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핀섬유부터 탄소저감 건설재”…한국과학공학상, 미래 기술축 축제
첨단 수학과 양자물질, 그래핀 기반 인공근육, 탄소 저감형 건설소재까지 미래 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원천기술이 올해 한국과학상과 한국공학상을 휩쓸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학계는 해당 연구들이 향후 반도체·양자소자·웨어러블 헬스케어·친환경 건설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하고 있다. 수상자들이 구축한 이론과 소재·공정 기술이 AI, 바이오, 에너지 전환과 결합할 경우 파급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시상이 한국의 기초과학과 공학이 글로벌 정면 경쟁 단계로 진입했음을 상징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연구재단, 대한수학회와 함께 18일 열린 2025년 우수과학자 포상 통합시상식에서 한국과학상·한국공학상 수상자로 포항공대 차재춘 교수, 고등과학원 손영우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김상욱 교수, 이행기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네 명에게는 대통령상과 연구장려금 7천만 원이 수여됐다. 같은 행사에서 젊은과학자상 4명,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6명, 올해의 최석정상 3명까지 총 17명이 포상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기초수학 부문에서 한국과학상을 수상한 차재춘 포항공대 교수는 위상수학의 핵심 난제를 정면 돌파한 성과로 주목받았다. 그는 다양체와 매듭 이론 연구에서 4차원 위상 다양체의 핵심 난제인 디스크 임베딩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각각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특히 3차원 다양체의 초한 불변량을 최초로 발견해 수학계에서 60여 년간 풀리지 않았던 밀너의 난제를 해결했다. 디스크 임베딩 이론은 고차원 공간에서의 ‘구멍’과 ‘모양’을 정밀하게 다루는 개념으로, 양자장 이론과 위상양자컴퓨팅 등 차세대 정보처리 이론의 수학적 기반을 강화하는 도구로도 평가된다.
손영우 고등과학원 교수는 응집물리 분야에서 2차원 무아레 물질의 대칭성과 양자 상태를 해석하는 선구적 이론을 구축해 한국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무아레 물질은 2차원 결정이 미세한 비틀림 각도를 가지고 겹쳐지면서 거시적인 패턴이 생기는 층상 물질로, 최근 초전도와 강상관 전자상 등 새로운 양자 현상이 관측되며 차세대 양자소자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손 교수는 비주기성과 준주기성이 전자 구조와 양자상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규명해, 응집물질물리학에서 대칭성, 전자구조, 격자구조 간 깊은 연관성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이 이론적 프레임이 양자컴퓨팅용 재료와 초저전력 전자소자의 전자물성을 ‘설계하기 위한 지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공학 부문에서는 탄소중립과 나노소재 산업화를 잇는 연구가 주목을 받았다. 김상욱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산화그래핀 액정을 기반으로 고성능 그래핀 섬유와 인공 근육을 개발한 공로로 한국공학상을 수상했다. 산화그래핀을 액정 상태로 제어하는 기술을 통해 고품질 그래핀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이용해 기계적 강도와 전기적 성능을 동시에 확보한 신기능성 그래핀 섬유를 구현했다. 특히 그래핀과 액정 물질을 복합한 소재 섬유로 인간 생체 근육 대비 17배 강한 인공 근육을 만들어 웨어러블 로봇, 정밀 의료용 보조장치, 차세대 소프트 액추에이터 등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대폭 높였다. 그래핀 기반 인공 근육은 기존 금속 구동기보다 가볍고 유연하면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어, 의료 재활 로봇과 스마트 의류, 촉각 피드백 장치 등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과도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행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이산화탄소 저장 기술을 활용해 탄소 저감형 건설재료를 개발한 공로로 한국공학상을 받았다. 그는 시멘트 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건설재에 포집·저장하는 공정을 구현해,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구조적 성능을 유지하는 친환경 건설 소재를 제시했다. 더 나아가 이산화탄소 활용·저장 기술을 건설용 3차원 출력 공정에 적용하는 연구를 통해, 대형 구조물도 탄소 저감형 재료로 3D 프린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글로벌 건설업계가 탄소국경조정제도와 ESG 규제 강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 같은 소재·공정 혁신은 국내 건설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지키는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만 40세 미만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한 젊은과학자상은 정예환 한양대 교수, 장진아 포항공대 교수, 신미경 성균관대 교수, 윤성민 성균관대 교수가 받았다. 