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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공룡의 발자국”…고성에서 만난 남해의 포근한 시간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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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남 고성군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예전엔 ‘공룡 화석의 고장’으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여유와 자연이 공존하는 남해의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사소한 선택 같지만, 그 안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역사를 오롯이 마주하려는 새로운 여행의 태도가 담겨 있다.

 

흐린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온화한 기온이 감도는 고성군. 이곳 하이면 상족암군립공원에선 백악기의 시간이 파도 위로 선명히 떠오른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퇴적암과 바닷물에 깎인 해식동굴 위로 25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펼쳐진다. 가족들은 미로처럼 이어진 바위 틈을 거닐고, 아이들은 공룡의 발자국을 하나씩 짚으며 호기심을 키운다. 바로 옆 고성공룡박물관에서는 웅장한 브라키오사우루스 조형물과 함께 공룡 시대의 생명력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상족암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상족암

자연의 신비와 더불어, 고성엔 조용히 흐르는 역사의 강이 있다. 회화면 당항포관광지를 찾으면 임진왜란의 전운이 아직도 바람결에 남아 있는 듯하다. 충무공 이순신이 왜적을 물리친 전승지, 그 치열했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당항포해전관이 바로 그곳이다. 바다와 산, 그리고 전적지가 포근하게 한 데 어우러져 있다. 펜션과 캠핑장이 잘 꾸며진 덕분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함께 머무는 풍경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고성의 남쪽 끝, 거류면에 작은 카페 고옥정이 있다. 빛나는 남해 바다와 잔잔한 윤슬, 그리고 느린 시간이 바깥 풍경과 실내를 잇는다. 오래된 집의 기억을 간직한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으면, 바쁜 일상의 소음이 비로소 희미해진다. 맑은 날, 흐린 날 모두 고성만의 평온함이 그대로 스며든다.

 

이런 변화는 여행 데이터에도 반영된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자연과 배움, 그리고 나만의 쉼터를 고루 갖춘 여행지가 최근 부쩍 주목받고 있다”고 전한다. 실제로 고성군 공룡 화석지와 당항포관광지는 국내외 가족 방문객, 친구·연인들의 SNS 인증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에는 “공룡의 시간을 밟으며 산책하는 기분이 색다르다”, “카페에서 바다 보며 쉬는 이 순간, 모든 고민이 사라진다”는 감상도 쉽게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자연을 만끽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의미까지 곱씹을 수 있는 여행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른다”고 짚는다. 남해의 온화한 빛, 공룡의 신비, 그리고 나직한 물결 소리 아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힐링을 느낀다.

 

작고 세심한 취향의 변화가 새로운 여행을 만든다. 고성의 풍경에는 거창한 무언가보다, 제대로 쉬고 싶었던 우리의 소망이 담겨 있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송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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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상족암군립공원#당항포관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