우리 쪽이 아닌 여의도연구소 등 다른 곳에 전달돼 선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며 "가짜 조사가 밝혀졌고, 그 또한 캠프 측이 자체 검증 과정에서 발견해 '우리는 이런 걸 못 쓴다'고 지적하면서 명 씨와 관계가 틀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사 결과를 선거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 가져온 적도 없었고, 특검 논리처럼 공모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전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공소장에서 오 시장과 명태균 씨, 후원자 김한정 씨 사이의 관계와 자금 흐름을 근거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구성했다. 특히 본경선 통과에 불리한 여론 속에서 캠프 차원의 치밀한 여론조사 전략이 추진됐다고 보고 있어, 향후 재판에서는 여론조사 의뢰와 대납 과정이 어느 수준까지 사전에 논의됐는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반면 오 시장 측은 명 씨의 진술 신빙성을 집중 공략하며 특검 수사와 공소제기가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의심하는 분위기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재판 과정에서 명확히 밝히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재판부는 명태균 씨와 사업가 김한정 씨 등 관련자들의 법정 진술과 자금 입출금 내역, 여론조사 의뢰·보고 경로 등을 종합적으로 따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경선 전략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그리고 비용 부담을 둘러싼 공모가 인정될지에 따라 정치적 파장도 달라질 수 있다.

 

향후 법원은 공판 절차를 통해 특검과 오 시장 측 주장을 차례로 검증하게 된다. 정치권은 이번 재판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경선 과정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과 맞물려 추가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으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여야 공방도 한층 거세질 수 있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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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민중기특검#명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