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로 건강 관리한다”…한국, 하루 걸음 수 세계 2위
웨어러블 기기 기반 헬스 데이터가 일상 운동량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며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 기기 업체 가민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고활동’ 인구로 나타나, 웨어러블 연동 피트니스 서비스와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시장 확대를 자극할 전망이다. 업계는 이런 데이터가 보험, 병원,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협력하는 디지털 헬스 생태계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민이 공개한 2025 가민 커넥트 데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올해 하루 평균 걸음 수는 9969보로 집계됐다. 이는 보고서에서 제시한 세계 평균 8000보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로, 국가별 순위에서는 홍콩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위 홍콩은 하루 평균 1만663보를 기록해 유일하게 1만 보를 넘겼다. 보고서에는 사용자들이 가민 스마트워치와 피트니스 트래커를 착용한 채 축적한 활동 데이터가 통계 처리돼 반영됐다.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인은 러닝과 걷기, 수영을 핵심 피트니스 활동으로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닝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야외 러닝 참여율은 전년 대비 61퍼센트 증가했고, 실내 러닝머신 이용도 64퍼센트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스마트워치의 GPS, 심박 센서, 가속도 센서가 러닝 거리, 페이스, 심박 구간을 정밀하게 기록해주는 만큼, 사용자들이 데이터 피드백을 기반으로 운동량과 강도를 조절하는 ‘데이터 주도형 피트니스’ 패턴이 강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민 보고서는 러닝이 전 세계 대부분 연령대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행해지는 운동이라고 정리했다. 18세에서 29세 사이는 야외 및 트랙 러닝 비중이 높았고, 30대는 러닝머신과 함께 근력 운동 및 실내 유산소 운동 비중이 커졌다. 40대에서는 산과 비포장 코스를 달리는 트레일 러닝이 두드러져, 고도와 지형 데이터를 활용하는 고급 러닝 기능 수요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60대에서는 야외 걷기, 사이클링, 하이킹이 활동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연령대별 운동 선호도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기획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50대의 경우 실내 사이클링, 랩 수영, 산악 자전거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실내 운동장비 연동 서비스와 세밀한 운동 성과 분석에 대한 수요가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70세 이상에서는 골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이는 골프 스윙 분석, 라운드별 활동량 측정 기능을 포함한 시니어 특화 웨어러블 서비스 기획에 참고 지표가 된다.
특히 이번 데이터는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개인 기록 장치’를 넘어 ‘집단 건강지표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정 연령대와 지역에서 어떤 운동이 얼마만큼 수행되는지가 실측 기반 통계로 축적되면서, 피트니스 센터, 건강관리 앱, 보험사, 제약사까지 다양한 산업 주체가 이 데이터를 활용하는 협업 시나리오가 열리고 있다. 예를 들어 보험사는 실제 활동량과 심박 패턴을 반영한 맞춤형 상품을 설계할 수 있고, 헬스케어 스타트업은 연령대별 운동 습관에 최적화된 코칭 알고리즘을 고도화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애플과 핏빗, 화웨이 등 주요 웨어러블 제조사가 자사 기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헬스 서비스 구독 모델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 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걸음 수, 운동 빈도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하거나 리워드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확산되는 중이다. 한국의 걸음 수와 러닝 활동량이 세계 상위권이라는 점은 국내에서도 이런 모델이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다만 국가·지역별 데이터가 상이한 웨어러블 보급률과 특정 브랜드 사용자 표본에 기반한 것인 만큼, 이를 전체 인구의 건강 수준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또 운동 데이터가 의료정보와 결합될 경우 개인정보 보호, 데이터 주권, 알고리즘 편향 문제에 대한 규범 설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등 기존 법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웨어러블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디지털 치료제와 연계된 새로운 규제 프레임 마련이 요구된다.
한 대학병원 디지털헬스센터 관계자는 웨어러블 데이터는 생활 속 활동량과 심박 변화를 장기간 추적할 수 있어 만성질환 위험 예측과 맞춤형 운동 처방에 큰 잠재력을 지녔다면서도 아직 보험 수가와 법제 미비로 의료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한국인의 높은 활동량과 러닝 열기가 디지털 피트니스 플랫폼과 연동 의료 서비스의 실사용 시장을 만들어 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