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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장기이식까지 잇는다”…한국, 기증 연계 플랫폼 주목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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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대기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가운데,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장기기증 연계 플랫폼이 의료 현장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장기기증과 이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흐름이지만, 실제로 기증 가능한 장기와 대기자 간 매칭 효율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증에서 이식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의료 자원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데이터 기반 예측 기술과 국가 단위 플랫폼 도입 방향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장기이식 분야가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가 만나는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국내 장기이식 시스템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중심으로 기증 의사 확인, 장기 상태 평가, 수혜자 매칭, 이송과 수술 병원 조정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 운영된다. 각 단계는 의료진의 판단과 서류·전화 중심의 조율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시간이 생명인 장기이식 특성상 정보 전달 지연과 병상·수술실 확보 문제 등이 반복되는 구조다. 의료계에서는 “기증이 이뤄져도 실제 이식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장기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장기이식은 혈액형, 조직 적합도, 환자 상태, 장기 상태, 거리와 운송 시간 등 다변량 요소가 한 번에 작동하는 영역이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하면 이들 요소를 동시에 계산해, 어느 장기가 어떤 환자에게 언제 이식될 때 생존율과 예후가 가장 높을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실제 해외에서는 유럽연합 공동 이식 네트워크와 미국 이식네트워크에서 AI 기반 우선순위 추천, 거부반응 위험 예측 모델을 시험 적용하면서 기존 규칙 기반 매칭보다 예후 예측 정확도를 높였다는 초기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식 적합도 예측에서도 정밀의료 기술이 접목되는 흐름이다. 기존에는 혈액검사와 제한적인 조직형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의사가 경험에 따라 거부반응 위험을 판단했지만, 최근에는 유전체 정보와 면역 관련 바이오마커를 함께 분석하는 연구가 늘고 있다. 장기이식 후 거부반응 발생률을 기존 통계 모델 대비 20에서 30퍼센트 수준으로 낮춘 AI 예측 모델 결과도 해외 학술지에 보고됐다. 국내에서도 일부 상급종합병원이 이식 환자의 검사 데이터를 모아 머신러닝 기반 예후 예측 연구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장기이식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 데이터 표준화와 법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장기이식은 뇌사 진단 기록, 영상검사, 수술 기록, 중환자실 모니터링 데이터, 이송 기록 등 다종다층의 민감 의료 정보가 얽혀 있다. 데이터 활용 동의 범위, 가명처리 수준, 연구 목적과 임상 의사결정 지원 목적의 구분 등이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의료계 관계자는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수년간 축적된 수천 건 단위의 이식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병원별 데이터 포맷이 달라 통합과 품질 관리에 상당한 시간이 든다”고 말했다.

 

규제 환경 측면에서도 AI 기반 장기이식 지원 시스템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즉 SaMD 범주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수혜자 우선순위나 이식 적합도를 직접 제시하는 기능을 탑재할 경우, 식약처 허가 과정에서 안전성과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수준까지 AI 권고를 임상의 판단 보조로 볼지, 혹은 실질적 결정 요소로 인정할지에 따라 요구되는 임상시험 설계와 책임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서도 장기이식 매칭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공공성과 알고리즘 설명 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식 네트워크 차원의 디지털 전환 경쟁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은 국가 또는 초국가 단위 통합 이식 플랫폼을 구축해 실시간 장기 상태와 이식 가능 병원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클라우드 기업들도 의료기관과 협력해 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비교적 작은 시장임에도, 클라우드 기반 이식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기증에서 이식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인 사례를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주요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장기이식 통합 플랫폼 고도화와 AI 기반 수혜자 매칭 연구가 병행되는 상황이다. 정부 차원의 디지털플랫폼정부 계획,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 등과 연계해 장기이식 데이터 인프라를 포함하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 생명윤리, 공공성이 복합적으로 얽힌 영역이라 관련 법령과 가이드라인을 정교하게 손질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이식 분야가 의료 AI 기술의 실제 효용과 윤리 논쟁이 동시에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본다. 한 대학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기증자의 숭고한 결정이 더 많은 생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의료인의 책무”라며 “AI와 디지털 플랫폼은 그 연결을 돕는 도구일 뿐, 결정권과 책임은 결국 사람에게 있다는 전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기술과 제도가 조화를 이루며 장기이식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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