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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세포 오믹스로 GVHD 파고든다”…서울성모병원, 혈액암 정밀치료 선점 노린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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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이식 후 발생하는 이식편대숙주질환이 혈액암 치료의 최대 걸림돌로 떠오르면서, 발병 기전을 정밀 해부하려는 단일세포 오믹스 기반 국책 연구가 시작된다. 환자 절반 가까이가 겪는 이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곧 생존율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만큼, 국내 의료진이 주도하는 이번 사업이 정밀의학 기반 혈액암 치료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난치성 혈액질환 영역에서 한국형 면역합병증 제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시험대로도 보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혈액병원 민경일 혈액내과 교수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2025년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박사후 연구성장지원 신진 과제에 선정됐다고 2일 밝혔다. 총 5억5000만원 규모 연구비가 지원되며, 혈액암 분야 바이오메디컬 혁신을 겨냥한 융합형 글로벌 혁신 연구에 착수한다. 대상 사업은 젊은 의사과학자를 중심으로 미충족 의료 수요 해소와 난치성 질환 극복을 목표로 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연구의 핵심 타깃은 조혈모세포이식 후 발생하는 이식편대숙주질환이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이식된 면역세포가 환자 자신의 장기와 조직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는 면역학적 합병증이다. 백혈병, 재생불량빈혈,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등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은 사실상 유일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식 환자의 약 40~50퍼센트가 급성 또는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주로 소화기, 피부, 간 등 면역계와 연관된 장기에 염증 반응을 유발해 설사, 피부 발진, 황달과 더불어 감염 위험 증가를 초래한다. 급성 단계 사망률은 10~20퍼센트에 이르고, 만성 단계로 진행하면 장기적인 기능 저하와 통증, 반복 입원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중대한 합병증으로 분류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식 자체가 성공해도 이식편대숙주질환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1차 표준치료는 면역반응을 강하게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계열 약제 투여가 중심이다. 그러나 환자 약 절반에서는 염증이 충분히 가라앉지 않거나, 초기 반응 후에도 스테로이드에 대한 내성이 생겨 효과가 감소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 경우 감염, 대사이상 등 스테로이드 부작용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보고된다. 최근에는 룩소리티닙과 같은 표적치료제가 2차 치료 옵션으로 도입됐지만, 여전히 약물 저항성을 보이는 환자군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 과제에서 민경일 교수 연구팀은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에서 축적된 조혈모세포이식 환자 임상자료와 조직검체를 기반으로 단일세포 오믹스 분석에 나선다. 단일세포 오믹스는 하나하나의 면역세포에서 동시에 유전자 발현, 염색질 상태, 미토콘드리아 변이 등 다양한 분자 정보를 읽어내는 기술로, 세포 집단 평균값만을 보여주는 기존 분석법보다 훨씬 정밀한 면역 재구성 과정을 포착할 수 있다.  

 

연구팀이 활용할 계획인 scRNA-seq은 각각의 세포가 어떤 유전자를 어느 수준으로 발현하는지 측정해 세포 종류와 활성 상태를 구분하는 기술이다. scATAC-seq은 세포 내 어느 DNA 영역이 열려 있는지, 즉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염색질 구조 변화를 파악해 면역세포가 공격적인 방향으로 분화하는지, 억제성 방향으로 전환되는지를 추적하는 도구다. 여기에 mtDNA-seq을 더해 세포별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를 살피면, 이식 공여자와 수여자 세포 기원을 정밀 구분하고 세포 스트레스 상태까지 분석할 수 있다.  

 

연구 목표는 이식편대숙주질환 발병 과정에서 면역세포가 어떻게 구성과 기능을 바꿔가는지 단일세포 수준에서 시간대별로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상위 분화 조절인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상위 분화 조절인자는 여러 유전자의 스위치를 통제하는 전사인자나 조절 신호전달 분자 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여기 이상이 생기면 면역세포 전체가 공격적 방향으로 편향되기 쉽다. 연구팀은 이러한 상위 조절인자를 직접 표적으로 하는 신개념 치료제 후보를 도출하는 한편, 발병 위험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발굴까지 추진한다.  

 

지금까지도 일부 단일세포 분석을 활용한 국내외 연구가 보고됐지만, 공여자와 수여자 유래 면역세포가 이식 전후에 어떻게 재편되고, 어느 시점에 염증 유발 세포 아형이 우세해지는지 전체 면역 재구성 과정을 체계적으로 규명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특히 실제 임상에서 확보한 한국인 혈액암 이식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중 오믹스 분석을 통합하는 시도는 제한적이어서, 이번 연구가 축적하는 데이터와 분석 플랫폼이 국내 혈액암·면역합병증 연구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민경일 교수는 조혈모세포이식 후 이식편대숙주질환이 환자에게 주는 부담을 거론하며, 발병 기전 규명과 정밀의학적 치료전략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기 예측 바이오마커와 표적 치료제를 동시에 확보할 경우 환자 맞춤형 면역조절 전략을 세워 생존율과 삶의 질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은 국내 최초 혈액암 전문병원으로 설립된 이후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혈액질환 치료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국내외 중증 혈액질환 환자들이 치료가 어려운 경우 마지막으로 찾는 이른바 혈액암의 4차 병원으로 불리며, 고난도 조혈모세포이식과 합병증 관리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국책 연구를 계기로 한국형 혈액암 정밀의료 모델과 단일세포 기반 면역합병증 분석 플랫폼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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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민경일#이식편대숙주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