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재래식 방위 주도”…한미 NCG 첫 명기, 트럼프 2기 확장억제 조정 신호
확장억제를 둘러싼 한미 간 메시지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이 재래식 방위를 주도한다는 문구가 처음으로 공식 문서에 담긴 반면, 북한 핵사용시 정권종말을 거론했던 강경 경고는 삭제돼 동맹 내 역할 분담과 대북 메시지 조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모양새다.
한미 핵협의그룹 NCG 제5차 회의가 11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다. 지난 1월 10일 이후 11개월 만에 재개된 회의로, 이재명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회의다. 한미는 회의 직후 공동언론성명을 통해 동맹 차원의 핵억제 정책과 태세를 재점검한 결과를 내놨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 측에서 김홍철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미국 측에서 로버트 수퍼 미 국방부 핵억제·화생방 정책 및 프로그램 수석부차관보대행이 대표로 참석했다. 양측은 NCG가 한미동맹과 확장억제를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양자 협의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과업의 실질적 진전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공동언론성명에 따르면 김홍철 실장은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 측이 NCG 공식 문건에 재래식 방위 주도 방침을 명시한 것은 처음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 현대화를 내세워 한국 등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과,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목표로 국방비 증액과 전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는 기조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 측은 핵우산 공약을 재차 확인했다. 수퍼 대행은 핵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한국에 대해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한미는 정보공유, 협의 및 소통 절차, 핵·재래식 통합, 공동연습, 시뮬레이션, 훈련 등을 망라한 확장억제 전 분야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했다고 성명은 전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대북 경고 수위 변화다. 제4차 NCG 성명에 포함됐던 미국 측의 "북한의 어떠한 핵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표현은 이번 5차 성명에서 빠졌다. 뿐만 아니라 1차부터 4차까지 모든 NCG 회의 결과물에 담겼던 북한 관련 문구가 이번에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가와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희망하는 북미 정상회담 구상을 고려해 대북 압박성 표현을 조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력한 억제 태세를 유지하되, 직접적인 정권종말 경고는 피함으로써 북미 대화 여지를 남겨두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확장억제의 구조 자체는 유지된다는 점을 한미는 거듭 강조했다. 공동언론성명은 양측이 핵억제 심화교육, NCG 모의연습 TTS, 핵·재래식 통합, 도상연습 TTX 등 다양한 NCG 활동이 잠재적 한반도 핵 유사시 한미동맹의 협력적 의사결정을 강화한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즉, 문구 수위는 조정하되, 실제 운용과 절차에서는 연합 대비 태세를 더욱 다듬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NCG 회의가 장기간 열리지 않아 미국이 이 협의체를 재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11개월 만의 회의 재개와 내년 상반기 제6차 회의 개최 합의로 최소한 제도적 틀은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양측 대표는 향후 NCG 임무계획과 주요 활동을 승인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NCG는 북핵 위협 고조에 대응해 한미 간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한국이 미국의 핵 운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만든 양자 협의체다. 2023년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공식 출범했으며, 이후 정례회의를 통해 핵·재래식 통합운용 시나리오, 위기 시 협의 절차 등을 구체화해 왔다.
앞서 지난달 14일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 SCM 공동성명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NCG의 역할을 긍정 평가한 바 있다. 두 장관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확장억제를 제고하기 위한 NCG의 성과를 평가했다"며 "NCG의 성과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으며, 향후 SCM에서 NCG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받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제6차 NCG 회의와 후속 SCM에서 한미는 재래식 방위 주도 원칙과 대북 메시지 조정 방향을 둘러싸고 보다 구체적인 협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