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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의료제품 불법유통 적발 900건 넘어…식약처, 온라인 단속 강화 예고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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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을 맞아 감기 등 호흡기질환 예방을 위한 의료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불법 유통과 부당 광고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2주간 온라인 점검을 벌인 결과 감기약, 마스크, 의료기기, 화장품 등을 둘러싼 불법유통 및 허위·과대 광고 사례만 900건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소비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규제 당국이 플랫폼 사업자, 시민감시단과 손잡고 유통 질서 확립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온라인 의료제품 시장의 신뢰도와 성장 경로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1월 24일 겨울철 수요가 급증하는 의료제품을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온라인 점검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6일 동안 감기약, 해열진통제, 비염약, 점안액 등 의약품과 마스크, 외용소독제, 콘택트렌즈관리용품, 비염치료기, 콧물흡인기, 코세정기, 화장품 등을 집중 모니터링한 결과 총 904건의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식약처는 적발 사례를 업무협약을 맺은 주요 온라인플랫폼사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통보해 접속 차단을 요청했고, 반복 위반 업체에 대해서는 관할 행정기관 점검을 의뢰했다.

이번 점검에는 대학생과 시민으로 구성된 식약처 온라인 시민감시단이 참여해 합동 점검 체계를 구성했다. 감시단이 온라인 커뮤니티, 쇼핑몰, 오픈마켓에서 의심 사례를 탐지하면, 식약처가 법령 위반 여부를 검토해 행정조치를 연계하는 방식이다. 규제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크라우드소싱 형태의 감시 체계를 활용해 모니터링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품목별로 보면 온라인 불법 판매가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등 의약품이었다. 일반 쇼핑몰, 카페, 블로그, 오픈마켓 등을 통해 처방전 없이 의약품을 판매하는 광고가 대거 확인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감기약, 해열진통제, 비염약, 점안액 등 의약품 불법 판매 광고는 총 342건이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일반 쇼핑몰이 210건, 카페와 블로그가 128건, 오픈마켓이 4건이었다. 플랫폼 구조상 상품 등록과 노출이 용이한 일반 쇼핑몰과 커뮤니티형 채널이 주요 경로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마스크, 외용소독제, 콘택트렌즈관리용품 등 의약외품을 대상으로 한 불법유통과 부당광고도 적지 않았다. 해당 품목에 대한 온라인 광고를 점검한 결과 거짓·과장 광고가 83건으로 전체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의약외품의 불법 해외 구매대행 광고 19건, 소비자를 의료용 제품으로 오인하게 하는 광고 12건 등이 더해져 총 114건이 적발됐다. 특히 KF 인증, 살균 효과 등 소비자 신뢰도가 높은 표현을 앞세워 실제 허가 범위를 넘어선 효능을 내세우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호흡기 질환 완화를 표방하는 의료기기에 대한 해외직구 광고도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비염치료기, 콧물흡인기, 코세정기 등은 의료기기법상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돼야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개인 직구를 내세운 광고가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식약처는 비염 관련 의료기기와 코 세정 관련 제품의 불법 해외직구 광고가 249건, 의료기기와 유사하게 오인될 우려가 있는 광고가 46건 등 총 295건을 적발했다. 공식 허가를 받지 않은 제품이 의료기기로 포장돼 유통될 경우, 소비자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관리 필요성이 강조된다.

 

겉으로는 일반 화장품이지만 비염, 코막힘 완화 등 의학적 효능을 내세운 온라인 광고도 상당수였다. 화장품은 법적으로 질병의 치료나 예방 효능을 표시할 수 없는데, 일부 판매자는 화장품을 사실상 의약품처럼 포장해 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식약처 점검 결과 화장품 광고 153건이 적발됐는데, 이 중 143건은 의약품 효능·효과가 있는 것처럼 표방한 사례였고, 10건은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였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온라인 불법유통과 부당광고는 검색 최적화, 추천 알고리즘, 소셜미디어 공유 구조를 활용해 빠르게 확산되는 특징을 가진다. 제품 정보가 포털 검색과 SNS 피드를 통해 재유포되면서 단기간에 대규모 노출이 가능해진 것도 규제 난이도를 높이는 변수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체 AI 기반 콘텐츠 모니터링, 키워드 필터링, 신고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고 있지만, 허위·과대 표현이 주기적으로 변주되는 탓에 완전한 차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 측면에서 온라인 의료제품 유통은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품질 관리와 책임 소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감기약과 해열진통제처럼 사용 빈도가 높은 제품은 사용자가 스스로 질환을 진단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 오남용 위험이 크다. 함량 미달, 위조 의약품, 부작용 유발 불순물이 혼입된 제품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식약처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을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온라인 의약품 유통 관리는 규제 당국의 공통 과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공인 인터넷 약국 제도, 처방전 전자 검증 시스템 등을 도입해 합법 유통 채널을 구분하고, 허가받지 않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집중 단속하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구체적 기술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데이터 기반 탐지와 시민 신고, 플랫폼 책임 강화를 결합하는 구조로 진화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시민감시단, 플랫폼 협약, 심의기구 연계를 결합한 이번 점검 모델이 향후 상시 제도로 정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규제와 관련해 식약처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의약품의 경우 제조·유통 경로가 불투명하고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증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 복약지도를 거쳐 사용해야 하며, 비처방 감기약이라 하더라도 개개인 기저질환, 복용 중인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한 의약외품과 의료기기는 국내 인허가를 거치지 않아 품질과 안전성 검증이 되지 않았을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소비자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식약처는 구매 전에 공적 정보를 확인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의약외품, 의료기기, 화장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할 경우 식약처 허가와 심사 정보를 확인해야 하며, 의약품안전나라와 의료기기안심책방 누리집에서 제품 정보를 조회한 뒤 구매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산품이 의약외품이나 의료기기처럼 효능·효과를 내세우는 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강조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계 입장에서는 이번 단속 강화가 단기적으로는 마케팅 규제를 촉발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신뢰도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합법적으로 인허가를 받은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 해외직구, 허위 광고 제품과의 가격 경쟁, 노출 경쟁에서 불리한 구조가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의료제품 광고 심사 기준을 정교화하고,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하는 과제로 이어질 전망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특정 시기 소비자 관심이 집중되는 의료제품을 대상으로 선제적 점검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 유통 환경에서 불법유통과 부당광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하느냐에 따라 소비자 피해 규모와 산업 신뢰도가 갈릴 수 있는 만큼, 규제 당국과 플랫폼, 기업, 소비자 간 역할 분담과 협력이 중요해지는 국면이다. 산업계는 이번 단속 강화 기조가 실제로 건강한 시장 질서로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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