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연속수련 24시간 제한”…노조, 과로사 방지엔 역부족 지적
전공의 연속 수련 시간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이고, 휴게와 야간 근로 기준을 근로기준법에 맞추는 전공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전공의 단체는 “과로사 예방에는 여전히 한계가 크다”고 반발하고 있다. 법 개정으로 최소한의 노동 기준선은 정비됐으나, 주당 최대 88시간 근무가 허용되는 구조 자체가 유지돼 전공의 건강권과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특히 수련 인력에 과도한 진료와 행정 업무가 집중되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제도 개선 효과가 현장에서 체감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국회는 최근 본회의를 열고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전공의 연속 수련 시간 상한을 24시간으로 낮추고, 전공의의 휴게와 휴일, 연장 및 야간 근로 조건을 근로기준법 규정에 맞추도록 했다. 전공의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수련과 노동의 경계를 정리해,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근무 환경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회의 개선 시도 자체는 긍정 평가하면서도 “전공의법이 표방한 수련환경 개선 취지를 실제로 실현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고 밝혔다. 노조는 특히 전공의가 법적으로 최장 주 8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점을 문제 삼았다. 과로사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되는 12주 연속 주 평균 60시간 근로 기준과 비교하면, 현행 상한은 생명권을 침해할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노조는 추가 개정을 위한 다섯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전공의 노동권과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반적인 수련 시간 단축, 둘째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 법제화, 셋째 전공의법 위반 병원에 대한 처벌 강화, 넷째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노사 협의기구화와 수련병원 관리감독 강화, 다섯째 수련시간 단축과 환자 수 감축에 따른 대체 인력 배치 의무화 등이다.
노조는 “현재 전공의는 법으로도 과로를 허용받는 유일한 직업”이라며 “2019년 전공의 과로사에 이어 최근 청년 노동자들의 과로사 사례가 잇따르는 현실을 고려하면, 단순 시간 조정 수준을 넘어서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속 24시간 수련 제한만으로는 야간 집중 근무와 불규칙 스케줄로 인한 만성 피로를 해소하기 어렵다”며 야간 근무 횟수 제한과 연속 야간 근무 금지 등 보다 구체적인 인력 운영 기준 도입을 주문했다.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에 대한 법제화 요구도 거세다. 노조는 “전공의에게 과도한 환자와 업무가 배정되면서 교육과 수련의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진료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련병원 상당수에서 전공의는 입원환자 관리, 응급실 진료, 병동 행정 등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떠안고 있어, 야간과 주말에 발생하는 의료 공백을 전공의 희생으로 메우는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전공의당 환자 수에 상한선을 두는 방식이 도입될 경우, 환자당 진료 집중도가 높아져 의료 질 관리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법 위반에 대한 제재 수위 격차도 쟁점이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경우 사용자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지만 전공의법은 위반해도 5백만 원 이하 과태료에 그친다. 노조는 “실제 현장에서는 여러 건 위반을 한 번에 묶어 연 1회 정도 과태료를 부과해 사실상 경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전공의법을 실질적인 노동 기준법으로 기능하게 만들려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수준으로 처벌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역할과 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수련병원 평가 업무를 병원협회가 위탁받아 수행하는 구조에 대해 노조는 “평가받아야 할 주체가 되레 스스로를 평가하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위원회를 노사 협의기구 성격으로 개편해 전공의 대표성이 보장되도록 하고, 노동 감독 기능을 강화해 수련병원 전반의 인력 운영과 근무 환경을 상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과 환자 수 감축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체 인력 확보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노조는 “그동안 전공의들은 ‘내가 빠지면 동료가 더 괴로워진다’는 압박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 왔다”며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와 같은 전담 인력 확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수련 인력 의존도를 줄이고 전공의가 교육과 수련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병원 진료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법 개정과 추가 개정 요구는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 인공지능, 병원 정보 시스템 확산으로 진료 패턴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과도 맞물린다. 전공의들이 과도한 야간 당직과 행정 업무를 떠안고 있을 경우, 새로운 의료 IT 시스템 교육과 활용에 투입할 여력이 부족해 디지털 전환 속도도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 노동 구조 개선이 곧 병원 전산화와 AI 기반 진료 지원 시스템의 실질적 도입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노조는 “전공의법 보완 요구는 전공의 권익 보호를 넘어, 환자 안전과 의료체계 개선과 직결된 문제”라며 “정부와 국회가 수련환경 개선과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하나의 패키지로 보고 신속한 재개정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료계에서는 향후 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전공의 단체와 병원, 정부 간 이해 조정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따라 국내 수련병원 시스템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제도의 실효성과 산업 전반의 인력 구조 재편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