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모 품격 가져야"…한학자 지침 거론된 김건희 그라프 목걸이 문자, 법정서 공개

정재원 기자
입력

정권 핵심 인사를 겨냥한 특검 수사가 종교계 인사들의 이름까지 소환하며 또다시 정국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고가 목걸이 의혹 재판에서 통일교 전 간부가 작성한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며, 선물의 성격과 전달 경위, 더 나아가 청탁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26일 오후 김건희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 사건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은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통일교 전 재정국장 이모씨와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윤영호 전 본부장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 과정에서 이씨가 2023년 12월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전 비서실장 정모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제시했다. 이씨는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씨를 매개로 김건희 여사 측에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윤영호 전 본부장의 배우자로 지목돼 있다.

 

특검이 공개한 문자에는 통일교 측이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하려 했던 그라프 목걸이의 취지와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메시지에는 "취임식을 앞두고 TM께서 여사에게 취임 선물을 하시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보고 후 선물을 준비해서 전달하게 됐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여기서 TM은 한학자 총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소개됐다.

 

해당 문자에는 목걸이 선물의 정치적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진술도 추가됐다. 이씨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순방 이후 불거진 반클리프 목걸이 논란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습 사건, 그리고 원정 카지노 의혹과 맞물린 통일교 내부 상황을 언급하면서 "대선 이후 갖게 된 신뢰감도 무너질 것으로 염려되었고 아울러 이러한 난항을 타개하기 위함이 금번 선물 이슈"라고 적었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또한 문자에는 "실제 TM께서 7월 16일에 지침을 주셨다고 했다. 국모로서 품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도 주셨다. 그 지침을 받고 진행된 것이다"라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이를 토대로 통일교 측이 목걸이 제공을 단순한 증정이 아니라, 한학자 총재의 지침에 따른 정치·종교적 의미를 가진 선물로 인식했는지 여부를 따져 묻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특검팀의 질문에 대해 이 전 재정국장은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했다. 법정에서 메시지 내용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지침의 성격과 전달 경위, 김건희 여사와의 직접 연관성 등에 관해선 답변을 피했다.

 

김건희 여사 측은 목걸이 수수 여부를 놓고 특검과 정면으로 엇갈렸다. 당초 금품 수수 사실을 전면 부인해 온 김 여사는 이달 5일 재판을 통해 샤넬 가방 2개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통일교 측이 마련했다는 그라프 목걸이에 대해서는 "받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중기 특검팀은 물증과 정황 증거로 목걸이 전달 정황을 보강하려는 모습이다. 특검은 이날 이씨와 윤 전 본부장 간 2022년 7월 29일 대화 내용을 제시하며, 그라프 목걸이 구입 직후 오간 문구를 문제 삼았다. 특검은 문자 중 "구매자 김건희로 등록하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내 이름을 기재했다"는 표현의 의미를 따져 물었다. 그러나 이씨는 이 질문에도 진술을 거부했다. 다만 그라프 목걸이를 직접 구매했고, 통일교 측에서 비용을 정산받은 사실만은 인정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목걸이 의혹과 함께 청탁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증인으로 출석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김건희 여사 측 대리인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증인 기억에 청탁들이 김 여사 영향력으로 실현된 것이 하나라도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청탁해서 뭐가 전달됐고, 실현이 뭐가 됐냐. 그건 제가 아무리 숙고를 해봐도 뭐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윤 전 본부장은 또 김 여사 측에 금품을 건네고 유엔 제5사무국의 한국 유치를 청탁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샤넬백으로 유엔 사무국 유치가 가능한가요. 외람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금품 제공과 정책 결정 간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다만 교육부 장관의 통일교 행사 참석을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부탁한 사실은 인정했다.

 

전성배씨의 실제 영향력과 김건희 여사와의 관계를 둘러싼 증언도 나왔다. 윤 전 본부장은 "2023년 1월 권성동 의원이 연락을 줘서 하신 이야기가 '(전성배씨가) 낙동강 오리알 됐다'고 했다. 피고인과의 관계가"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낙동강 오리알이 언젠가는 부화한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관계가 거의 단절됐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청탁 창구로 지목된 인물이 이미 대통령 부부와 거리를 두게 됐다는 취지의 진술이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들의 진술 거부가 반복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구체적인 판단은 유보했다. 통일교 전·현직 인사들의 입장과 문자 기록, 금품 정산 내역을 종합해 목걸이 전달 경위와 청탁 존재 여부를 가릴 수 있을지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한편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여러 혐의로 동시에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해 8억1천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2024년 8월 29일 구속기소 됐다. 또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와 공모해 정치 브로커로 지목된 명태균씨로부터 2억7천만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전성배씨와 공모해 통일교 관계자로부터 교단 지원과 관련된 청탁을 받는 과정에서 고가 목걸이 등을 포함해 합계 8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도 기소 사안에 포함됐다. 이번에 드러난 그라프 목걸이 문자 메시지는 바로 이 금품 수수 혐의를 둘러싼 핵심 증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여파가 번지고 있다. 여당은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세우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야당은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금품 수수 의혹이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지침과 종교 단체 네트워크로 확장됐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유죄 판단 여부와 실제 청탁 실현 여부는 사법부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존한다.

 

재판부는 향후 추가 증인 신문과 증거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특검팀이 종교계 인사와 정치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금품 제공 경위를 더 추궁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회와 정치권은 재판 진행 상황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정재원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건희#한학자#통일교