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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가 만든 풍경”…여수에서 만나는 흐린 날의 깊은 여운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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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흐린 하늘 아래 여수를 찾는 여행자가 늘었다. 예전엔 맑은 날만 골라 떠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흐림도 여수의 일상이자 풍경이 된다. 하늘빛과 바다색이 섞여 서로를 닮아가고, 그 사이에서 나만의 시간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여수 해상케이블카에 오르면 도시와 바다가 한눈에 담긴다. 케이블카는 돌산읍 우두리와 자산공원을 잇는 국내 유일의 해상 노선으로, 다도해의 푸르름과 여수 시가지의 생기, 그리고 돌산대교의 위용까지 모두 내려다볼 수 있다. SNS에는 바다 위를 건너는 기분, 유리 바닥에 아찔함을 느낀 후 사진으로 남기는 인증이 일상이 됐다. 저녁이 되면 케이블카 아래로 밤바다의 은은한 조명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공연장 같은 야경이 펼쳐진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여수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여수

이런 변화는 여행 선호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한 숙박 플랫폼은 '가장 방문하고 싶은 가을 바다 도시'로 여수를 꼽은 사람이 늘었다고 밝혔다. 빼어난 자연경관은 물론, 도심 속 미디어아트 공간 아르떼뮤지엄 여수와 같이 새로운 예술적 요소까지 더해진 것이 주요 이유다. 아르떼뮤지엄에서는 '오션'이라는 주제로 여수의 바다를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1,400평 규모 전시관에서 펼쳐지는 영상과 소리, 차분한 향기는 도심 속에서도 바닷속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준다고 관람객들은 표현했다.

 

일출 명소 향일암에서도 변화는 느껴진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운 절집은 여전히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조용히 자신을 만나는 이들에게 인기다. 새벽 어스름에 절벽 위로 올라 바다 위로 솟는 태양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 그 짧은 순간이 다시 한 주를 살아낼 힘이 돼준다. "요즘은 사람들보다 파도 소리가 더 잘 들려요"라며 고요한 기운에 마음을 놓는 여행객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경험의 주도권'이라 읽는다. 꼭 햇살이 쨍하지 않아도, 유명한 관광지만 둘러보지 않아도, 자신만의 감각으로 도시를 걸으며 하루를 완성하는 선택이 많아진 것이다. "여수처럼 자연과 도시, 예술과 전통이 공존하는 곳에서는 자신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쓸 수 있다"는 게 여행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흐린 여수가 더 좋았다", "비 내리는 바다와 케이블카 야경 덕분에 잊지 못할 하루였어요", "향일암에서 맞은 첫 태양의 기운에 눈물이 났다"는 글들이 이어진다. 그만큼 여수는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스며드는 새로운 일상 장소가 되고 있다.

 

결국 여수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잠시 멈춰 나를 바라보는 시간으로 남는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신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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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여수해상케이블카#향일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