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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치료로 뇌경색 2차 손상 완화 기대…국내 연구진, 안전성 입증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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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을 인위적으로 낮춰 뇌대사를 줄이는 저체온치료가 급성 뇌경색 치료 이후 발생하는 2차 뇌손상에도 안전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혈전 제거로 막힌 혈관을 다시 뚫어도 재관류 손상이라는 후폭풍이 문제로 남았던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하면서 뇌경색 환자의 후유장애를 줄일 새로운 치료 전략이 나올지 주목된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연구를 뇌졸중 재관류 치료의 패러다임을 넓히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8일 신경과 한문구 교수 연구팀이 국내 5개 의료기관과 함께 진행한 세계 최초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 혈관 재개통술을 받은 뇌경색 환자에게 저체온치료를 시행해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에는 분당서울대병원 강지훈 교수, 동아대병원 정진헌 교수, 계명대동산병원 홍정호 교수, 서울아산병원 장준영 교수, 충북대병원 염규선 교수가 참여했다.

급성 뇌경색은 뇌로 향하는 경동맥이나 뇌 내부 혈관이 혈전으로 갑자기 막혀 발생한다. 혈류가 차단되면 뇌세포는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겨 짧은 시간 안에 괴사에 이르고, 이로 인해 영구적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신속한 재관류 치료가 핵심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혈전제거술 같은 혈관 재개통술이다.

 

문제는 혈관을 제때 뚫어도 후속 손상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이다. 막혔던 혈관에 혈액이 갑자기 재공급되면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활성산소가 늘어나면서 이미 손상된 영역을 중심으로 신경세포 파괴가 다시 진행되기 쉽다. 이른바 재관류 손상으로, 예측이 어렵고 확립된 예방법이 없어 뇌경색 치료의 난제로 꼽혀 왔다.

 

연구진이 주목한 저체온치료는 이런 재관류 손상을 줄이는 대표적인 신경보호 전략이다. 체온을 평소보다 낮은 수준으로 일정 기간 유지해 뇌대사를 떨어뜨리고, 산소 소비와 염증 반응을 줄여 손상되는 조직을 최대한 보존하는 원리다. 세계적으로는 심정지 후 소생 환자의 재관류성 뇌손상 최소화를 위해 이미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고, 심장 분야에서는 임상 근거가 상당 부분 축적된 상태다.

 

반면 급성 뇌경색 환자에 대한 저체온치료는 아직 근거와 기준이 충분하지 않아 현장 적용이 제한적이다. 특히 어느 체온까지 내릴지, 얼마 동안 유지할지, 어느 시점에 시작할지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보고된 연구도 목표 체온과 지속 시간이 균일하지 않고, 후향적 관찰 연구에 그친 사례가 많아 신뢰성 높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어려웠다.

 

한문구 교수팀은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6년 12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뇌경색 재관류 치료를 받은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전향적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대상자는 뇌경색 발병 후 8시간 이내에 혈관 재개통에 성공한 환자들이었으며, 저체온치료군과 일반 치료군으로 무작위 배정해 비교했다. 저체온치료군은 체온을 35도로 낮춰 48시간 유지하는 통일된 프로토콜을 적용받았다.

 

연구 결과 저체온치료군 환자 전원이 기관삽관이나 인공호흡기 없이 목표 체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저체온 상태에서 흔히 우려되는 부정맥, 심박수 감소, 감염 위험 등 합병증 가운데 심박수 감소가 일부 관찰됐으나 모두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보고됐다. 단기 임상경과 지표에서도 저체온치료군과 대조군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나오지 않아, 안전성은 확인됐지만 효과성 평가는 향후 더 큰 규모의 임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특히 이번 연구는 재관류술을 받은 뇌경색 환자에 대해 목표 체온 35도, 유지 시간 48시간이라는 비교적 온건한 저체온 프로토콜을 다기관 환경에서 표준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심정지 환자에서 통상 32도에서 36도 사이 강도 높은 저체온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뇌경색 환자 특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높은 체온을 택해도 임상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해외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뇌졸중 환자 대상 저체온치료 연구가 꾸준히 시도돼 왔지만, 혈전제거술 같은 재관류술과 결합해 다기관 무작위 대조 방식으로 안전성을 분석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번 연구가 세계 최초로 학술지 스트로크에 게재된 배경이다. 재관류 치료가 빠르게 보편화되는 가운데, 이를 보완할 신경보호 전략을 임상시험 설계 수준에서 제시한 점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대목이다.

 

향후 과제는 효과성에 대한 본격 검증이다. 재관류 손상은 발생 시점과 범위를 예측하기 어려워, 실제 신경학적 장애와 장기 기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입증하려면 더 많은 환자를 포함한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저체온치료 시작 시점, 유지 기간, 재가온 속도 등 세부 변수에 따른 차이도 추가 분석 대상이다. 이를 통해 뇌경색 환자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저체온치료 프로토콜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규제 측면에서 저체온치료는 이미 승인을 받은 의료기기와 기성 약제를 사용하는 보조적 치료이기 때문에, 안전성 근거가 축적될수록 뇌경색 분야로의 적응 확대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 다만 뇌졸중 환자는 고령과 기저질환 동반 비율이 높아 감염 관리, 심혈관계 모니터링 등 추가 관리체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문구 교수는 혈관을 재개통한 뇌경색 환자에서 저체온치료를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시한 전향적 다기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치료법인 만큼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저체온치료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입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연구를 계기로 뇌경색 재관류 치료와 신경보호 전략을 결합한 융합치료 모델이 확장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기술과 임상 근거, 제도와 인력이 맞물려야만 저체온치료가 뇌졸중 현장에서 실제 표준치료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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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저체온치료#뇌경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