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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점유율 흔들리는현대차·기아”…현지·중국 브랜드 공세→재편 가속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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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가 유럽 시장에서 2년 연속 역성장 국면에 들어서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 현지 브랜드가 전동화 전환을 앞세워 본격적인 수성에 나선 가운데, SAIC와 BYD를 필두로 한 중국계 브랜드의 추격이 격렬해지며 한국 완성차 2사의 입지가 협공을 받는 형국으로 정리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양사의 유럽 판매는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점유율도 소폭 밀려난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 집계 기준 현대차·기아의 2024년 10월 유럽 판매량은 8만1천540대로 전년 동월보다 1.4% 줄었다. 현대차는 0.8% 감소한 4만1천137대를 기록했고, 기아는 2.0% 줄어든 4만403대를 판매했다.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7.5%로 전년 동기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차종별로는 현대차 투싼 9천959대, 코나 6천717대, i10 3천877대가 주력 판매를 이끌었고, 기아는 스포티지 1만1천960대, 씨드 6천271대, EV3 5천463대 순으로 판매 비중이 컸다.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현대차·기아의 주요 SUV와 전동화 모델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현대차·기아의 주요 SUV와 전동화 모델

전동화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현대차는 투싼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라인업을 포함해 투싼 6천535대, 코나 5천275대, 인스터 2천704대 등의 친환경차 실적을 거두었다. 기아는 EV3 5천463대, 니로 3천635대, EV4 1천410대 등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의 판매 구조를 유지했다. 친환경차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음에도 전체 판매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전동화 전략의 속도와 차급별 구성, 가격 포지셔닝을 둘러싼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연초부터 10월까지의 누적 실적은 하락 폭을 더욱 선명히 보여준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현대차·기아의 유럽 누적 판매는 87만9천4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2.8% 감소했다. 이 가운데 현대차는 44만3천364대를 기록해 1.5% 역성장했고, 기아는 43만6천115대로 4.1% 줄어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연간 판매 감소가 유력해진 셈이다. 2023년의 역성장은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0년 이후 처음이었는데, 2024년 들어서는 공급망 충격이 완화된 상황에서도 감소세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시장 경쟁 구도가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유럽 내 경쟁사 동향과 비교하면 양사의 부담은 더 짙어진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유럽 시장 점유율 4위, 8.0% 수준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나, 상위 그룹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흐름이 포착됐다. 10월 누적 기준 폭스바겐그룹은 296만3천187대를 판매해 26.9% 점유율과 4.6% 성장률을 동시에 달성했다. 르노그룹 역시 111만6천387대를 기록하며 점유율 10.1%, 성장률 7.3%를 확보했다. 유럽 굴지의 완성차 그룹들이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는 사이 현대차·기아가 역성장에 머무르면서, 과거 대체재로 부각되던 ‘가성비 강점’만으로는 수익성과 점유율을 지키기 어려운 국면이 도래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동시에 중국계 브랜드의 부상은 유럽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를 압박하는 두 번째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1월부터 10월까지 25만250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26.6% 증가했고, 점유율을 2%대로 끌어올렸다. BYD는 같은 기간 13만8천390대를 판매하며 무려 285.0%에 달하는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전기차를 전면에 내세우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전략으로 유럽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혀 가는 양상으로 평가된다. 유럽 완성차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브랜드의 판매량이 아직 절대 규모에서는 제한적이지만 성장 속도만큼은 기존 주류 브랜드를 상회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공세 배경에는 내수 시장 경쟁 심화와 과잉 생산 능력 문제가 자리한다는 분석도 더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내수에서 누적된 생산 능력을 유럽과 중동, 동남아 등으로 분산시키며 ‘수출을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는 신규 브랜드 진입과 현지 조립 및 생산 투자가 병행되는 만큼, 현재의 성장세가 단기간에 잦아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진단은 유럽 전동화 수요가 성장 국면을 이어가는 한 중국계 브랜드의 점유율 확대가 중장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차·기아 입장에서는 전동화 전환의 속도뿐 아니라 유럽 특유의 규제 환경에 대한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럽연합이 강화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와 엄격한 안전·소프트웨어 기준을 적용하고, 한편으로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를 통해 통상 리스크를 조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완성차 업체가 유럽 내 전기차 생산 거점 확충, 배터리 공급망 안정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역량 강화 등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가격 대 성능’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프리미엄과 신뢰 기반의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향후 관건은 유럽 소비자의 체감 가치에 부합하는 라인업 재편과 현지화 전략의 깊이다. C세그먼트 SUV와 B세그먼트 도심형 전기차가 유럽 전동화 시장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대표 모델인 투싼, 코나, 인스터, 스포티지, EV3, EV4 등이 어느 정도의 가격 경쟁력과 브랜드 선호를 유지할지가 성적을 좌우할 전망이다. 유럽 전기차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격차, 각국의 세제 변화 등 변수도 적지 않은 만큼, 두 회사는 내연기관 수익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비중을 안정적으로 키우는 균형 잡힌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현대차·기아의 유럽 실적 감소는 단기적인 수요 둔화라기보다, 유럽 토종 브랜드와 중국 신흥 브랜드 사이에서 선택받기 위한 경쟁의 룰이 바뀌고 있음을 웅변하는 지표로 풀이된다. 유럽 시장에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판매량 자체보다 수익성과 브랜드 자산, 전동화·소프트웨어 역량을 포괄하는 장기 전략의 재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 업계에서는 2025년 이후 유럽의 전기차 보급 속도와 규제 방향, 통상 환경 변화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전략 수정 폭과 투자 방향이 구체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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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폭스바겐그룹#by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