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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백 6개월 의무화 추진…OTT 시대 역행 논란 확산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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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통 구조를 둘러싼 규제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극장 개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디지털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기까지의 시차를 의미하는 홀드백 제도를 법으로 고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다. 국내 영화산업은 팬데믹을 거치며 OTT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국회가 극장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유통 시기를 일률 규제할 경우 디지털 전환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와 소비자단체는 이번 법안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한동안 뜨거운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29일 국회에 따르면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대표 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은 현재 상임위 심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뒤 넷플릭스 같은 OTT나 다른 유통 창구에서 제공되기까지의 기간을 최대 6개월로 고정하는 내용이다. 최근 극장 개봉 없이 OTT로 직행하는 작품이 늘어나면서 기존 극장 중심 유통 구조가 흔들리자, 일정 기간 극장 독점 상영을 제도화해 영화 생태계를 보호하겠다는 논리다.

임 의원 측은 법안 제안 설명에서 코로나19 이후 급성장한 글로벌 OTT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극장 상영 시기와 무관하게 지식재산권을 선점하고 인터넷 플랫폼에 콘텐츠를 선제 공개하면서 전통적인 홀드백 시스템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변화로 국내 영화 제작 환경과 투자 전망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일정 수준의 홀드백을 의무화해 극장 수익 기반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영화 특성마다 최적의 유통 전략이 다른데도 일률적인 기간 고정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국내 영화산업 침체와 극장 관객 감소를 언급하면서도, 작품 성격과 초반 흥행 성적에 따라 홀드백 기간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현장의 의견을 전했다. 흥행이 부진한 작품의 경우 조기 OTT 전환을 통해 손실을 줄이기도 하는데, 법으로 6개월을 못 박을 경우 배급 전략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소비자단체들은 홀드백 의무화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정 창구를 일정 기간 강제하도록 하는 방식이 소비자의 시청권을 제한하는 동시에 극장 시장 구조의 왜곡을 심화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국내 극장 시장이 소수 멀티플렉스 체인 중심으로 과점된 상황에서 법정 홀드백이 가격 인상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최근 성명을 통해 극장 시장 점유율의 약 90%가 대형 체인에 집중돼 있어 홀드백 고정이 결국 관람료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영화와 해외 영화 간 역차별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메이저 스튜디오와의 배급 계약 구조상 해당 법이 국내 영화에 더 강하게 작용할 경우, OTT와의 협업이나 윈도 전략을 유연하게 설계해야 하는 한국 제작사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단체는 이 같은 규제가 정작 국내 콘텐츠 경쟁력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이 누누티비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나 해외 OTT로 대거 이동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외 주요국의 홀드백 정책이 시장 변화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되고 있다는 점도 대비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극장 상영 후 90일 정도를 기본 홀드백으로 유지해왔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이 기간을 대폭 단축해 작품별로 45일 혹은 그 이하로 운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극장 성적과 디지털 수요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각 작품의 최적 유통 시차를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글로벌 OTT 경쟁이 본격화된 환경에서 유연한 윈도 전략이 콘텐츠 수익 극대화의 핵심 변수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극장 관객 감소의 원인을 단순한 플랫폼 전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힘을 얻는다. 컨슈머워치는 논평에서 영화 관람 감소는 티켓 가격 상승, 다양한 여가 활동과의 경쟁, OTT 확산 등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 시차를 법으로 강제한다고 해서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제작사와 배급사의 수익 채널 다변화를 가로막아 영화산업 전체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불법 유통과 국내 디지털 플랫폼 경쟁력 저하도 우려 사항으로 꼽힌다. 합법적인 OTT 등 디지털 창구 접근이 인위적으로 늦춰질 경우, 이용자 일부는 무료 불법 스트리밍이나 해외 플랫폼으로 이동해 합법 시장 규모를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단체는 극장, IPTV, OTT 등 각 매체가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환경에서만 콘텐츠 투자와 서비스 혁신이 촉진된다며, 특정 매체 이용을 일정 기간 법으로 강제하는 방식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고 소비자 후생에도 부정적이라고 비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극장 보호와 영화산업 진흥이라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하면서도, 유통 구조를 일률 규제로 묶기보다는 세제 지원, 제작 투자 인센티브, 지역 독립극장 활성화 같은 다층적 대안이 우선 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되는 가운데 OTT와 극장이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의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산업계와 소비자단체, 입법부의 인식 차이가 여전한 만큼, 홀드백 법제화가 실제로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문화·콘텐츠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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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백#ott#영화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