수상자들에게는 대통령상과 5천만 원의 연구장려금이 주어졌다. 정예환 교수는 물리적 변형에도 주파수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신축성 무선주파수 소자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전자파 특성이 변하지 않는 신축성 RF 소자는 웨어러블 무선통신과 무선전력전송의 성능 한계를 넓히고, 장시간 피부 부착형 생체신호 측정 장치와 차세대 전자피부 기술 실현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장진아 교수는 장기 특이적 바이오잉크와 3차원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융합해 심장, 췌장, 종양 등 주요 장기의 미세 구조와 기능을 정밀 모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장기 특이적 바이오잉크는 각 장기의 세포 구성과 기계적 특성을 반영해 세포 생존성과 기능을 극대화한 잉크로, 이를 정교한 3D 바이오프린팅과 결합해 재생의학용 조직, 질환 모델, 맞춤형 약물반응 평가 플랫폼 개발에 기여했다. 이는 고비용·고위험 임상 이전 단계에서 후보 물질의 효능과 독성을 검증하는 인체 유사 모델을 제공해, 신약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미경 교수는 의료용 고분자를 기반으로 전도성과 조직접착성을 동시에 가진 하이드로젤 소재를 개발했다. 이 하이드로젤은 손상된 근육과 신경 조직의 재생을 돕는 동시에 전기적 신호 전달을 지원해, 폐회로 로봇 재활 치료와 같은 고급 재활 시스템 구현에 활용될 수 있다. 신경 봉합 패치, 신축성 웨어러블 센서 등 의공학 응용까지 확장되면서 재생의학과 디지털 헬스케어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전도성 하이드로젤은 뇌 신호 인터페이스, 심장 재동기화 보조장치 등 고난도 의료기기 소프트웨어와 결합할 경우 새로운 의료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성민 교수는 AI 엔지니어링과 온톨로지 기술을 융합해 도시와 건물 운영을 자율화하는 초지능형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온톨로지는 사물과 개념 간 관계를 구조적으로 표현하는 지식 표현 방식으로, 이를 AI와 결합해 건물 에너지 관리, 시설 유지보수, 안전 모니터링 등을 스스로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윤 교수팀은 이를 실제 도시·건물 환경에 적용·실증한 플랫폼을 구축해 건설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AI 기반 도시 운영 서비스 산업화를 앞당긴 공로를 인정받았다. 스마트시티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데이터·AI 중심의 운영 인프라를 선점할 발판으로 평가된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2025년 하반기 수상자로 선정된 김상현 연세대 교수, 정명화 서강대 교수, 정재웅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한보형 서울대 교수, 최민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이관형 서울대 교수 등 6명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들은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1천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 상은 각 달을 대표하는 연구 성과를 선정해 시의성을 강조하는 포상으로, 기초과학에서 응용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성과가 포함됐다.
수학 분야 우수 연구자를 포상하는 올해의 최석정상에는 세 명의 연구자가 이름을 올렸다. 계승혁 서울대 교수는 양자얽힘의 수학적 구조를 일부 규명해 양자정보이론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박철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통계적 기계학습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계 방법론을 개발했고, 박기현 전 한신대 교수는 온라인 기반 수학 대중화 콘텐츠를 제작해 수학 교육과 대중 인식 개선에 공헌했다. 수학계에서는 이들 연구가 양자컴퓨팅, 데이터 과학,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토대를 넓혔다고 평가하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시상식에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과학기술의 지평을 넓혀온 연구자들의 성취를 강조하며, 반복된 실패를 딛고 세계가 인정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수상자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번 수상 연구들이 AI, 반도체, 바이오헬스, 친환경 인프라 등 국가 전략 산업과 긴밀하게 접점을 형성하고 있어, 향후 정책 지원과 민간 투자가 연계될 경우 파급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수상 성과가 실제 시장과 사회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인재 생태계가 얼마나 탄탄하게 구축될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