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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옵션 즉시 부여”…오픈AI, 베스팅 절벽 없앤다 인재전쟁 과열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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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 경쟁이 글로벌 IT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운데 핵심 인재를 둘러싼 보상 구조도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오픈AI가 입사자에게 스톡옵션을 즉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업계 관행이었던 베스팅 클리프를 없애기로 하면서다. 인공지능 모델 고도화 속도가 기업 가치와 직결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이 향후 빅테크 전반의 인재 확보 전략을 재편하는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전 임직원에게 스톡옵션 행사를 위한 최소 근속 기간을 두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그동안 오픈AI는 스톡옵션 베스팅 클리프로 불리는 6개월 최소 재직 규정을 유지해 왔으나, 이를 완전히 폐지하고 입사 즉시 주식 보상 권리를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업계 표준인 12개월에서 6개월로 줄였는데, 불과 수개월 만에 아예 절벽을 없애는 초강수를 던진 셈이다.

베스팅 클리프는 스톡옵션이나 제한부 주식 등 지분 보상이 실제로 직원에게 귀속되기 전 일정 기간 계속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뜻한다. 통상 기술 기업들은 입사 후 1년을 첫 절벽으로 설정하고, 그 시점을 지나야 지분 일부가 한꺼번에 확정된 뒤 이후 매달 또는 분기별로 나머지 물량이 분할 확정되는 구조를 쓴다. 초기에 회사를 떠나거나 조직에 부적합한 인력을 걸러내면서 지분 희석을 방지하려는 장치다.

 

오픈AI의 선택은 이 같은 안전장치를 포기하고서라도 우수 인재에게 더 공격적인 유인책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입사 직후부터 지분이 쌓이기 시작하면, 채용 과정에서 후보자는 해고나 재편 리스크를 덜 우려하면서 합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반대로 회사 입장에서는 잘못된 채용에 따른 지분 비용 발생 부담을 감수하는 만큼, 채용 단계에서의 선별과 연봉 책정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조정의 배경에는 AI 연구원과 엔지니어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전례 없이 높아진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메타, 구글, 앤트로픽 등 주요 기업이 핵심 인력에게 1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의 보상 패키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전해지며, AI 모델 아키텍처 설계자나 대규모 학습 인프라 전문가는 사실상 전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기술 인력으로 떠올랐다. 대규모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팀 한 명의 연구자가 창출하는 잠재 매출과 기업 가치가 수십억 달러 단위로 평가되고 있어서다.

 

특히 이번 조치는 경쟁사인 xAI의 보상 전략에 대한 대응 성격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xAI는 올여름 스톡옵션 베스팅 클리프를 기존 업계 평균의 절반 수준인 6개월로 줄여, 초기 합류 인력의 지분 확보 속도를 높였다. 오픈AI는 한 차례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한 데 이어, 결국 클리프 자체를 폐지하면서 xAI보다 더 진입장벽이 낮은 지분 보상 구조를 제시하게 됐다. 스톡옵션의 시작 시점 경쟁이 인재 확보전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오픈AI의 행보가 다른 AI 스타트업과 빅테크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기존에는 높은 연봉과 장기 베스팅 구조를 결합해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입사 직후 지분 확정 비중을 키우는 방향으로 협상 지형이 바뀔 수 있어서다. 특히 구글, 메타 등 대형 플랫폼 기업에서 이미 스톡옵션을 상당 부분 확보한 인력이 이직을 고려할 때, 새 직장에서 처음 1년을 사실상 무급 지분 기간으로 보내야 하는 구조는 갈수록 매력도가 낮아진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인재의 회전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베스팅 클리프가 사라지면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로 옮겨도 어느 정도 지분을 챙길 수 있어, 소수 정예 상위 인재들이 여러 기업을 오가며 몸값을 계속 올리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어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 유출에 따른 기술 유출과 노하우 이전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비밀 유지 계약과 발명 보상, 경쟁사 전직 제한 등 비재무적 안전장치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진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AI 인재와 지분 보상을 둘러싼 경쟁은 이미 일반 테크 업계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과 유럽, 중국의 주요 AI 스타트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대형 라운드 투자를 유치한 뒤, 이를 연구 인력 확보에 직접 투입하고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코히어 등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캡티브 투자와 인프라 지원을 받고, 그 일부를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재분배하는 구조를 취해 왔다.

 

국내 IT 기업과 연구기관에도 파급효과는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의 경우 스톡옵션 제도 사용 비율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점차 늘고 있지만, 대형 IT 기업과 AI 연구 조직에서는 여전히 연봉 중심 보상이 주류다. 글로벌 수준의 지분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어렵다면, 대형 모델 개발 프로젝트 참여 경험이나 해외 연구 네트워크 연계, 오픈소스 기여 활동 등 비금전적 보상 요소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규제와 회계 기준도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스톡옵션의 조기 베스팅 확산은 기업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주식 기반 보상비용을 늘리고, 상장 전후 기업가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미국에서는 주식 기반 보상의 공시 의무와 희석 효과에 대한 투자자 감시가 강화되는 추세여서, AI 기업들이 얼마나 투명하게 보상 구조를 공개하고 장기 성과와 연계하는지에 따라 시장 평가가 갈릴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결정이 당장 인공지능 기술 개발 속도를 좌우하는 직접 변수라기보다는, 인재를 중심으로 산업 권력이 재편되는 흐름의 상징적 신호로 보고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AI 인재를 둘러싼 보상 구조 경쟁이 더 과열될 여지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분 인센티브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연구 생태계의 안정성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스톡옵션 정책 변화가 실제 인재 이동과 기술 경쟁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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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xai#ai인재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