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더빙 타고 확장하는 K FAST…68개 동맹으로 OTT 공략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모델인 FAST가 K 콘텐츠 글로벌 확산의 새로운 통로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AI 더빙 기술을 결합한 K FAST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내 플랫폼과 제작사가 기존 글로벌 OTT 중심 유통 구조를 넘어 자체 채널로 해외 시청자를 직접 공략하는 흐름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K 콘텐츠 산업이 유통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구조 전환의 시험대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11일 서울 강남에서 AI 융합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글로벌 진출 확산 지원 사업의 성과 공유회를 열고, 글로벌 K FAST 얼라이언스의 확대 현황과 AI 더빙 특화 채널 구축 결과를 공개했다. 글로벌 K FAST 얼라이언스는 지난 4월 출범 당시 22개 기업과 기관으로 시작했으나, 현재 68개 참여사로 늘어 3배 이상 외연을 키웠다. 플랫폼, 콘텐츠 제작사, 융합미디어, AI 미디어 기업까지 밸류체인 전반이 빠르게 결집하는 양상이다.

올해 정부는 추경으로 확보한 80억원을 투입해 6개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AI 더빙에 특화된 K FAST 채널 구축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을 넘어 푸드, 게임, 여행 등 비드라마 장르까지 포함한 20개 K 채널이 대상이다. 각 컨소시엄은 원본 영상의 화질을 고도화하고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주요 언어로 더빙한 뒤 FAST 채널 형태로 해외 서비스에 올리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FAST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TV 채널처럼 편성된 실시간 스트림을 인터넷 환경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모델이다. 구독료 없이 광고 수익으로 운영되는 특징 때문에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K FAST 전략은 이 구조에 AI 기반 자동 더빙 기술을 접목해, 현지화 비용과 시간을 줄이면서 채널 수를 빠르게 확장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업을 통해 확보된 K 콘텐츠는 1200여편, 1400여시간 규모로 집계됐다. 해당 콘텐츠는 고화질 업스케일링과 다국어 AI 더빙을 거쳐 22개국 시청자를 대상으로 제공된다. 실제 송출은 20개 K FAST 채널을 기반으로 하되, 글로벌 플랫폼 내 재편성과 재전송 등을 합치면 총 83개 채널에서 중복 편성되는 구조다. 정부와 업계는 언어 장벽을 낮춘 다채널 편성이 시청 시간과 광고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과 공유회에서는 글로벌 FAST 시장의 성장세와 경쟁 구도에 대한 분석도 제시됐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글로벌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이 FAST 채널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헐리우드 스튜디오와 방송사가 자사 라이브러리 재활용을 통해 추가 수익원을 확보하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K 드라마와 예능, K 푸드, K 게임 등 장르별 팬덤을 보유하고 있어, AI 더빙을 매개로 한 장르 특화 채널 전략에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측면에서는 AI 기반 오디오 처리 기술이 K FAST의 핵심 인프라로 부각됐다. 음성 합성과 화자 변환, 입 모양 동기화를 포함한 멀티모달 처리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과거 사람 중심 더빙보다 제작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지 억양과 감정 표현의 자연스러움이 시청 경험을 좌우하는 만큼, 언어 모델 정교화와 품질 관리가 플랫폼 차별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사업은 K 콘텐츠의 해외 진출 경로를 다변화한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국내 콘텐츠는 글로벌 대형 OTT와의 라이선스 계약이나 오리지널 제작 형태에 매출 구조를 크게 의존해왔다. 반면 K FAST는 광고 수익 기반 직판 채널을 늘려, 국내 플랫폼과 제작사가 유통 단계에서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광고 타기팅 데이터와 시청 로그를 자사 플랫폼이 직접 축적할 수 있어, 후속 기획과 IP 사업에도 활용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다만 글로벌 FAST 시장에서의 경쟁은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주요 IT 기업과 방송사가 수백 개 채널 단위로 FAST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K FAST 채널이 시청자 눈에 띄기 위해서는 단순 언어 변환을 넘어, 편성 전략과 알고리즘 추천, 광고 판매 네트워크까지 통합한 운영 역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데이터 기반 시청 패턴 분석과 지역별 맞춤 콘텐츠 큐레이션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와 정책 측면에서는 AI 더빙 과정에서 활용되는 음성 데이터, 자막 스크립트, 메타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저작권 관계가 앞으로 쟁점이 될 여지도 있다. 특히 출연 배우의 음성 특징을 본뜬 합성 음성 사용, 로컬 성우 데이터 학습 등에서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 2차 저작물 권리가 얽힐 수 있어, 정부와 업계가 가이드라인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국어 버전별 심의 기준과 광고 규제 차이 역시 국가별 서비스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글로벌 K FAST 얼라이언스 의장인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국내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 OTT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온 현실을 짚으며, 종속 심화로 인한 구조적 붕괴 위험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FAST와 AI 전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민관 역량을 결집해야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기간 성과에 치우치기보다, K FAST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와 기술, 유통 인프라를 장기 경쟁력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최우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AI 더빙 특화 채널 구축을 K 콘텐츠의 직수출 통로이자, 국내 기업이 AI 더빙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하는 시험대라고 평가했다. 이어 K 플랫폼과 AI 융합을 통해 국내 플랫폼, AI 더빙, 콘텐츠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향후 사업 확대와 제도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K FAST 얼라이언스 확대와 AI 더빙 채널의 초기 성과가 향후 대규모 투자를 이끌 마중물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K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과 기술 패권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FAST 모델과 AI 미디어 기술을 묶은 새로운 표준을 얼마나 빠르게 안착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시도가 실험을 넘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