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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 빅파마가 선택한 K바이오 기술 수혜 주목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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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치료 기술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RNA 기반 유전자 조절 플랫폼은 비만과 대사질환까지 치료 영역을 넓히며 시장 기대를 키우는 모습이다. 하나증권은 내년 바이오 투자 핵심 축으로 유전자 치료제를 제시하며, 글로벌 빅파마와 기술 협력에 속도를 내는 국내 개발사와 생산 파트너의 성장성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분석이 K바이오의 유전자 치료 밸류체인 재평가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나증권은 26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뇌질환과 ADC에 이어 내년 주목할 제약바이오 테마로 유전자 치료제를 지목했다. 유전자 치료제는 결함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특정 유전자를 체내에 도입해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의약품으로, 희귀 유전질환과 암 분야를 중심으로 개발이 본격화됐다. 특히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인 RNA를 표적해 질병 원인 단백질의 생성을 차단하는 RNA 치료제가 차세대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RNA 치료제는 세포 내에서 단백질 설계도 역할을 하는 RNA 분자를 직접 조절해 병의 원인을 차단한다. 대표 기술로는 특정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인 ASO와, 짧은 간섭 RNA를 활용해 표적 mRNA를 분해하는 siRNA, 유전자 발현을 미세 조정하는 마이크로 RNA 기반 치료 등이 꼽힌다. 단백질 자체를 겨냥하는 기존 항체 의약품과 달리 상위 단계에서 신호를 차단하기 때문에, 적절한 표적만 찾으면 더 근원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나증권 김선아 연구원은 글로벌 RNA 치료제 진화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싱가포르 소재 바이오 기업 웨이브라이프 사이언스를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웨이브라이프 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siRNA 기반 비만 치료제의 임상 1상 중간 결과가 나왔고, 초기 데이터지만 기존 비만 치료제의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해결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기존 펩타이드 기반 비만 치료제는 3개월마다 반복 투여가 필요한 짧은 반감기와 근육량 감소가 대표적인 약점으로 꼽혀 왔다.

 

웨이브라이프 사이언스가 공개한 비만 치료제 WVE-007의 임상 1상 데이터에서는 체중 감량의 양뿐 아니라 질이 주목을 받았다. 내장지방이 9.4% 감소하는 동안 골격근량의 유의미한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체지방과 근육량이 함께 줄어드는 기존 약물과 달리, 대사질환 관리에서 중요한 내장지방만 선택적으로 줄인 것이다. 안전성과 내약성, 장기 효과에 대한 추가 검증이 남아 있지만, 기전 측면에서 새로운 옵션을 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WVE-007은 간에서 발현되는 INHBE mRNA를 표적해 분해하는 siRNA 기술을 사용한다. INHBE 유전자를 차단하면 지방 분해가 촉진돼 체중 감소로 이어지는 기전이다. 유전적·대사적 경로를 직접 건드려 에너지 대사 균형을 바꾸는 방식으로, 호르몬 수용체를 자극해 식욕을 줄이는 기존 GLP 계열 비만 치료제와 차별화된다. 특히 간 특이적 전달을 구현해 전신 부작용 부담을 줄이려는 설계가 적용됐다는 평가다.

 

김 연구원은 웨이브라이프 사이언스와 유사한 기술 방향성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으로 올릭스를 지목했다. 올릭스는 RNA 간섭 기술을 기반으로 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로, 자체 비대칭 siRNA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비대칭 siRNA는 두 가닥 길이와 염기 조성을 조절해 RNA 유도체가 세포 내에서 더 안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설계한 구조로, 기존 siRNA 치료제의 대표 난제였던 세포 내 전달과 오프타깃 효과를 줄이는 전략으로 소개된다.

