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체면 말이 아냐"…정동영, DMZ 출입통제에 유엔사 겨냥 비판
한반도 안보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출입 문제를 두고 통일부와 유엔군사령부가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DMZ 출입 허가권을 둘러싼 주권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며 외교·안보 라인 전체로 파장이 번지는 모양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3일 국회에서 열린 DMZ의 평화적 이용 및 지원 법률안 입법공청회 축사에서 유엔군사령부의 DMZ 출입 통제 관행을 강도 높게 성토했다. 정 장관은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 출입까지 제약받은 사례를 잇달아 언급하며 주권 침해 논란을 정면으로 꺼내 들었다.

정 장관은 축사에서 "주권 국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우리의 영토 주권을 마땅히 행사해야 할 그 지역의 출입조차 통제당하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그는 발언 수위를 한층 더 높여 "얼마 전에도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에 가는 걸 불허당했다"고 전했다.
김현종 1차장의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 출입이 막힌 구체 경위나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DMZ 출입 허가권을 행사하는 유엔군사령부와의 소통 과정에서 발생한 사안으로 알려지며, 유엔사가 군사·비군사 목적을 가리지 않고 포괄적 허가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 장관은 비슷한 사례도 추가로 들었다. 그는 "몇 년 전에는 현직 통일부 장관이 대성동 마을에 가는 걸 불허당했다"며 "이런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문제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2019년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DMZ 내 대성동 마을을 기자단과 함께 방문하려다, 유엔사가 기자단 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장관 방문도 무산됐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의 관할권을 근거로 DMZ 출입 시 목적과 상관없이 사전 허가를 받도록 요구해 왔다. 정전협정 체제에서 안전과 군사적 안정 유지 책임을 앞세워 DMZ 내 모든 인원·장비 이동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일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같은 관행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정전협정 서문에 이 협정이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을 들어, 비군사적 사업에까지 유엔사가 허가권을 행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정 장관도 이날 공청회에서 DMZ를 둘러싼 비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강조하며 유엔사의 통제 축소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그는 "생태, 환경, 문화, 역사 등 비군사적인,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사업들이 너무 많이 있다"고 말하고 "반드시 올해 안에 법이 상정되고 처리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마지않는다"고 했다. DMZ 평화적 이용 법안을 통해 국내 법적 근거를 정비하고, 유엔사와 협의 구도를 재정립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대통령실은 유엔사와의 마찰이 외교·안보 현안으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통령실 측은 김현종 1차장의 DMZ 출입이 불허된 구체 사유에 대해 "내용 확인이 제한된다"며 말을 아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핵심 참모의 DMZ 출입이 제지된 사안인 만큼 파급력이 적지 않지만, 한미 동맹과 유엔사 체제의 민감성을 감안해 신중 행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장관의 강경한 문제 제기로 국회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여야는 DMZ를 생태·평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체로 공감해 왔으나, 유엔사와의 관계 설정, 정전협정 해석 범위 등에선 이견이 존재해 왔다. 다만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유엔사와의 협의 구조와 역할 조정이 불가피한 만큼,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사이 내부 조율도 향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유엔사는 정 장관의 이날 발언과 DMZ 출입 불허 사례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국방부 역시 정전협정 체제 유지와 한미 연합방위 체계를 고려해 유엔사 입장과 엇갈리지 않는 선에서 대응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DMZ 평화적 이용 법률안을 둘러싼 공청회 의견을 토대로 조만간 상임위원회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DMZ 출입 통제 문제를 두고 유엔사와의 협의에 나설 경우, 정전협정 체제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전반에 미묘한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