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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형까지 보는 고지혈증 관리”…병원, 디지털 헬스 접목 나선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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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분석과 웨어러블을 앞세운 디지털 헬스 기술이 고지혈증 관리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동일한 운동·식단을 유지해도 사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제각각인 이유를, 개인의 유전형과 장기간 축적된 생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가속되는 모습이다. 병원과 스타트업은 심혈관 질환의 최대 위험 인자인 이상지질혈증을 조기에 포착하고 맞춤형으로 관리하는 플랫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심혈관 예방의 ‘게임 체인저’ 후보로 본다.

 

최근 근력운동과 크로스핏 등 고강도 운동을 꾸준히 해온 연예인이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으면서, “운동을 많이 하는데도 왜 수치가 안 좋아지나”라는 대중의 의문이 커졌다. 의료계에 따르면 고지혈증은 혈액 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농도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높아지거나, 반대로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이 낮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눈에 띄는 증상이 거의 없어 건강검진 외에는 발견이 어렵고,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조용한 위험’이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고지혈증 관리는 식단 조절과 유산소 운동, 필요 시 스타틴 계열 약제 투여가 표준이었다. 그러나 같은 처방을 적용해도 LDL과 중성지방 개선 폭이 개인마다 다르고, 일부는 고강도 운동을 해도 수치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근력 중심 운동은 체형과 근육량 개선에는 효과적이지만, LDL과 중성지방 감소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빠른 걷기, 조깅, 자전거, 계단 오르기 같은 중강도 이상 유산소 운동을 주 150분 이상 수행할 때 HDL 상승과 중성지방 감소 효과가 비교적 뚜렷하게 관찰된다.

 

특히 최근에는 유전적 요인이 고지혈증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면서, 병원과 바이오 기업이 유전체 기반 정밀진단으로 방향을 넓히고 있다. 특정 유전자 변이로 LDL 수치가 구조적으로 높은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처럼, 체중과 운동량이 정상이어도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유형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국내외 의료기관은 NGS 기반 유전자 패널 검사로 LDL 수송·분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확인하고, 평생 누적 위험을 추산하는 다유전자 위험점수까지 도입하는 추세다. 유전적으로 고위험군으로 판정되면 젊은 연령대부터 공격적인 약물요법과 생활습관 교정을 적용하는 식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은 여기에 웨어러블과 모바일 앱을 결합해, 유산소 운동량과 심박수, 수면 패턴, 체중 변화를 장기 추적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워치로 수집한 심박수와 활동량, 식단 기록을 병원 전자의무기록과 연동하면, 실제 생활 속 운동 강도와 식습관이 혈중 지질 수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대규모 실세계 데이터는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활용돼, “현재 패턴을 유지하면 5년 내 심혈관 질환 발생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예측하는 위험 점수 형태로 환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고지혈증 자체를 겨냥한 첨단 치료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PCSK9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 치료제와 RNA 간섭 기반 약물이 대표적이다. 이들 약물은 간에서 LDL 수용체 분해를 억제해 LDL 콜레스테롤을 기존 스타틴 대비 최대 절반 이하로 낮추는 것으로 보고된다. 최근에는 mRNA 플랫폼과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간세포에서 PCSK9 발현을 장기적으로 억제하는 방식의 차세대 치료 후보도 개발 단계에 있다. 다만 투여 비용과 장기 안전성, 윤리 문제 등이 해결 과제로 남아 상용화 속도는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고지혈증을 포함한 심혈관 관리 분야에서 IT와 바이오의 본격적인 융합 경쟁이 진행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클라우드 기반 심혈관 위험 예측 플랫폼이 보험사, 병원과 연계돼 보급되고 있으며, 일부 스타트업은 웨어러블 데이터와 유전체 정보를 통합 분석해 ‘개인 맞춤형 콜레스테롤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 제약사와의 협업을 통해 특정 약제에 대한 반응성을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하고, 약물 부작용 가능성이 낮은 환자군을 선별하는 시도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의료기관과 IT 기업이 공동으로 심혈관 디지털 치료제와 만성질환 관리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의료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개인정보 보호 규제, 인공지능의 진단·치료 권고에 대한 책임 소재, 보험수가 인정 문제 등이 산업화의 발목을 잡는 변수로 꼽힌다. 식품의약품 관련 부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와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허가 기준을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지만, 유전체와 실시간 웨어러블 데이터까지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에 대한 규정은 초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의들은 고지혈증 관리에서 첨단 기술의 역할이 커지더라도, 기본 축은 여전히 생활습관 교정과 위험인자 통합 관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부 비만과 지방간, 고혈압, 고혈당이 함께 동반되면 서로가 서로의 위험을 키우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체중을 5에서 10퍼센트만 줄여도 LDL과 중성지방이 유의미하게 개선되고, 혈압과 혈당도 동반 개선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복수로 보고되고 있다. 여기에 유전형과 생활데이터 기반 정밀관리, 첨단 약제가 적절히 결합될 때 심혈관 사건 발생을 크게 늦출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심혈관 분야 한 연구자는 “유전체·웨어러블·AI를 엮은 기술이 고지혈증과 심혈관 질환 예방의 새 표준으로 자리 잡느냐가 향후 10년간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산업계는 기술 개발과 함께, 의료 현장과 제도권에서 실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관리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IT·바이오 융합 흐름이 고지혈증 관리의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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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혈증#디지털헬스케어#유전체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