 

올릭스는 여기에 지질 나노입자 같은 별도 전달체 없이도 세포로 침투하도록 설계한 자가전달 비대칭 siRNA 플랫폼도 구축했다. 국소 투여를 통해 특정 조직에 약물을 직접 전달함으로써, 전신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충분한 유효 농도를 확보하려는 접근법이다. 안과·피부·호흡기 등 국소 질환을 우선 타깃으로 삼아 임상을 진행 중이며, 플랫폼 범용성을 바탕으로 파이프라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기술력은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 이전 계약으로 이어졌다. 올릭스는 올해 2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에 MASH와 심혈관·대사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비대칭 siRNA 후보물질 OLX702A를 이전했다. 계약 총액은 단계별 마일스톤을 포함해 약 9100억원 규모로 제시됐다. 업계에서는 전임상 단계 물질이 이러한 조건으로 이전된 것은 RNA 간섭 플랫폼의 확장성을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알지노믹스는 기술 구조는 다르지만 RNA 수준에서 유전 정보를 편집하는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기업이다. 회사는 RNA 치환효소 플랫폼을 기반으로 RNA 편집 유전자 치료제와 원형 RNA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DNA 서열을 직접 바꾸는 유전자 편집과 달리, RNA를 일시적으로 수정해 단백질 합성을 조정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영구적 변화 대신 되돌릴 수 있는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안전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지노믹스가 보유한 트랜스 스플라이싱 리보자임 플랫폼은 세포 내에서 잘못된 RNA를 잘라내고 정상 서열로 갈아 끼우는 역할을 한다. RNA 분자 안의 특정 부위를 인식해 교체함으로써, 유전적 결함으로 생성되는 비정상 단백질을 정상 단백질로 바꾸는 개념이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여러 돌연변이 유형을 동시에 교정할 수 있어 희귀 유전질환, 신경퇴행성 질환 등에서 넓은 적용 가능성이 언급된다.

 

이 플랫폼 역시 글로벌 제약사의 선택을 받았다. 알지노믹스는 지난 5월 일라이 릴리에 최대 1조9000억원 규모의 유전자 치료제 기술을 이전했다. 일라이 릴리는 알지노믹스의 트랜스 스플라이싱 리보자임 기술을 활용한 RNA 편집 치료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으며, 구체적인 타깃 적응증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선아 연구원은 플랫폼 기반 기술 특성상 특정 파이프라인 실패가 곧바로 회사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추가 기술 이전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

 

유전자 치료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GMP 생산 역량이 필수다. 하나증권은 생산 파트너로 에스티팜을 꼽았다. 에스티팜은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기반 RNA 치료제 위탁개발생산 전문 기업으로, 합성 공정 최적화와 품질관리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북미와 유럽 대형 제약사들과 mRNA와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제품을 대상으로 위탁생산과 공정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다.

 

RNA 치료제는 화학 합성 기반 올리고와 생물학적 제조가 필요한 mRNA 등 형태에 따라 생산 난도가 크게 갈린다. 공정 중 순도 확보, 잔존 용매 제거, 이중가닥 형성 최소화 등 기술적 허들이 높아, 일정 규모 이상의 전문 CDMO만이 상업용 생산을 감당할 수 있다. 에스티팜은 생산 규모와 품질 시스템을 동시에 갖춘 소수의 플레이어로 꼽히며, 글로벌 규제 기관의 심사를 통과한 경험을 축적해 레퍼런스를 넓혀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전자 치료제 경쟁이 이미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AV 벡터 기반 DNA 유전자 치료제가 희귀질환을 중심으로 허가를 받았고, siRNA와 ASO 계열 RNA 치료제도 일부 적응증에서 상용화됐다. 반면 국내에서는 임상 개발과 생산 인프라가 빠르게 추격 중이지만, 실제 허가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기술을 앞세운 기술 이전 전략과 CDMO 포지셔닝이 단기간 내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현실적 경로로 보고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장기 안전성 평가와 고가 약가 체계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유전자 치료제 특성상 일회 투여 또는 소수 투여로 장기간 효과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기존 임상 디자인과 약가 평가 체계로는 경제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성과 기반 지불, 분할 지불 등 새로운 모델 도입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국내에서도 건강보험 제도와 연계한 별도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치료제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대중화되기까지는 표적 선정과 전달체 개발, 장기 독성 검증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본다. 다만 글로벌 빅파마가 플랫폼 기술 확보와 생산 파트너십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만큼, 조기 단계부터 생태계에 편입된 기업의 성장 여력은 커질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산업계는 K바이오가 유전자 치료제 개발과 생산 양축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향후 10년 바이오 산업 지형이 달라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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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릭스#알지노믹스#에스티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