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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처벌하면 누가 하겠나 격노"…윤석열 등 12명 기소, 특검 "중대한 권력형 범죄" 규정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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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 외압 의혹을 두고 대통령실과 국방부, 특검이 정면 충돌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인사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면서, 향후 법정 공방과 정치적 파장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21일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한 수사 외압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공용서류무효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채 상병이 2023년 7월 순직한 이후 약 2년 4개월 만의 수사 종결이자, 특검팀이 같은 해 7월 2일 현판식을 열고 정식 수사에 착수한 지 142일 만에 나온 결론이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외압에 가담한 혐의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전하규 전 국방부 대변인, 허태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유균혜 전 국방부 기획관리관, 국방부 조직총괄담당관 이 모 씨 등 11명도 함께 기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2023년 7월 폭우 속 무리한 인명 수색 작전이었다. 특검팀에 따르면 당시 채 상병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박정훈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 수사단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혐의자로 판단했다. 이 수사 결과는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과 해군 참모총장,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순차 보고됐고, 별다른 이견 없이 결재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특검팀은 같은 해 7월 31일 국가안보실 회의가 전환점이었다고 지목했다. 특검 설명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채 상병 사건 보고를 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이 시점을 계기로 대통령실과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직권남용 범행이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이후 이종섭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 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다. 유재은 당시 법무관리관은 박정훈 대령에게, 이 전 장관 측근으로 지목된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은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에게 각각 연락해 수사 결과 변경을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병대 수사단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사건 기록을 경찰에 곧바로 이첩하자, 윤 전 대통령은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국방부에 기록을 회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했다. 이어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은 박 대령의 보직 해임과 항명 수사를 지시했고, 김계환 전 사령관은 이에 따라 박 대령을 보직에서 해임했다. 김동혁 당시 국방부 검찰단장은 박 대령을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했다.  

 

채 상병 사건 기록은 이후 국방부 장관 직속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됐다. 그러나 조사본부 역시 임성근 전 사단장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결론 내리자,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이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수사 결과를 변경시킨 정황도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특검팀은 이 같은 과정을 종합해 "윤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실행 행위를 분담해 직권남용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시했다. 이어 "군과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 수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평가했다.  

 

특검팀은 특히 대통령의 수사 개입 한계를 법리 차원에서 강조했다. 특검은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각 부의 장관을 통해 수사기관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으나 그 권한은 법치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따른 수사권 발동을 촉구하는 의미의 일반적·선언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넘어 특정 사건에의 개별적·구체적 지시는 수사의 공정성 및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자의적인 수사 및 법 집행으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어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소 제기 취지를 부연했다.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복성 조치도 별도로 문제 삼았다.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에 대해 두 차례의 체포영장과 한 차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직권남용과 감금,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범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또한 특검팀은 국방부 측의 편파 수사와 증거 제출 방식에 대해 "공소권을 남용해 박 대령을 횡령죄와 상관 명예훼손죄로 부당하게 재판에 넘겼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박 대령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고 있다고 보고, 그의 조속한 신분 회복을 돕겠다며 항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권한을 침해한 선을 넘어, 법과 원칙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 수사관들에게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보복했다고 결론내렸다. 특검은 "해병대 수사단의 정당한 직무 수행에 대한 조직적 보복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중대한 권력형 범죄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특검팀은 대통령실 일부 인사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섰다.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은 특검 수사에 성실히 임해 조력한 점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이 접수됐으나, 관련 혐의가 확인되지 않아 불기소 결정을 했다.  

 

정 모 특별검사보는 "수사의 공정성을 침해하는 수사 외압 행위를 엄정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법과 원칙에 따라 이 사건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전·현직 군 수뇌부를 겨냥한 특검의 중대 기소로 정치권은 격랑이 예상된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의 구체적 개입 정황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군 사법 체계와 행정부의 수사 개입 관행 전반을 둘러싼 제도 개선 논의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국회는 특검 기소 이후 정국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면서, 후속 입법과 제도 보완 방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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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채수근상병#박정훈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