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안 따지는 집안망"…TTA, 홈네트 표준 인증으로 상호연동 가속
홈네트워크 장비를 제조사에 상관 없이 연동하려는 표준 인증 움직임이 본격화한다. 그동안 아파트 단지마다 다른 브랜드 장비가 설치되면서 세대 내부 단말기와 조명, 난방, 가스 밸브 제어기기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가 세대단말기 단계부터 상호호환성을 검증하는 시험인증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스마트홈 산업 전반의 표준 기반 재편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는 지능형 홈네트워크 기기의 표준적합성과 상호호환성 확보를 목표로 한 표준 시험인증 서비스를 1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이미 세대단말기에 대한 성능과 기능 시험을 수행해 왔지만, 여기에 산업 표준 준수 여부와 다양한 제조사의 기기 간 연동 가능성을 추가 검증 항목으로 올려 정식 인증 체계를 구축한다.

핵심 대상인 세대단말기는 아파트 거실 벽면에 설치되는 터치 패널 형태의 단말기로, 세대 내부 조명과 난방, 가스, 방문 출입, 공지사항 확인 등 각종 서비스를 제어하는 홈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한다. TTA는 세대단말기가 국내 홈네트워크 표준 규격을 정확히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표준적합성 시험과, 동일 규격을 따르는 다른 제조사 장비와 실제로 명령과 상태 정보를 정확히 주고받는지 검증하는 상호호환성 시험을 병행해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로드맵은 세 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세대단말기를 대상으로 현재 운영 중인 성능·기능 시험에 표준 적합성과 상호호환성 검증을 추가한다. 이 단계에서 허브 장비의 기본 프로토콜 해석 능력, 장애 복구 절차, 보안 통신 처리 등 핵심 동작이 표준에 맞게 구현됐는지 집중 점검하게 된다. 특히 서로 다른 제조사 세대단말기가 동일 환경에서 동일한 명령에 일관된 동작을 보이는지 여부가 중요한 평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2단계로 넘어가면 검증 범위가 하위 제어기기 전반으로 확장된다. 조명 제어 모듈, 난방 컨트롤러, 가스 밸브 차단기 등 세대단말기와 직접 연결되는 장비가 대상이다. TTA는 이 과정에서 세대단말기가 특정 제조사 장비에만 최적화돼 있는 구조를 점진적으로 해소하고, 건설사와 통신 사업자, 보안 업체, 가전 제조사 등 다양한 사업자가 공통 규격 기반으로 기기를 공급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 단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해야 소비자가 브랜드와 상관 없이 원하는 기기를 선택해 설치할 수 있는 환경에 가까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3단계는 홈네트워크 인프라가 유선 중심에서 무선 중심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반영한 유무선 통합 인증 체계 구축이 골자다. 최근 글로벌 스마트홈 시장에서는 매터로 불리는 통합 규격 기반 무선 통신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매터는 서로 다른 제조사의 스마트 조명, 온도조절기, 도어락 등을 하나의 표준 프로토콜로 제어하도록 설계된 사물인터넷 표준으로, 국내에서도 주요 가전사와 통신사가 도입을 검토 중이다. TTA는 기존 아파트에 깔린 유선 홈네트워크 설비와 와이파이, 저전력 무선 통신을 활용하는 IoT 기기가 섞여 있는 환경을 가정하고, 두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시험인증 모델을 설계 중이다.
특히 이번 인증 체계는 건설사가 단지 설계 단계에서부터 표준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도록 만드는 간접 규제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대단말기와 하위 기기들이 TTA 인증을 획득하게 되면, 건설사 입장에서는 인증 제품 위주로 설계를 구성하는 편이 유지보수와 향후 서비스 확장 측면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반대로 비표준 독자 규격을 사용하는 장비는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주요 스마트홈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생태계 안에서 상호호환성을 관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국내 아파트 중심 홈네트워크 시장은 건설사, 통신사, 보안회사, 홈오토메이션 장비 제조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단일 플랫폼 주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상호연동 문제를 공공 표준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네트워크 표준 전문기관이 표준 시험인증을 제공하는 방식은 국내 주거용 스마트홈 특수성을 반영한 모델로 평가된다.
다만 데이터 보안과 이용자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담보할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세대단말기를 통한 조명과 난방 제어 기록, 출입 이력 정보는 거주자의 생활 패턴을 세밀하게 드러낼 수 있는 민감 데이터에 속한다. 유무선 통합 인증 단계에서 보안 통신 규격, 데이터 접근 권한 관리, 원격 제어 권한 위임 구조 등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까지 포함될지 여부가 향후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계에서는 표준 시험인증 서비스 도입이 국내 스마트홈 솔루션 기업의 기술 경쟁력과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은 이번 시험인증 서비스가 국내 홈네트워크 시장을 표준 중심으로 통합하고 인공지능 기반 유무선 통합 인증까지 연계해 이용자가 브랜드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기기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능형 홈네트워크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아파트 분양과 유지보수 현장에서 이 인증 체계가 얼마나 빠르게 채택될지가 향후 시장 구도를 가를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