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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에 약해지는 심장 건강관리 경보…겨울 심혈관질환 비상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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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최강 한파가 이어지면서 심혈관계 질환 위험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급격한 기온 하락은 혈관 수축과 혈압 상승을 동반해 심장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겨울철 한파가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 같은 중증 심혈관질환의 촉발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기온 변화에 따른 체온·혈압 관리가 심장 건강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의료계는 “한파는 노출 시간에 따라 심장 기능 저하와 돌연사 위험까지 높일 수 있는 환경 스트레스”라며 주의를 요청하고 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겨울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말초 혈관이 강하게 수축해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혈류 역학이 변하고, 그 결과 심장이 더 큰 압력에 맞서 혈액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유럽심장학회 자료에서는 기온이 약 10도 낮아질 때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19퍼센트 증가하고, 협심증·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 위험은 22퍼센트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우리 몸이 추위에 적응하는 생리적 반응이 심혈관계에는 ‘과부하’로 전환될 수 있는 셈이다.

한파 환경에서 피부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아드레날린 등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증가한다. 동시에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는데, 이 과정이 이미 동맥경화가 진행된 혈관에서는 혈전 형성과 혈관 파열 위험을 키운다. 온도가 낮은 곳에서 소변량이 늘어나는 현상도 문제다. 차가운 환경에서 혈관이 수축하면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체내 수분 배출이 증가하고, 그 결과 혈액 내 수분이 줄면서 혈액 점도가 높아져 ‘끈적한 피’가 되기 쉽다. 점도가 높아진 혈액은 관상동맥을 쉽게 막아 심장병 발생 확률을 끌어올린다.

 

박창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찬 공기로 인해 교감신경과 호르몬 체계가 자극을 받으면서 심장병을 유발할 수 있는 인자가 한꺼번에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겨울철 외출 시에는 두꺼운 외투와 목·귀·손·발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보온 장비를 갖춰 체온을 유지하고, 실내에서는 난방을 통해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실내외 온도 차가 지나치게 크면 혈관 수축과 확장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완만한 온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겨울철 고위험 심혈관질환으로는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이 꼽힌다.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급격히 막혀 해당 부위 심장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이다. 돌연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혈류가 차단된 시간이 길수록 심장 기능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속도가 예후를 좌우한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흉통, 조이는 압박감, 호흡곤란, 식은땀, 구역감 등 증상이 대표적이다. 특히 급성 심근경색의 경우 혈전이 갑자기 관상동맥을 막으면서 자는 동안이나 휴식 중에도 심한 흉통이 발생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식은땀이 날 정도의 격심한 흉통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스스로 진정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즉시 119를 통해 응급실로 이송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근경색 치료에서는 혈관을 다시 뚫는 시술까지 걸린 시간이 곧 심장 기능 보존 정도와 직결돼, 문 두드림부터 시술 시작까지 시간을 최소화하는 ‘골든타임’ 개념이 특히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심부전은 심장이 펌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장기와 조직에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심장 수축력이 떨어지거나 이완 기능에 문제가 생길 때 나타나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 호흡곤란, 누우면 숨쉬기 불편해 상체를 세워야 하는 기좌호흡, 다리·발의 부종,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 같은 증상이 전형적이다. 이 밖에 극심한 피로감, 식욕 저하, 복부 팽만감, 밤중 잦은 배뇨, 기억력 저하 등 비특이적 증상이 동반되기도 해 단순 노화 현상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정맥은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전기 신호의 생성이나 전달에 장애가 생겨 심장 리듬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거나 느리거나 불규칙해지는 상태를 통칭한다. 정상 심박수는 분당 60에서 100회 사이의 규칙적 박동으로 유지되지만, 부정맥에서는 이 범위를 벗어나거나 박동 간격이 들쭉날쭉해진다. 일부 부정맥은 일시적이거나 무증상으로 경과하지만, 심방세동 같은 만성 부정맥은 뇌졸중과 심부전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한파로 혈압과 심장 부담이 올라가는 계절에는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의료계는 생활습관 전반의 재점검을 권고한다. 적정 체중 유지와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포화지방과 나트륨을 줄이고 채소·과일·불포화지방 섭취를 늘리는 식습관 개선, 충분한 수면이 기본이다. 여기에 과도한 업무와 야근, 수면 부족을 동반하는 과로 환경과 만성 스트레스 차단이 핵심 관리 포인트로 꼽힌다. 특히 겨울에는 실외 활동이 줄면서 활동량이 감소하고 체중이 쉽게 늘어 혈압·혈당·지질 수치가 악화되기 쉬운 만큼, 실내에서도 걷기와 스트레칭 같은 가벼운 운동을 지속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박창범 교수는 “사회생활 중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일에 대한 동기와 집중력을 높여줄 수 있지만,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가 심장질환 발생률을 끌어올린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파 시기에는 무리한 야외활동보다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시간을 보내며 신체적·정신적 긴장을 낮추는 것이 심장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겨울철마다 반복되는 한파를 일상적인 ‘심장 점검 시즌’으로 인식하고 정기 검진과 생활습관 관리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한파가 잦아지는 만큼,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자를 위한 계절별 심혈관질환 관리 지침과 디지털 모니터링 기술 도입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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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범#강동경희대학교병원#심혈관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