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완전표시, 콩·옥수수부터…식약처, 표시제 전환 신호탄
유전자변형식품 완전표시제가 국내 식품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첫 적용 대상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고 가공식품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대두와 옥수수를 우선 논의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유통·가공·외식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주목된다. DNA와 단백질이 제조 과정에서 사라지는 고도 정제식품까지 표시 대상에 포함하는 법적 기반도 마련돼, GMO 관리 패러다임이 단순 안전성 평가에서 소비자 정보 제공 중심 체계로 이동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세종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식약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GMO 완전표시제 도입과 관련해 수입·유통 비중이 큰 대두와 옥수수를 중심으로 표시 품목 지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정부 들어 GMO 표시 강화 방침이 재확인된 가운데, 대통령이 도입 현황을 직접 질의하면서 제도 설계 속도도 빨라지는 모양새다.

이번 논의의 법적 근거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개정안은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했지만 제조·정제 과정에서 DNA와 단백질이 남지 않아 기존 제도에서는 표시 의무가 없던 식품도, 식약처장이 지정하면 GMO 표시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전제로 처리하도록 해, 과학적 검토와 이해관계 조정 절차를 제도권에 편입했다.
현재 식약처가 식품용으로 안전성 평가를 마치고 허가한 GMO는 대두, 옥수수, 카놀라, 면화, 알팔파, 사탕수수 등 6종이다. 이들 작물은 기름, 전분, 당류, 단백질 분리물과 같은 1차 가공 원료로 재가공되면서 소스, 음료, 빵, 과자, 즉석식품, 외식 소스류 등 다양한 제품에 침투해 있다. 특히 대두와 옥수수는 국내 수입·유통에서 비중이 압도적인 만큼, 관련 1차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완전표시제를 설계하겠다는 것이 식약처의 구상이다.
유전자변형 기술 자체에 대한 안전성 판단과 별개로, 완전표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과 알 권리를 제도 설계의 중심에 놓는 접근이다. GMO는 특정 유전자를 도입해 병해충 저항성, 제초제 내성, 수확량 증대 등을 확보한 작물로, 과학적 평가를 거친 품목은 현재까지 안전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규제당국의 기본 입장이다. 오 처장도 국내에서 식용으로 허가된 6종은 모두 식약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한 품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표시 강화에 나서는 배경에는 장기 섭취에 대한 불안, 유럽 일부 국가의 엄격한 표시 관행, 친환경·비GMO 프리미엄 시장 확대 등 복합적인 소비자 요구가 자리한다.
식약처는 비허가 GMO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는 기술적 수단으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이른바 NGS를 활용하고 있다. NGS는 방대한 DNA 서열을 동시에 읽어내는 기술로, 특정 유전자 변형 패턴을 빠르게 검출할 수 있어, 수입 곡물에서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 조합이 섞여 있는지를 식별하는 데 쓰인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유전자 조작된 고구마 같은 새로운 작물이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자, 식약처는 수입 단계에서 엄격한 검사 체계를 통해 비허가 GMO를 걸러내고 있으며, NGS 분석을 통해 의심 시 추가 판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완전표시제가 본격 시행되면 식품 산업 전반에는 레시피 재구성, 원료 조달 전략 수정, 생산 라인 분리 등 연쇄적인 조정 압력이 가해질 전망이다. 대두유, 옥수수유, 전분당, 액상과당 등은 가공식품 원가 구조에서 비중이 크고, GMO 여부 표시에 따라 소비자 선택이 갈릴 수 있어, 기업들은 비GMO 원료 사용 확대, 혼합 비율 조정, 별도 라벨링 전략 등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특히 외식·급식 분야에서는 동일 메뉴라도 GMO, 비GMO 두 가지 라인으로 구분해 조달·표시 체계를 운영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해외 주요국과의 규제 정합성도 관건이다. 유럽연합은 GMO 원료 사용 시 비교적 강한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DNA가 남지 않는 고도 정제식품에 대한 적용 범위를 두고도 추가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은 안전성 평가와 사전허가 중심의 관리에 더 방점을 둔 구조지만, 소비자 요구를 반영해 GMO 성분 표기를 QR코드 등 간접 방식으로 안내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한국이 DNA·단백질이 검출되지 않는 식품까지 표시 대상을 넓히면, 수입업체와 다국적 식품기업은 한국향 포장 규격과 표시 정책을 별도로 설계해야 하고, 통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간 협의도 필요해질 수 있다.
식품업계의 우려는 표시 범위와 집행 방식에 집중돼 있다. 업계는 검출이 불가능한 식품까지 일괄적으로 표시를 강제하면, 실제 안전성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행정집행 부담과 국제 통상 분쟁 리스크를 동시에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원료가 글로벌 곡물 메이저를 통해 믹스되는 구조에서, 공급 단계별 트레이서빌리티를 완전하게 확보하지 못하면 중소기업일수록 규제 대응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구체적인 시행 시점과 세부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시행령과 고시로 표시 대상 품목과 예외 규정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단체, 식품기업, 수입업계, 농가 등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만큼, 표시 기준 설정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 산업 영향, 소비자 체감 사이의 균형점 찾기가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밀 유전자 분석 기술을 활용한 수입단계 관리 강화와 GMO 완전표시제 도입 논의가 맞물리면서, 한국의 GMO 관리 체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산업계는 제도가 실제 시장에 어떤 형태로 안착할지, 그리고 표시 강화가 원료 수급 구조와 소비 트렌드를 어디까지 바꿀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