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인프라 위해 빚 더 낸다”…미 기술기업 회사채 900억달러, 금리 급등에 월가 긴장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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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3일, 미국(USA) 뉴욕 금융시장에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대형 기술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900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 채권 시장을 통해 급격히 늘면서 금리 상승과 신용여건 악화 우려가 커져 월가 투자자들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9월 이후 아마존(Amazon), 구글 모회사 알파벳(Alphabet),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MetaPlatforms), 오라클(Oracle) 등 미국(USA)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 4개사가 발행한 투자등급 회사채 규모는 총 900억달러에 근접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찍어낸 물량이 직전 40개월 동안 발행한 회사채 총량을 넘어선 수준으로,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자금 수요가 얼마나 가파르게 불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AI 기술기업 회사채 발행 900억달러 돌파…금리 상승에 월가 긴장
AI 기술기업 회사채 발행 900억달러 돌파…금리 상승에 월가 긴장

AI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테라울트(TeraWulf)와 사이퍼 마이닝(CipherMining)도 70억달러가 넘는 투기등급 회사채를 시장에 내놓는 등 자금 조달 경쟁에 가세했다. 현지시각 기준 9월 이후 AI 인프라 관련 회사채 공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발행사들은 당초 계획했던 물량을 모두 소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부 채권에 대해 시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예상보다 높은 쿠폰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WSJ는 발행 이후 이들 회사채의 유통 금리가 오르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이러한 금리 상승이 악화하는 신용 여건에 대한 투자자 우려 확대를 반영하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AI 열풍 속에서도 채권 투자자들이 기업들의 차입 확대와 향후 수익성 리스크를 보다 엄격하게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금리 상승 압력이 모든 AI 기술 기업 채권에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분기마다 쌓이는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AI 투자를 위한 재원을 상당 부분 자체 조달할 수 있어, 회사채 시장 변동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 같은 재무 여력은 발행 금리와 유통 금리 모두에 방어막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메타플랫폼은 보유 현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추진하는 대규모 AI·메타버스 투자 계획을 고려할 때 추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강해 조달 비용이 크게 높아졌다. 메타는 지난 10월 말 3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유통 중인 자사 기존 채권보다 눈에 띄게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당시 여러 만기로 나뉘어 발행된 메타 회사채 가운데 일부는 발행 이후 유통시장에서 수익률이 추가로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WSJ는 AA 등급을 받은 메타 채권 수익률이 한 단계 낮은 A 등급인 IBM 채권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AA와 A 등급 간에는 명확한 금리 차이가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 메타의 신용 프리미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메타에 대한 시장 시선이 성장 스토리보다는 과도한 차입과 투자 부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라클의 신용 부담은 이보다 더 도드라진다. 투기등급 바로 위 두 단계의 투자등급 신용등급을 보유한 오라클 회사채는 현재 주요 투자등급 기술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금리를 요구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클은 AI 및 클라우드 경쟁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는 동시에 이전 대형 인수 거래에서 비롯된 부채도 안고 있어,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용 리스크 논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주요 AI 클라우드 제공업체 중 유일하게 투기등급 신용등급을 가진 코어위브(CoreWeave)의 조달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코어위브가 지난 7월 발행한 2031년 만기 회사채는 최근 유통시장에서 액면 1달러당 약 92센트 수준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급 이자를 기준으로 환산한 현재 수익률은 약 11%에 달해, 신용등급 최하단인 CCC 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WSJ는 전했다. 투자자들이 AI 성장 스토리만으로는 투기등급 채권 리스크를 감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이 같은 조치는 주식시장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WSJ는 AI 기술 기업들의 높은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느껴온 주식 투자자들도 최근 회사채 약세와 금리 급등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오라클의 경우 신용부도스와프(CDS) 가격이 최근 몇 주 사이 거래량 증가와 함께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CDS 가격은 해당 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질수록 오르는 구조여서, 오라클에 대한 신용 리스크 인식이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에서는 오라클 CDS에 대한 투자자 관심 확대가 이달 들어 오라클 주가가 24% 하락한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용 리스크 헤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CDS 비용이 뛰고, 이런 불안 심리가 다시 주가를 압박하는 악순환이 관측된다는 것이다. AI 성장 기대가 크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익성과 현금창출력에 대한 물음표가 커질수록 주식과 채권이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JanusHendersonInvestors)의 글로벌 신용 책임자 존 로이드는 “지금은 시장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며 “AI 관련 주가가 하락하면 채권 시장도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AI 섹터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시장을 가로질러 동시다발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라는 진단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AI 관련 투자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USA) 빅테크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공격적 차입이 신용 사이클 악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인프라 투자가 장기적으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단기간 과도한 레버리지 누적은 금리 변동에 취약한 기업을 양산해 향후 글로벌 신용 불안을 증폭시킬 잠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제사회는 AI 열풍 속에서 회사채 시장이 견딜 수 있는 위험 한계와 그 파급 효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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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플랫폼#아마존#오라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