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씨 속 백제의 숨결”…익산에서 느끼는 시간 여행의 고요
여행자는 오늘도 천천히 걸었다. 흐린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의 익산에서, 그는 오랜 역사의 숨결과 지금 이 순간의 평온이 동시에 머무는 풍경을 체험했다. 기온은 23.5도, 아직 한여름의 열기가 다 가시지 않았지만, 운무 가득한 하늘과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이 걷기에 적당했다. 예전엔 ‘역사의 도시’라 하면 딱딱한 유적지 투어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감성을 머금은 시간 여행의 일상이 돼가는 중이다.
요즘 익산을 찾는 사람들은 SNS에 푸른 들판과 석탑을 담은 사진을 올리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 함열읍의 고스락에는 5천여 개의 항아리가 줄지어 서 있고, 그 안엔 오랜 시간 숙성한 장맛이 진하게 살아 있다. 카페에 앉아 솔잎 효소차 한 잔을 마시는 순간, 누군가는 “여기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이라 표현했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하는 이 풍경은 일상에서 잊고 지낸 여유를 되찾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익산 등 고도(古都) 지역의 방문객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중에서도 미륵사지와 같은 유적지 체류 시간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웅장했던 사찰터, 미륵사지에는 국보인 석탑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돌탑을 오르는 빗방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면, 백제의 지나간 시간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아련함이 밀려온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역사와 일상의 공존’이라 해석한다. 지역 문화연구자 최기완 씨는 “전통적인 유적지 방문이 단순한 답사가 아니라, 개인의 감성과 만나는 순간이 됐다”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익산 교도소 세트장처럼 영화의 한 장면이 되기도, 고스락에서 담근 효소 맛처럼 오래 남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고창이나 전주와는 또 다른 담백함”, “익산은 갈수록 조용히 머물고 싶어지는 곳”, “나만 아는 시간을 선물받은 느낌”이라는 글들이 최근 여행 커뮤니티에 이어지고 있다. 유적과 들판이 어우러진 풍경에서 ‘나만의 기억’을 새기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익산에서의 하루는 과거와 현재,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잠시 쉬어가는 일이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