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이전 자유무역 복귀 안 보인다”…옵스펠드, 미국 통상 기조 고착과 한일 공조 필요성 경고
현지시각 기준 9일, 미국(USA) 뉴욕에서 열린 전문가 포럼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명예교수가 미국의 관세 정책과 글로벌 통상 질서의 장기 변화를 경고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고착되는 가운데 한국의 대미 대규모 투자 합의의 불확실성과 함께 한국과 일본(Japan) 간 경제·안보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옵스펠드 교수는 코리아소사이어티와 주뉴욕한국총영사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에 기조 연사로 참석해 “미국이 관세 체제에서 자유무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히며,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기부터 강화된 관세 구조가 향후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재정 측면에서 관세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며 관세가 미국 재정 운용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은 점을 자유무역 복귀의 제약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과거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으로 활동한 거시경제·국제금융 분야 석학으로, 현재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이번 발언은 미국 통상 정책 변화의 흐름을 지켜봐 온 핵심 전문가의 평가라는 점에서 무게가 실린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 관세 정책의 세계 경제적 파장에 대해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무엇이든 과거에 우리가 본 것과는 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화 전성기 시기에 형성된 자유무역 중심 질서와는 다른, 보다 높은 관세와 규범 갈등이 상시화된 무역 환경이 전개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관세와 보조금, 산업 정책이 결합한 새로운 통상 구조가 국제 교역과 투자 흐름을 구조적으로 재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대미 투자를 둘러싼 최근 합의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넘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약 3천500억 달러(약 515조 원) 규모로 거론되는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언급하며 “한국이 미국과 ‘합의’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미국과의 그와 같은 어떤 합의도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 정치 지형 변화와 정책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투자와 규제 조건이 장기적으로 유지된다는 보장이 약하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합의가 전면적으로 한국에 불리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조선업 등 일부 한국에 유익할 수 있는 약속이 있었지만, 다른 부분들은 사실상 미국에 지불하는 순수한 공물”이라고 평가하며, 특정 산업 분야에서는 이익이 기대되지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산업정책 강화 속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의 투자와 양보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편입되는 양상으로 해석된다.
옵스펠드 교수는 안보와 경제가 얽힌 현재의 국제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의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강연과 간담회를 통해 “일본과 한국이 더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지만, 한일조차 함께 행동할 수 없다면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양국이 공통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지 못할 경우 역내 질서 관리 역량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전략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에너지·안보 위기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동북아 두 핵심 동맹국의 협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이다.
다만 그는 한일 양국이 유럽연합(EU)식 경제 통합을 추구할 가능성은 선을 그었다. “분명 한국과 일본이 경제연맹을 구축하지는 않겠지만, 공통의 사안을 둘러싸고 좀 더 협력하고 논의할 지점이 있을 것”이라며, 공급망 안정, 첨단 기술 보호, 안보 협력 등 개별 현안을 중심으로 한 실질 협력 확대가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제시했다. 군사·정보 협력은 물론, 대미 통상·투자 전략에서도 양국 간 사전 조율과 정책 공조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인식이 반영된 발언이다.
한국 경제 내부 구조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옵스펠드 교수는 “한국 경제는 구조 개혁이 매우 유용할 수 있는 여러 영역이 있다”고 지적하며, 재벌 중심 경제 구조와 경직된 노동시장, 기업 생태계 전반에 걸친 개혁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재벌 집중 체제가 혁신과 고용 창출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보고 “재벌이 경제 체제에서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데 소기업 부문이 역동성을 가지면 청년 실업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키우는 정책이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과 성장 동력 다변화에 핵심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집중 심화는 한국 경제의 또 다른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옵스펠드 교수는 “너무 많은 활동이 서울 일대에 집중된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경제·인구·산업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몰린 현실을 짚었다. 그는 “이는 주택가격을 매우 높게 만들고 사회적 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부동산 가격 급등과 지역 불균형이 세대·계층 간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 고령화와 성장 둔화 압력이 겹치는 상황에서 공간적 불균형이 사회 통합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다.
옵스펠드 교수의 이번 발언은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가 글로벌 교역 환경과 동맹국 투자 전략을 뒤흔드는 가운데, 한국이 재벌·수도권 중심 구조를 완화하고 한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보호무역과 지정학 리스크가 겹친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구조개혁과 역내 공조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