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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폭력, 사적 이익 아니다"…검찰, 항소 포기 속 나경원 등 8명은 불복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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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충돌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다시 거세졌다. 검찰이 국회 선진화법 위반 사건 피고인 전원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면서다. 그러나 주요 피고인 일부가 항소장을 제출하며, 사건의 정치적·법적 책임을 둘러싼 논쟁은 2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대검찰청은 27일 오후 4시 25분 서울남부지검과의 논의 결과를 공지하고,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국민의힘 관계자 26명 전원에 대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항소 시한을 약 7시간 앞둔 결정이었다.

이보다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20일 패스트트랙 충돌에 연루된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등 피고인 26명 전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나경원 의원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벌금 2천만원, 국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400만원 등 총 2천400만원이 선고됐다. 송언석 원내대표에게도 특수공무집행방해 1천만원, 국회법 위반 150만원 등 총 1천150만원이 내려졌다.

 

그러나 국회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 기준이 되는 벌금 500만원을 넘긴 피고인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에 따라 벌금형을 선고받은 현역 의원 6명과 지방자치단체장 2명은 모두 직을 유지하게 됐다. 형사소송법상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 상급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한 배경에 대해 복합적인 사정을 제시했다. 대검찰청은 "피고인들의 범행은 폭력 등 불법 수단으로 입법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죄책이 가볍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피고인에 대해 구형 대비 기준에 미치지 못한 형이 선고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검찰은 "범행 전반에 유죄가 선고됐고, 범행 동기가 사적 이익 추구에 있지 않은 점, 사건 발생일로부터 6년 가까이 장기화한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항소 포기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권 갈등이 장기 재판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그러나 피고인들 중 적지 않은 인원이 법원의 판단에 승복하지 않았다. 법원에 따르면 나경원·윤한홍 의원, 황교안 전 대표, 이장우 대전시장, 김성태·곽상도·김선동·박성중 전 의원 등 8명이 항소 시한인 27일 자정을 앞두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당시 국회에서의 행동이 정당한 정치 행위였는지, 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 폭력인지에 대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민주당의 다수결 독재, 의회 폭주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며 "다시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이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검찰의 패스트트랙 사건 항소 포기 여부는 최근까지 정치권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 왔다. 이달 초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이후, 수사·기소 판단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과 연관된 대장동 사건에서의 항소 포기 결정에 강력 반발했고, 패스트트랙 사건에 대한 검찰의 대응을 예의주시해 왔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사건 1심 형량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며 검찰에 항소를 요구해 왔다.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27일에도 "항소 포기는 대검찰청 예규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검 예규는 형의 종류가 바뀌거나 선고 형량이 구형량의 절반 미만일 경우 항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1심에서 이철규 의원을 제외한 현직 의원 전원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 구형과 달리 법원은 벌금형만 선고했고, 그 액수도 국회법상 의원직 상실 기준을 밑돌았다. 이 때문에 야권 일각에서는 "예규상 항소 요건을 충족하는데도 검찰이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물러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면 검찰 안팎에서는 이미 유죄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서 항소로 재판을 장기화할 경우, 정치적 부담과 사법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여야가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건의 특성상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인식을 피하려 했다는 시각도 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려 하자 자유한국당이 회의장 점거, 회의 진행 저지 등으로 맞서면서 불거졌다. 이후 사건은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6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만큼 정치적 상징성이 크고, 국회 관행과 물리력 정치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돼 왔다.

 

향후 2심에서는 항소한 8명에 한해 재판이 진행된다. 쟁점은 국회 내에서의 물리력 행사와 회의 방해가 어느 수준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당시 여야의 정치적 공방 속에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패스트트랙 사건을 놓고 당분간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까지 겹쳐 검찰의 수사·기소 판단을 둘러싼 정치적 불신이 커진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신경전이 계속될 전망이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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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나경원#패스트트랙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