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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훈련 조정 불가피" vs "전작권 위해 확대 필요"…진보 진영 내부도 갈라졌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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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 재개를 둘러싼 해법을 두고 한미연합훈련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한 논쟁이 격화됐다. 진보 성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훈련 축소와 조건부 중단, 오히려 강화 필요성이 맞부딪히며 대북·대미 전략을 둘러싼 이견이 드러났다.  

 

28일 통일부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개최한 평화공존·공동성장의 한반도 실현방안 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내년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과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을 북미 대화 재개와 연계할 수 있을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특히 내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해 북미 대화 여건을 조성할 것인지, 아니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훈련 강도를 유지·확대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가장 핵심 변수로 제시했다. 그는 "특히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 스케줄이 정해지면 연합훈련을 막을 명분이 없어지고, 훈련을 연기하거나 조정하기보다는 더 많은 훈련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작권 전환 준비 과정에서 연합훈련이 필수라는 점을 강조하며, 북미 대화와 별개로 군사적 대비태세 강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다만 외교적 부담을 감안한 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은 "한미연합훈련을 그냥 중단하기보다는 시한 내 북한의 대화 수용 같은 조건부 중단이 어떤가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만약 아무 조건 없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반발이 극심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대내 여론과 동맹 신뢰를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을 강조했다.  

 

반면 북한 전문기자인 이제훈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보다 강경한 조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적대적이고, 대화가 장기간 중단된 상황을 전환하려면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중단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장기간 교착된 북미 대화 국면을 깨기 위해서는 상징성이 큰 연합훈련을 직접 건드리는 수준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미 공개된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달 초 한 행사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서 북미 회담으로 갈 수는 없다,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정부가 연합훈련 조정 카드를 실제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학계와 전문가 그룹 내에서도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의견 차가 뚜렷해진 셈이다.  

 

정동영 장관은 이날 학술회의 환영사를 통해 정부의 기본 구상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김병대 통일정책실장이 대독한 환영사에서 정 장관은 "한반도 평화구조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서는 북미관계 등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관계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결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정 장관은 이어 "정부는 북미 대화가 조속히 개최될 수 있도록 긴장 완화와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한 적극적이고 대승적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연합훈련 조정 문제 역시 긴장 완화와 대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의 최근 태도도 언급했다. 정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인다"며 "북한 또한 북미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고, 대화 재개에 대한 전략적 수요가 있는 만큼 대화의 기회는 열려 있다"고 진단했다. 북미 양측 모두 일정한 수준의 대화 의지를 드러낸 만큼, 한미연합훈련 조정 같은 신뢰 구축 조치가 맞물릴 경우 협상 재개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싼 국내 정치권의 공방 가능성은 여전하다. 보수 진영은 그간 연합훈련 축소 또는 중단에 대해 "동맹 약화" "안보 공백"을 우려해 왔고, 진보 진영은 "대화 여건 조성"을 내세워 훈련 조정을 요구해 왔다. 학술회의에서도 전작권 전환과 북미 대화 촉진 사이에서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에 따라 처방이 갈렸다.  

 

정부는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과 한반도 안보 환경 변화를 지켜보며 한미 간 협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국회 역시 향후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형식,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정치권은 한미훈련 조정 논의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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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한미연합훈련#북미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