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디바이스 AI 바디캠"…KT, 경찰에 공급해 치안 신뢰도 높인다
경찰용 바디캠이 현장 치안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단순 영상 기록 장비를 넘어, AI와 보안 인프라를 결합한 디지털 증거 플랫폼으로 고도화되면서다. KT가 공급한 차세대 바디캠은 출동부터 상황 종료까지 모든 과정을 연속적으로 기록해 현장 판단의 객관성을 높이고, 분쟁 발생 시 증거 신뢰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온디바이스 AI까지 결합될 경우 치안·재난 대응 골든타임 확보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자동차정비소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현장에서도 바디캠은 핵심 역할을 했다. 3층 건물 1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확산하자, 관할 지구대 무전기에는 출동과 동시에 바디캠 가동을 지시하는 지령이 내려왔다. 월드컵북로 일대 주요 교차로가 전면 통제되고, 마포구청이 재난문자를 발송할 만큼 긴박한 상황에서 바디캠 영상은 초기 상황 인지, 교통 통제, 주민 대피, 소방과의 공조 등 대응 전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소방 당국이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인원 216명, 장비 55대를 투입해 약 4시간 만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는 동안 축적된 영상 데이터는 사후 분석과 절차 적정성 판단의 근거로 쓰이게 된다.

KT가 7월부터 공급한 이번 경찰 바디캠은 2024년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으로 바디캠이 정식 경찰 장비로 분류된 이후 추진된 첫 대규모 도입 사업의 결과물이다. 경찰청이 발주한 약 195억 규모의 사업에서 KT는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 약 2000곳에 1만4000여 대의 기기를 공급했다. 사업 기간은 5년으로, 장비 공급뿐 아니라 운영·보안·데이터 관리 체계를 포함한 인프라 구축 성격까지 갖는다.
이번 도입 전까지 바디캠은 해외에선 이미 경찰 필수 장비였지만, 국내에선 개인이 사비로 구매해 사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촬영 영상도 개인 단말기에 흩어져 저장되면서 위변조 우려와 보안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KT 바디캠 도입으로 경찰청 차원의 통합 장비 체계와 중앙 집중형 보안 관리 인프라가 처음으로 마련된 셈이다.
현재 바디캠은 지역경찰, 교통경찰, 기동순찰대를 중심으로 순차 보급 중이다. 현장 근무자는 원칙적으로 착용이 의무화돼 있으며, 촬영은 직무 수행에 필요한 상황에 한해 이뤄진다. 사생활 침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동시에 체포나 물리력 사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극 촬영을 권고해 공무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기술 구현 방식에서도 디지털 증거 장비로서의 요건이 반영됐다. 국내 경찰은 매년 약 700만 건의 112 신고와 월 1500만 건 수준의 치안 데이터를 처리한다. 바디캠 영상은 출동, 초기 상황 파악, 제압, 증거 확보, 피의자 인계 등 단계별로 지속 기록된다. 촬영된 영상은 물리력 행사, 주취자 보호, 공무집행방해 같은 상황별로 자동 분류돼 저장되며, 현장 경찰관은 12시간 동안 재생만 가능하고 편집이나 삭제는 할 수 없다. 이후 데이터는 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시스템에 업로드돼 중앙 서버에서 관리된다. 이 방식으로 위·변조 가능성을 낮추고, 법정 제출 시 증거능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해외 연구에서도 바디캠의 치안 효과는 수치로 확인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험에서는 바디캠 도입 후 시민 민원이 88퍼센트 감소하고, 경찰력 사용이 60퍼센트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 연구에서도 바디캠을 착용한 팀에 제기된 억압적 행위 관련 민원이 비착용 팀보다 2.5배 적었다. 영상 기록이 공무집행 과정의 실시간 감시 장치이자, 경찰과 시민 간 분쟁 시 상호 방어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KT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서버 의존도를 줄이는 온디바이스 AI 바디캠 개발도 추진 중이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 대신 기기 안에 탑재된 연산 칩으로 인공지능 모델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KT는 국산 신경망처리장치 NPU를 적용해 바디캠 자체에서 위험 상황 탐지, 이상 행동 인지, 인물 식별 같은 기능을 즉시 수행하고, 동시에 영상 암호화와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지연 없이 현장에서 판단을 돕는 경고 신호를 제공할 수 있어 재난·범죄 상황에서 골든타임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다.
서버 기반 분석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유리하지만, 통신 환경에 따라 지연이 발생할 수 있고, 민감 정보의 외부 전송 과정에서 보안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데이터를 장비 내부에서 1차 가공해 전송량을 줄이고, 필수 정보만 암호화해 중앙 시스템으로 보내는 구조로 설계할 수 있다. KT가 국산 NPU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고성능 연산과 보안성을 결합한 국산 AI 하드웨어 생태계 확산과 맞물려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AI 바디캠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 일부 경찰청은 얼굴 인식, 번호판 인식, 자동 상황 태깅 기능을 결합한 장비를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이다. 다만 유럽연합의 일반 개인정보보호법과 AI법 논의처럼, 생체정보 처리와 공공 감시 강화 논란을 둘러싼 규제 공방도 커지고 있다. 한국 역시 바디캠 영상에 포함된 얼굴, 음성 등 민감 정보를 어떻게 익명화하고, 어느 수준까지 실시간 분석을 허용할지에 대한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경찰청은 바디캠을 정식 장비로 분류하면서 촬영 범위와 열람 권한, 보관 기간을 엄격히 규정했다. 식별 가능한 개인 정보는 수사 목적과 법령상 필요한 범위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고, 무단 열람이나 유출 적발 시 징계 및 형사 책임을 묻는 구조다. 영상 기반 AI 분석을 확대할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과학기술·법무 부처 간 추가 가이드라인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유용규 KT 공공사업본부장은 국민 안전을 위한 ICT 기술은 위기 상황에서 진가가 드러난다며 경찰과 소방 등 공공기관과 협력해 위기 대응 솔루션을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KT는 올해 경찰청에 바디캠 외에도 순찰차캠, 112 시스템 연계 모바일 태블릿, 폴리폰, KICS 패드 등 약 4만 대 규모의 단말과 서비스를 공급해 AI 기반 치안 인프라 구축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온디바이스 AI 바디캠이 실제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하느냐에 따라 치안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 속도와 방향이 좌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와 공공 감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제도 설계가 새로운 성장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