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5천만원 시계, 1천790만원 계약”…김건희 특검, 청탁금지법과 뇌물죄 사이 고심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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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의혹과 형사 책임 범위를 둘러싸고 김건희 특별검사팀과 관련 인물들이 다시 맞붙었다. 고가 시계를 매개로 한 이른바 로봇개 사업 청탁 사건이 청탁금지법 위반에 그칠지, 형법상 뇌물 사건으로 번질지에 따라 정치권 파장도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시계를 선물한 로봇개 사업가 서성빈 씨에게 적용할 혐의로 청탁금지법 위반죄와 형법상 뇌물공여죄를 놓고 막판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혐의 구조와 입증 난이도를 함께 따지며 법리 구성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이 먼저 주목하는 대목은 직무 관련성이다. 조사 결과 서성빈 씨는 2022년 9월께 김건희 여사에게 시가 5천만원 상당으로 평가되는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건넸고, 같은 시기 대통령경호처와 1천790만원 규모의 로봇개 시범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검은 이 시점과 거래 구조를 놓고 청탁의 단서를 추적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다. 대가성 여부와 무관하게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성립 요건을 충족하는 구조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직무 특성상 관련성이 폭넓게 인정돼 왔다는 점을 들어 “경호처와 계약을 추진하던 사업자가 대통령 배우자에게 5천만원 상당 시계를 준 사실만으로도 청탁금지법 위반 구성요건에는 상당 부분 근접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특검이 고민하는 지점은 한 단계 높은 형사 책임인 뇌물공여죄 적용 여부다. 형법상 뇌물죄는 직무 관련성에 더해 ‘대가성’이 입증돼야 한다. 다시 말해 서성빈 씨가 경호처 로봇개 계약이나 향후 사업 편의를 받기 위한 구체적 청탁의 대가로 시계를 제공했는지가 확인돼야 한다는 뜻이다.

 

뇌물 사건으로 확장되려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도 함께 규명돼야 한다. 서성빈 씨가 김건희 여사와 공모해 윤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활용하려 했는지, 윤 전 대통령이 서 씨의 계약 추진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사실상 묵인하거나 지원했는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특검은 대통령 배우자를 매개로 한 간접 로비 구조를 염두에 두고 진술과 물증을 대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특히 경호처와의 시범운영 계약이 갖는 상징성과 홍보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 경호처에 납품한 이력 자체가 민간 영업에서 강력한 신뢰도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팀은 “로봇개 시범운영 계약이 제공할 잠재적 사업기회”를 대가로 한 선물이 아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대규모 후속 계약을 겨냥한 ‘마중물 청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업 진행 내용은 특검 구상과 어긋나는 측면도 있다. 서성빈 씨가 경호처 계약 이후 오히려 로봇개 관련 사업을 접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향후 이익을 노린 대가성 구조를 입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예측 이익이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잠재적 이득’을 뇌물의 대가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서성빈 씨는 특검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세 번째 참고인 조사를 위해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에 “1천790만원짜리 계약을 위해 그 시계를 선물한 게 말이 되느냐. 산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계약 규모와 시계 가격을 비교하며 대가성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를 재차 내세운 셈이다.

 

특검은 로봇개가 처음 정치권 전면에 등장한 계기에도 주목한다. 서성빈 씨는 2022년 8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동행축제’ 전야제 행사에 참여했고, 당시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행사장에서 로봇개를 직접 소개한 장면이 포착됐다. 이 전 장관은 발언대 옆에 배치된 로봇개 2대를 가리키며 “한국과 미국의 콜라보를 상징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이후 2023년 1월 총선 출마를 앞두고 연 출판기념회에서도 로봇개를 활용해 책 운반 장면을 연출했다. 특검은 이 같은 행보를 토대로 서성빈 씨가 김건희 여사에게 이영 전 장관의 ‘제품 홍보’를 부탁하고, 김 여사가 대통령실을 통해 중소벤처기업부 측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을 가능성에 시선을 두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 장관, 정부 행사로 이어지는 홍보 라인이 실제 있었는지 여부가 주요 조사 대상이 된 셈이다.

 

민중기 특검팀은 이와 관련해 지난 20일 이영 전 장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로봇개 홍보 경위와 당시 행사 기획 과정, 김건희 여사 또는 대통령실 측과의 소통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의 진술은 향후 직무 관련성과 영향력 행사 여부를 가르는 핵심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서성빈 씨는 정부 행사와 로봇개 전시 과정에 대해 “제품을 수입한 고스트 로보틱스 테크놀로지 측이 전담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자신의 개입과 김건희 여사와의 연계 등을 부인하고 있다. 수입사와의 역할 분담, 비용 처리 구조 등 세부 사실관계를 두고 특검과 서 씨 측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수사 시간표도 점차 구체적으로 잡히는 분위기다. 특검팀은 내달 4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김건희 여사를 소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서성빈 씨에 대한 범죄사실과 혐의 구성을 확정해, 김 여사 조사 시 법적 책임 범위와 공모 여부를 집중 추궁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정치권에선 혐의 적용 수준에 따라 정국의 진폭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동시에 나온다. 청탁금지법 위반에 그칠 경우 도덕성과 공공성 논란이 중심이 되겠지만, 뇌물 사건으로 비화할 경우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수사 선상에 직접 연결될 수 있어서다. 여야는 특검 수사 결과를 겨냥해 상반된 메시지를 준비하는 한편,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관련 제도 보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특별검사팀은 앞으로 추가 참고인 조사와 자료 분석을 진행하면서 청탁금지법과 뇌물공여죄 적용 범위를 최종 정리할 계획이다. 국회와 정치권은 특검 수사 향배에 따라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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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특검#서성빈#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