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트코인 30% 급락”…톰리, 10월10일 유동성 충격→시장 구조 균열 경고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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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 새 20% 넘게 밀리며 2022년 테라 사태 이후 최악의 조정 구간에 진입한 가운데, 10월10일 발생한 대규모 레버리지 청산이 촉발한 구조적 유동성 충격이 여진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급락이 단기 가격 조정이 아니라 시장조성자 자본 훼손과 ETF 자금 이탈이 맞물린 구조적 균열에서 비롯됐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미국 통화정책 방향과 ETF 자금 흐름이 암호화폐와 뉴욕 증시 전반에 어떤 변화를 예고할지 관심이 모인다.

 

톰 리 펀드스트랫 리서치 총괄은 21일 현지 보도에서 “비트코인 하락장은 10월10일 구조적 충격의 메아리”라며 최근 약세장의 배후에 대규모 유동성 경색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더 크립토 베이직과 CNBC 등에 따르면 그는 10월10일 하루 동안 약 190억달러 규모 암호화폐 파생상품이 강제 청산되면서 시장조성자 자본이 크게 훼손됐다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8만7000달러 붕괴…규제·심리 불확실성에 하락 압력
비트코인 8만7000달러 붕괴…규제·심리 불확실성에 하락 압력

암호화폐 데이터업체 코인글래스 집계에 따르면 당시 160만명 이상의 트레이더가 레버리지 포지션 손실을 기록했다. 이후 비트코인은 12만달러대 고점에서 8만달러대 초반까지 30% 이상 하락했다. 21일 기준 국제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8만4,685달러 수준에 머물며 한 달 사이 22% 넘게 떨어진 상황이다. 톰 리는 “가격 조정이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에 균열이 생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톰 리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가격이 아닌 유동성이다.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된 상황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여기에 10월10일 레버리지 청산 충격 이후 시장조성자들이 매수 호가를 넓히고 보유 물량을 줄이면서 거래소 간 유동성 공급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11월 중순 이후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는 나흘 연속 순유출이 발생했으며, 블랙록과 아크인베스트, 그레이스케일 상품에서만 수억달러 규모 자금이 빠져나가 하락 압력이 강화됐다.

 

유동성 경색 효과는 암호화폐 시장에 그치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톰 리와 인터랙티브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은 20일 뉴욕 증시가 장중 급등세에서 갑자기 약세로 돌아선 배경으로 비트코인 가격 붕괴를 꼽았다. 비트코인이 9만달러 지지선을 시험하다 8만7,000달러대로 밀려나던 시점에 나스닥과 S&P500 지수가 동시에 방향을 바꿨고, 알고리즘 매매가 비트코인을 투자 심리의 선행 신호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암호화폐와 AI 성장주를 동시에 보유한 자금이 많아진 점도 전염 경로로 거론된다. 비트코인 변동성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및 기술주 전반으로 확산되는 구조가 강화되면서, 뉴욕 증시의 변동성이 디지털자산 시장과 동조화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톰 리는 “암호화폐가 이제 미국 증시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그는 이번 조정 국면을 과거 사례와 비교하며 ‘시간표’도 제시했다. 2022년에도 레버리지 청산 충격 이후 시장 정화에 약 8주가 소요됐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현재는 10월10일 이후 6주 차에 접어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으로는 추가 하락과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충격 흡수 과정이 막바지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뉘앙스를 남긴 셈이다.

 

시장에서는 톰 리가 여전히 장기 상승 시나리오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근 발언에서 비트코인이 단기적으로 10만달러까지 반등할 여지가 있으며, 시장조성자 유동성이 회복될 경우 2026년 1월까지 20만달러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 비트멕스 공동창업자였던 아서 헤이즈가 달러 유동성 재개 시점을 비트코인 20만달러 상단 목표와 연결한 것과 비슷한 시각이다.

 

두 사람 모두 비트코인 가격을 중앙은행 유동성 정책의 함수로 보고, 다음 양적완화에 가까운 국면이 새로운 강세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톰 리는 현재 조정장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10월 이후 약세를 “10월10일 충격의 메아리”라고 표현하며, 시장조성자 자본 손실이 만든 공백이 구조적 리스크로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신규 매수 수요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기 보유자의 차익 실현과 이른바 ‘고래’ 지갑의 이탈이 겹치고 있다. 여기에 비트코인 반감기 이후 전통적으로 나타나던 조정 패턴이 이번에는 복합적인 거시 환경과 맞물리면서 변동성을 키웠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금리 고점 부근 장기화, 미국 경기 연착륙 논쟁, 지정학 리스크 등이 겹쳐 위험자산 전반에 보수적인 기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톰 리의 시선은 ‘바닥 이후’에 맞춰져 있다. 그는 과거 여러 사이클에서 비트코인 가격의 하락 구간보다 회복 구간이 더 짧고 가팔랐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황 매도와 강제 청산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매수 기회를 기다리는 자본층이 존재하고, 규제 정비와 기관투자가 참여 확대가 이전 사이클과 다른 하부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장기 낙관론의 근거로 제시됐다.

 

최근 비트코인이 7개월 만에 9만달러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지만, 시장 해석은 엇갈린다. 반감기 주기설에 따라 본격적인 대규모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시각과, 현물 ETF와 기업 재무 전략 변화로 공급과 수요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는 낙관론이 대치하는 모습이다.

 

톰 리는 이러한 논쟁 속에서도 하락 촉매와 유동성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짚어내며 “바닥에서 사상 최고치까지 올라가는 속도가 낙폭보다 더 빠르다”는 경험칙을 상기시켰다. 단기적으로는 시장조성자 유동성과 ETF 자금 흐름이 회복되지 않는 한 암호화폐가 뉴욕 증시를 앞서 흔드는 불안한 풍향계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경고와, 미국 통화정책이 다시 완화로 기울며 달러 유동성이 풀릴 경우 또 한 번 역사적 가격 구간을 향해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기대가 교차한다.

 

당분간 투자자들의 관심은 톰 리가 반복해 언급한 ‘8주 정화’의 남은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트코인과 글로벌 위험자산 시장이 어떤 경로를 택할지에 쏠릴 전망이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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