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계정 위치 공개"…디지털 국경, 안보 도구로 부상
소셜 플랫폼 X가 계정 보유자의 실제 활동 국가를 공개하는 기능을 도입하면서, 온라인 공간에 국가 단위 경계를 도입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IT 업계 인사들은 이 조치가 미국 유권자처럼 위장한 외국 행위자를 가려내는 일종의 디지털 국경 역할을 하며 여론 조작과 정보전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소셜 미디어가 국가 간 경계를 사실상 무력화해온 가운데, 지리적 투명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향후 선거와 외교 안보 환경에서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미국 소셜 스타트업 틴더의 설립자 션 래드와 과거 트위터와 X에서 임원으로 활동했던 잭 샤피라는 최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X의 새로운 위치 공개 기능을 평가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X는 최근 계정 정보 화면에 이 계정에 관해라는 메뉴를 신설하고 주요 활동 국가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신을 미국의 풀뿌리 보수 혹은 애국자라고 주장하던 일부 계정이 실제로는 파키스탄, 태국, 터키 등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기고문은 물리적 국경이 여전히 주권과 신뢰, 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장치라는 점을 전제로 삼는다. 국경을 흐리거나 없애려는 시도는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 쟁점이 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며, 국경은 사회적 혼란을 막는 방벽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소셜 플랫폼은 사람과 아이디어가 국경을 넘는 방식을 바꿔 글로벌 공론장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콘텐츠의 출처를 모호하게 만들어 외국 행위자들이 미국인처럼 위장해 분열적 의제를 증폭시키는 통로를 열어줬다는 진단이 나온다.
X가 계정에 국가 표시를 추가한 것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직접 겨냥한 조치로 평가된다. 사용자는 게시물이 실제 현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지, 먼 나라에서 이뤄지는 관전평인지, 혹은 특정 국가가 조직적으로 확산시키는 메시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기고문은 팔로워 수백만 명을 보유한 이방카 트럼프 뉴스라는 계정이 실제로는 나이지리아 기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해당 계정이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와 해석은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두 필자는 계정 위치 공개가 출발점일 뿐, 완전한 디지털 국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플랫폼과 정부가 추가적인 기술·정책 조합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로 X의 사례가 다른 글로벌 소셜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계정 단위뿐 아니라 개별 게시물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위치 표기를 도입해, 특정 게시물이 급속히 확산될 경우 이용자들이 해당 메시지의 지리적 출처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로 추천 알고리즘 설계 단계에서 국내 콘텐츠를 우선하도록 하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역사회 이슈나 국가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벌어질 때, 이용자는 실제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해당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는지 반응 강도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단순한 검열이 아니라 추천 우선순위 조정 차원에서의 설계 전략으로, 외국발 정치 콘텐츠가 현지 담론을 압도하지 않도록 완충 장치를 넣자는 취지에 가깝다.
셋째로 위치 기반 콘텐츠 필터링 기능을 사용자 선택 사항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아예 보지 않도록 설정할 수 있다면, 유권자는 자국 선거나 정책 논의에서 외국 정부나 조직이 개입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과정에서 위치 데이터를 조작해 실제 국가를 숨기려는 시도를 감지하고 차단하는 기술 역시 플랫폼 차원의 과제가 된다. 사용 패턴과 IP 정보 등에서 불투명하거나 비일관된 위치 신호가 포착될 경우, 해당 계정의 게시물을 알고리즘에서 하향 평가하거나 위치 불확실성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대한 반론도 함께 제기됐다. 필자들은 식품 포장에 영양성분표를 의무 표시한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자체가 제한되는 것은 아니라며, 위치 공개와 출처 투명성은 검열이 아니라 정보에 맥락을 부여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이용자는 여전히 어떤 정보를 소비할지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의 근거가 더 풍부해진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게 언급됐다. 악의적 행위자가 위치를 속이거나 AI로 생성한 대량의 가짜 인물을 동원해 여론 조작을 시도할 때, 현재 플랫폼이 취할 수 있는 강경 조치는 계정 정지에 그친다. X가 2024년 하반기 6개월 동안 정지한 가짜 또는 스팸 계정이 3억 3567만 5897개, 하루 평균 약 200만 개에 달했다는 점은 온라인 영향력 공작의 규모와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제시됐다. 상당수는 외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영향력 공작 네트워크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AI 기술의 확산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과 이미지 생성 기술이 결합되면서, 실제 존재하는 사람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디지털 인물을 만들어내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특정 국가나 정치 세력을 가장하며 대규모로 의견을 게시할 경우, 위치 공개 기능만으로는 완전한 식별과 차단이 어렵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패턴 분석과 행위 기반 탐지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필자들은 정부가 외국의 온라인 영향력 행사를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격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이버 안보, 선거 관리, 외교·정보 부처가 협력해 외국 정부나 그와 연계된 조직의 조직적 여론 조작을 감시하고 제재하는 별도 정책 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이 계정 정지 이상으로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다만 두 사람은 디지털 국경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알고리즘 구조, 광고 비즈니스 모델, 정치 세력의 정보전 전략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X의 계정 위치 공개는 이용자가 온라인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계정이 누구인지, 어떤 맥락과 이해관계에서 발언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본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산업계와 정책당국이 이 흐름을 어느 수준까지 제도화하느냐에 따라, 향후 디지털 공론장의 신뢰 구조와 국가 안보 전략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조치가 실제로 글로벌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하며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