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내란척결 대 정권심판”…이재명 정부 1년 만의 지방선거, 여야 명운 건 한판 승부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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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척결을 내건 여당과 정권 심판을 외치는 제1야당이 맞붙었다. 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이라는 격랑 이후 처음 치러지는 전국단위 선거를 두고 여야 대립이 거세지며 향후 정국을 가를 한판 승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내년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전국 선거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성과에 대한 중간 심사이자, 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의 행보에 대한 여론의 판단을 가늠하는 계기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현재 국회 다수 의석과 행정부를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지방 권력까지 싹쓸이하느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궤멸 위기에 몰린 국민의힘이 지방선거 승리로 반전의 발판을 마련하느냐를 둘러싸고 정국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지방 권력 재편 결과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과 여야 정당의 향후 정치적 운명이 크게 요동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재작년 총선 압승에 이어 올해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정권을 출범시킨 데 이어, 지방권력까지 장악해 입법·행정·지방 권력을 모두 쥐겠다는 구상이다. 당 지도부는 내란 연루 세력 척결 기조를 유지하며 선거까지 ‘내란 청산’ 이슈를 전면에 내세울 태세다.  

 

특히 민주당은 최근 ‘잔존하는 내란 세력의 완전 척결’을 강조하며 사법부로까지 공세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여권 인사와 계엄 관련 인물들에 대한 책임 규명 요구를 이어가며 내년 선거에서도 내란 척결 프레임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인해 헌정사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은 뒤 보수 진영 전체가 위기 국면에 놓였다고 보고 있다. 당 지도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정권 심판’과 ‘보수 재건’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을 겨냥해 ‘입법폭주 견제론’을 앞세우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내란 관련 정치 공세에만 몰두하면서 민생을 외면했다는 주장을 강화할 예정이다. 생활 물가와 고용, 부동산 등 민생 의제를 전면에 내걸고, 지방선거를 통해 집권 세력에 대한 민심 이반을 조직화하겠다는 전략이 감지된다.  

 

유용화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는 통화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내란 세력 척결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이재명 정권 및 민주당 심판 중 어느 프레임이 더 설득력을 얻는지가 투표 결과로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여야 모두 심판론을 앞세우면서 프레임 대결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역대 사례를 보면 대선 직후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통상 ‘허니문’ 효과가 작동해 새 정부 여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 치러진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서울·부산을 포함해 14곳을 차지하는 기록적인 승리를 거뒀다.  

 

2022년 6·1 지방선거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지며 국민의힘이 서울·부산을 포함해 17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을 확보했다. 비교적 짧은 시차의 대선 효과가 그대로 지방선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가 과거 공식처럼 여당의 일방적 우세로 귀결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2018년에는 야당이 지방권력에서 거의 전멸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국민의힘 소속 강력한 현역 광역단체장이 있는 등 상황이 다르다”며 “2018년과 같은 구도가 재현되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향후 6개월 동안 선거 판세를 뒤흔들 변수도 적지 않다. 여야 모두 공천 룰 확정에 이제 막 들어선 단계로, 시도지사와 기초단체장 후보군도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공천 방식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후보 단일화 여부가 선거 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확대하는 공천안 추진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 ‘당심 쏠림’과 공정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최종 룰에 따라 각 시도지사 후보 라인업이 달라질 수 있어 당 지도부의 선택에 정치권 시선이 집중돼 있다.  

 

선거의 향배를 좌우할 중도층과 부동층의 움직임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한국갤럽은 최근 여론 흐름에 대해 “8월 중순 이후 여당 지지율 40% 내외, 국민의힘 20%대 중반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치상 민주당 우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투표장에 누가 나올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용화 교수는 “중도층 민심은 경제성장률, 코스피 등 민생 경제 지표를 중심으로 현 정부 성과를 평가할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성장과 분배, 부동산 시장 안정에서 얼마나 가시적 성과를 내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계엄 사태 관련 재판 일정도 핵심 변수로 꼽힌다. 내년 초부터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1심 선고가 차례로 예정돼 있고, 여권 일각에서는 내란·김건희 관련 의혹·순직 해병 사건 등 이른바 3대 특검 수사 보완을 위한 추가 특검 도입 필요성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추진을 언급하고 있다. 관련 수사와 재판 경과가 계엄 사태에 대한 여론 판단을 재편하면서 선거 정국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흐름과 국민의힘의 혁신 성과도 관전 포인트다. 여당은 현 지지율 우위를 공고히 하면서 지방선거를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목표고, 국민의힘은 조직 쇄신과 인적 교체를 통해 비호감도를 낮추고 중도층을 흡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야 간 연대·통합 구도 형성 여부 역시 주목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선거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 나설지,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보수 재편을 위한 전격적인 공조에 나설지도 향후 판세를 가르는 요인으로 꼽힌다. 각 진영은 연대 카드가 자칫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며 계산을 복잡하게 이어가는 분위기다.  

 

최대 승부처로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산과 충청권이 지목된다. 특히 서울은 민주당 탈환 여부와 국민의힘 수성 여부에 따라 전체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상징적 지역으로 꼽힌다. 수도권 광역단체장 판세가 한쪽으로 기울 경우 전국 여론에도 연쇄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부산을 포함한 영남권 민심 변화 여부와, 그동안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충청권 중원 표심의 향배도 중요한 관전 요소다. 민주당은 영남에서의 교두보 확보와 충청 확장을 노리고, 국민의힘은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재정비하면서 수도권 방어에 주력하는 전략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성민 대표는 “현재는 계엄 재판, 경제 지표, 여야 공천과 연대 구도 등 변수가 너무 많다”며 “내년 2∼3월 시점에 주요 후보군이 확정되고 경선 구도가 정리돼야 지방선거 판세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얼마나 갈등을 최소화하느냐도 승부 변수라고 덧붙였다.  

 

차기 대선 구도와 맞물린 여야 잠룡들의 운명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크게 갈릴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각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만큼, 내년 지방선거 성적표가 정치적 입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청래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전당대회에 나서 대표 연임과 대선 가도 굳히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 역시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2년 임기를 온전히 채우며 보수 진영의 차기 구심점으로 부상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당권 유지와 리더십 강화가 가능하지만, 패배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과 조기 퇴진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 후보군 판도 역시 크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광역단체장들은 차기 대선 잠룡으로 부상할 자격을 얻게 된다. 주요 광역단체장 자리 확보 여부에 따라 여야 차기 주자군의 위상도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지방선거가 곧 다음 대선 출발선이 되는 만큼 인물 경쟁력을 둘러싼 물밑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은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계엄 재판과 경제 지표, 공천 갈등과 연대 구도 등 복합 변수 속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갈 전망이다. 국회는 정기국회와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계엄 관련 특검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논의를 병행하고, 각 당 지도부는 공천 룰 확정과 경선 일정 조율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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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정부#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