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색 적외선으로 본 우주”…스피어엑스 첫 전천지도 공개
우주 전체를 정밀하게 그려내는 적외선 우주지도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과 미국 항공우주국이 공동 개발한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가 발사 6개월 만에 102개 적외선 파장을 한 번에 분해한 전천지도를 완성해 공개했다. 단일 임무로 전 하늘을 100개 이상 파장으로 분광한 것은 처음으로, 향후 우주의 구조를 3차원으로 재구성하고 생명 기원의 단서인 물과 얼음의 분포까지 추적하는 핵심 데이터가 될 것으로 주목된다. 우주과학계에서는 향후 2년간 누적 관측이 마무리되면 정밀 우주지도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 구도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19일 스피어엑스가 확보한 첫 전천지도 영상을 공개했다. 스피어엑스는 한국천문연구원과 미국 항공우주국이 공동 개발한 적외선 우주망원경으로, 올해 3월 12일 발사된 뒤 5월 1일부터 본격 관측에 돌입했다. 발사 후 약 6개월 동안 전 하늘을 스캔하며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하늘을 102가지 적외선 파장으로 분광한 360도 전천 모자이크 지도를 구축했다.

스피어엑스가 관측하는 적외선 대역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역이다. 이번에 공개된 이미지는 관측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할 수 있도록 가시광 색상으로 변환해 재구성한 결과다. 이미지에서 각 색상은 서로 다른 천체와 물질을 의미한다. 별은 주로 파란색과 녹색, 흰색 점으로 표현되고, 뜨거운 수소 가스는 파란색 빛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한 우주먼지는 붉은색 영역으로 나타난다. 적외선은 차갑고 희미한 천체와 먼지에 가려진 영역을 포착하는 데 강점을 가져, 기존 가시광 망원경이 놓친 구조까지 드러낼 수 있다.
관측 방식도 데이터 수집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됐다. 스피어엑스는 하루에 약 14.5바퀴씩 지구를 공전하며 남극과 북극을 통과하는 극궤도를 따른다. 이 과정에서 매일 하늘의 원형 띠 영역을 스캔하며 약 3600장의 이미지를 촬영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관측 시야가 조금씩 이동해, 6개월 주기마다 전 하늘을 한 번씩 덮는 구조다. 연구팀은 이처럼 반복적으로 누적되는 이미지를 디지털 방식으로 정교하게 합성해, 왜곡을 최소화한 360도 전천 모자이크 지도로 가공했다.
핵심 기술은 6개의 검출기에 장착된 선형분광필터다. 선형분광필터는 하나의 이미지를 찍으면서도 공간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파장을 통과시키도록 설계된 필터로, 스피어엑스는 이 구조를 통해 한 번의 스캔에서 102개 적외선 파장대역을 동시에 분해 관측할 수 있다. 각 파장대역은 은하, 별, 별이 태어나는 성운, 우주먼지 구름 등 천체의 온도, 밀도, 화학 조성, 나이에 대한 서로 다른 정보를 품고 있다. 연구진은 이 다층 데이터를 조합함으로써 기존보다 더 정확한 은하 거리 측정과 물리적 특성 분석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특히 반복 관측을 통해 수억 개에 달하는 은하의 거리와 분포를 측정하는 것이 스피어엑스의 대표 과학 목표다. 각 은하의 스펙트럼 지문을 이용하면, 적색편이 정보를 토대로 거리를 산출할 수 있고, 이를 대규모로 쌓으면 우주 전역의 은하 3차원 분포 지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우주 팽창의 역사와 암흑에너지 특성, 대규모 구조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데이터가 된다.
스피어엑스의 과학 임무는 크게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우주의 역사와 은하 형성·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초기 우주에서 지금까지 은하가 어떻게 모이고 성장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별 탄생이 활발했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생명 기원의 단서로 꼽히는 물과 얼음의 우주 분포를 탐사하는 과제다. 별 주변 원시행성계 원반, 분자운, 성간 구름에서 물과 얼음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적외선 스펙트럼으로 추적해, 지구형 행성에서 물과 유기물이 형성되기까지의 경로를 밝히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셋째, 활동성 은하핵과 같은 극단적인 천체 물리 환경과 태양계 소천체 등 다양한 주제 연구에도 활용된다.
관측 데이터의 활용 범위는 천문학을 넘어 데이터 과학, 인공지능 분석 기술과도 맞물릴 것으로 보인다. 102개 파장에 걸친 전 하늘 분광 데이터는 사실상 초대형 다차원 데이터 세트로, 기계학습과 딥러닝 기법을 적용하면 인간이 찾기 어려운 희귀 천체나 새로운 패턴을 자동 탐지하는 연구도 가능해진다. 전천지도를 기반으로 한 다중 파장 교차 분석은 향후 다른 우주망원경, 지상 관측망과의 데이터 융합 연구를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피어엑스 프로젝트는 미국 항공우주국 제트추진연구소가 전체 임무를 총괄하고, 데이터 분석에는 미국 내 10개 연구기관과 함께 한국천문연구원 정웅섭 박사 연구팀 등 국내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연구진은 우주얼음 탐사와 같은 주요 과학 목표뿐 아니라 활동성 은하핵, 태양계 소천체 등 다양한 주제에서 과학적 분석과 자료 처리에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우주항공청 산하 조직이 과학임무 위성에 정식 파트너로 참여해 대량 관측 데이터를 공동 활용하는 구조를 갖췄다는 점에서, 한국의 우주 과학·데이터 분석 역량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과 같은 고해상도 심우주 관측기, 유클리드와 로만우주망원경 등 대규모 구조 탐사용 위성들이 잇따라 투입되며 우주 대형탐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피어엑스는 이들에 비해 공간 해상도는 낮지만, 대신 전 하늘을 광범위한 파장으로 빠르게 스캔하는 데 특화돼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한다. 전천 적외선 분광지도를 기반으로 흥미로운 영역을 선별하면, 후속 망원경이 세부 관측을 수행하는 식의 다단계 관측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어, 향후 국제 협력과 데이터 공유의 전략적 중요성도 커질 전망이다.
관측 기간 동안 축적되는 데이터의 개방성과 활용 방식도 주목된다. 국제 공동 연구팀은 스피어엑스의 주 임무 기간인 2년 동안 전천 관측을 세 차례 더 반복해 측정 감도와 신뢰도를 높인 3차원 통합 지도를 만들 계획이다. 이후 처리된 전체 데이터는 미국 항공우주국 적외선 과학 아카이브를 통해 전 세계 연구자와 일반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개방 데이터에 연계한 분석 플랫폼, 교육용 콘텐츠 개발 등이 뒤따를 경우, 우주 데이터 기반 연구 생태계 확장에 기여할 여지도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숀 도마갈-골드만 미국 항공우주국 천체물리학 부서 국장 대행은 스피어엑스 데이터의 규모와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스피어엑스가 단 6개월 만에 102개의 새로운 우주 지도를 만들어냈다며, 이 방대한 데이터가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새로운 발견을 이끄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강경인 우주항공청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은 한국 연구진이 우주얼음뿐 아니라 활동성 은하핵, 태양계 소천체 연구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피어엑스 관측 자료가 국내 우주과학 역량 강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주과학계는 향후 스피어엑스 추가 관측과 데이터 공개 일정에 맞춰 관련 연구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천 적외선 분광지도라는 새로운 기초 인프라가 우주의 대규모 구조 이해와 생명 기원 탐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산업계와 학계는 이 데이터가 실제 과학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