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체적 요건 없는 계엄"…법원, 노상원 징역 2년 선고하며 비상계엄 위법성 첫 인정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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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 속에서 또다시 격돌했다. 법원이 국군정보사령부 출신 인사의 비위 사건을 판단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계엄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처음 내렸기 때문이다. 내란 혐의 재판을 앞두고 형성될 법적·정치적 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 이현복 부장판사는 15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2천490만원을 선고했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 내란 관련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기소한 사건들 가운데 첫 선고다.

앞서 검찰은 노 전 사령관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고, 진급 청탁 대가로 받았다고 본 2천490만원의 추징과 함께 압수된 백화점 상품권의 몰수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날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며 검찰 측 공소 제기를 전면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의 행위가 12·3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의 범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의 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2024년 8월경부터 2024년 12월 3일까지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이 충족되거나 예상할 만한 어떠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의 범행은 실체적인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계엄이 선포 단계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동력 중 하나"라며 "단순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나 알선수재 범행의 죄책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라는 결과를 야기해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사태를 전제로 한 조직 구성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현역 국방부 장관 등 군 인사권자의 개인적 관계를 내세워 절박한 상태였던 후배 군인들 인사에 관여하고, 계엄 준비를 주도하면서 인사에 대해 도움을 받던 후배 군인들까지 주요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했다.

 

쟁점이 된 국군정보사령부 요원 명단 유출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 측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간 정보사 요원 인적 정보를 넘겨받은 이유가 대량 탈북 사태를 대비한 수사 인력 확보 차원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2수사단 구성은 특정 시점에 계엄 사태를 염두에 두고 마련됐다"며 "노 사령관의 대량 탈북 징후를 대비한 수사단 구성 주장은 형식적 명목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한다는 명분으로 설치를 추진한 제2수사단 구성을 위해 정보사 요원 인적 정보 등 군사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로 6월 재판에 넘겨졌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은 그가 사실상 계엄 상황에서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비선 수사조직을 꾸리는 과정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봤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8∼9월 진급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김봉규 전 국군정보사령부 중앙신문단장에게서 현금과 백화점 상품권을, 구삼회 당시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서 현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수수 금액은 현금 2천만원과 600만원 상당의 상품권 등 총 2천600만원이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 시스템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정보사 요원 명단이 군 외부로 추가 유출되지 않은 점, 알선이 실제 진급으로 현실화되지 않은 점 등은 양형에서 참작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라는 중대한 결과와 연계된 점을 고려하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노 전 사령관은 민간인 신분이던 시기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36년간 이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비선 역할을 하며 12·3 비상계엄 모의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계엄 관련 내란 사건에서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도 기소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재판을 받고 있다.

 

내란 재판의 본류로 평가되는 이 사건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과 병합돼 진행 중이다. 법원은 내년 1월 중순까지 심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날 판결에서 비상계엄 위법성이 공식 언급되면서 향후 본 재판에서의 사실 인정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법적 쟁점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법원의 판단을 두고 양측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이 재판부 판단으로 확인됐다며 윤 전 대통령과 당시 군 지휘부 책임을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아직 내란 사건 본안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만큼 이번 판결의 의미를 확대 해석할 수 없다며 방어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은 이날 판결을 계엄 선포의 불법성을 뒷받침하는 판단으로 보고 향후 내란 사건 공소 유지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내란 사건 재판부가 노 전 사령관 사건 판결의 판단 요소를 어디까지 원용할지에 따라 윤 전 대통령과 전·현직 군 지휘부의 법적 책임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이날 법원이 노 전 사령관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내란 사건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내년 초 계엄 선포 과정 전반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적 책임을 본격적으로 따질 예정이다. 정치권은 계엄 사태 책임 공방을 두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며, 국회는 내란 관련 재판 경과를 주시하면서 향후 군 통수 구조와 계엄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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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윤석열전대통령#조은석내란특별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